미국 주식시장이 연일 흔들리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전자제품에 대한 대중국 '슈퍼 관세'를 사실상 철회했다. 글로벌 기술업계의 반발은 물론, 내부 반대 기류와 맞물린 이번 결정은 미국 경제 구조와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장기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 세관국경보호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존 145%에 달하던 일부 중국산 소비자 전자제품에 대한 관세와 10%의 글로벌 관세가 면제된다. 면제 품목에는 애플(AAPL)과 엔비디아(NVDA)의 핵심 제품에 탑재되는 반도체도 포함된다. 미국 내 반도체 제조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명분으로 추진됐던 관세 정책의 핵심 축이 사실상 무너진 셈이다.
전자제품에 대한 관세는 스마트폰, 노트북, 게임 콘솔 등 주요 수요 제품의 가격 인상으로 직결됐다. 가전업계를 대표하는 미 소비자기술협회는 관세로 인해 미국 소비자들이 콘솔은 40%, 스마트폰은 26%, 노트북은 46%나 더 비싸게 사야 했을 것이라고 추산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충격이 소비 둔화와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며 시장 불안정을 부추겼다고 분석한다.
일례로 아이폰을 미국에서 전량 제조할 경우 가격이 최대 3.5배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TSMC 등 아시아 제조 거점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 공급망 구조상 미국이 혼자 모든 반도체 수요를 감당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미국은 반도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14% 수준에 그쳐 자급자족 체제를 단기간에 구축하기는 어렵다.
회계컨설팅업체 PwC의 스콧 알마씨 파트너는 "단순히 관세만으로 반도체 시장점유율을 되찾을 수는 없다"며 "공급망의 출발점인 원자재와 소재에서부터 전방위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딜로이트의 던컨 스튜어트 연구원은 "미국이 반도체 제조 역량을 2032년까지 14% 수준까지 끌어올린다 해도, 글로벌 밸류체인 상의 영향력은 여전히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급격한 관세 완화가 기술업계의 로비에 따른 결과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하지만 정치적 논란과 별개로 반도체와 전자제품 제조는 고급 인력이 필요한 고부가가치 산업이며, 미국 내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교육 투자 확대 없이는 이 분야의 성장도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 측은 "미국이 더 이상 중국에 의존해선 안 된다"며 "애플, TSMC, 엔비디아 등 글로벌 기술기업들로부터 수 조 달러 규모의 투자 유치를 이끌어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미국의 제조 기반 강화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미국이 수십 조 원 규모의 세제 혜택을 내세워 유치한 반도체 공장이 아직 착공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다. 또한 일관성 없는 관세 정책은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어 시장 안정성 확보를 위해선 보다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미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확대하려면 단기적 관세보다 중장기적 인프라와 인재 육성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개별 국가의 제조 능력만으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만큼, 협력과 조율을 기반으로 한 균형 잡힌 공급망 전략이 절실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