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가 조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일부 투자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지만 벤처캐피털(VC) 생태계에서는 이미 지난 5년간 높은 변동성을 경험해왔다. 통계적으로 보아도 주식시장 조정이 본격적인 약세장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10건 중 4건에 불과하다. 설령 약세장이 현실화되더라도, 기회를 잡을 여지는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현재 VC가 보유한 ‘드라이 파우더’는 3,080억 달러(약 443조 원)로, 코로나19 이전보다 거의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시장 예측은 어렵지만, 대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소셜디스커버리벤처스(Social Discovery Ventures)의 투자 책임자 알렉산더 리스(Alexander Lis)는 창업자들이 시장 혼란기에서 자주 범하는 몇 가지 실수를 지적했다. 첫 번째는 여전히 호황기처럼 자금을 사용하는 것이다. 자금 조달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비용 절감 없이 사업을 계속 추진하면, 결국 현금 고갈로 문을 닫게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사업 전략의 본질을 희생해 생명줄을 연장하려는 태도다. 매출 확대 기능을 중단하거나 핵심 인력을 줄이는 결정은 단기 생존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결국 경쟁력을 잃은 좀비 스타트업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또한 시장 상황을 무시한 채 조달 시기를 무작정 늦추는 것도 문제다. 주식시장 하락은 후속 투자 단계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 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시드나 시리즈A 단계까지 연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일부 창업자는 희망 밸류에이션을 고집하며 ‘플랫 라운드’나 다운 라운드를 거부하고, 오히려 투자 기회를 놓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하강기 속에서 스타트업이 견고하게 기반을 다지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리스는 무엇보다도 ‘비협상 목표(nonnegotiable goals)’ 설정을 강조한다. 이는 시장 환경과 관계없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핵심 과제로, 제품의 핵심 기능 출시, 고객 만족도 목표 충족, 주요 고객사 확보 등이 될 수 있다. 이 목표가 정해지면, 모든 자원을 핵심 영역에 집중 배분하고 불필요한 지출은 과감히 없애야 한다.
투자자 관점에서 본 유효성 여부도 중요하다. 설정한 목표가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지, 경쟁사와 비교해 뚜렷한 차별성을 제공하는지에 대한 사전 검증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활동 전 자금 유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잠재 투자자 네트워크 구축도 병행해야 한다. 유의할 점은, 투자자의 펀드 유동성이 충분한지를 체크하는 것이다. 신규 펀드 결성에 의존하는 투자자는 불안정한 시기에는 신속한 투자 집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변동성이 커지는 환경에서 투자 우선순위가 바뀌는 만큼, 스타트업이 투자자들에게 ‘잊히지 않기’ 위한 전략도 필요하다. 매출이 급증하는 기업은 분명 유리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해결해야 할 보편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모습과 차별화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면 여전히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철저한 실행 전략과 끈질긴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고통스러운 결정까지 감내하는 태도가 오히려 긍정적인 시그널로 작용할 수 있다.
리스는 “시장 조정은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생존자와 낙오자를 가르는 지점이며, 진정으로 강한 기업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구간”이라며 “명확한 전략과 자금 계획, 유연한 전환 능력을 갖춘 스타트업이 결국 승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