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쏘아 올린 발언이 많은 파장을 일으키며 각계각층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과거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를 시사하며 시세 폭락을 야기했던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2021년 4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암호화폐 투자자는 투자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암호화폐 투자는 '잘못된 길'이며 정부가 의무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은 위원장의 발언 이후 정치권에서 수많은 비판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암호화폐 주요 투자자층인 2030세대의 분노가 거세졌다. 시장 반발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은 암호화폐 투자를 인정할 수 없지만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는 과세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20·30세대 반발 이유는?…"월급만으론 내 집 마련 어려워"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거세다. 암호화폐 투자가 2030세대에게 새로운 기회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저금리 상황에서 단기간 내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암호화폐 투자가 치솟는 집값과 일자리 불안 등의 미래에 대한 막막함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4월 26일 금융위원회가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분기 4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빗) 신규 가입자 249만 5000여 명 가운데 63.5%인 158만5000여 명이 2030세대로 집계됐다. 5명 중 3명은 2030세대인 셈이다.
국내 직장인 10명 중 4명이 암호화폐에 투자하고 있다는 설문 결과도 나왔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 1,85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직장인 암호화폐 투자 현황’에 따르면 참여자 40.4%는 ‘암호화폐에 투자하고 있다’고 답했다. 연령별로는 30대(49.8%)가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20대(37.1%)가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었다.
한국인이 2021년 1분기 가장 자주 사용한 주식 및 암호화폐 관련 앱도 암호화폐 거래소 앱인 '업비트'로 나타났다. 4월 28일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와이즈리테일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장 자주 사용한 주식 및 암호화폐 앱은 업비트인 것으로 조사됐다. 업비트는 다른 앱들과 비교해 큰 격차를 보였다.
이같은 설문조사 결과는 2030세대의 암호화폐 투자 열기를 방증하고 있다. 결국 2030세대의 분노는 저금리 상황에서 내집 마련의 꿈조차 쉽사리 손에 쥘 수 없는 청년 세대가 '기회의 사다리'로 여기는 암호화폐 투자가 차단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암호화폐 투자가 기회의 사다리가 맞는가 여부는 제쳐두고라도 기득권층이 젊은 세대의 인식에 공감하기는커녕 훈계에 나선 것은 2030세대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4월 22일 청와대 국민 게시판에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왜 이런 위치에 내몰리게 되었을까요?"라며 "사회생활을 하며 여태까지 4050의 인생 선배들에게 배운 것은 바로 내로남불"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4050 인생 선배들은 부동산이 상승하는 시대적 흐름을 타서 노동 소득을 투자해 쉽게 자산을 축적해 왔다"며 "그들은 쉽사리 돈을 불렸지만, 이제는 투기라며 2030에겐 기회조차 오지 못하게 각종 규제를 쏟아낸다. 덕분에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 하나 가질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청원에 공감한 청원 참여자는 4월 30일 오전 기준 14만 7900명을 돌파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발언, 후폭풍…비판 줄이어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발언 이후에 정치권 인사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여야를 막론하고 해당 발언에 대한 우려섞인 비판이 나왔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당 발언과 정부 규제가 '시대착오적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4월 23일 이 의원은 "(정부 암호화폐 관련 정책은)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며 은 위원장의 발언을 겨냥했다.
이 의원은 "왜 2030세대가 암호화폐나 주식에 열광하는지 깊게 고민해야 한다"면서 "그들의 삶이 불안하기 때문에 미래 가능성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도 비트코인을 불법으로 몰면서 과세를 추진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4월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트코인 거래를 불법으로 몰고 가면서 이에 과세하겠다는 것은 또 무슨 경우냐"면서 "시대가 변하면 국가는 변하는 시대에 맞추어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은 위원장의) 표현 방법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를 하고 있는 다른 나라는 가상자산을 보호하고 규제하는 법적 테두리가 있다. 이런 것들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부터 과세하겠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4차 산업혁명을) 대한민국의 관료들이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블록체인 기술과 이른바 코인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고 장려하면서 코인은 단속하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꼰대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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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2030 민심 잡기 나서…"투자자 보호·과세 유예"
내년 대선을 앞두고 2030 민심 회복이 절실한 민주당과 4.9 보궐선거의 여세를 이어갈 필요가 있는 국민의힘 모두에서 '암호화폐 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부동산 문제로 청년들의 분노가 이미 큰 상황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로 청년들의 반감이 거세지자 급히 수습에 나섰다.
4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은 정부와 함께 필요한 암호화폐 관련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암호화폐는 새로운 투자수단이라면서 암호화폐 투자가 세계적인 흐름인 만큼 정책 대응을 검토하며 대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도 4월 26일 강원도 춘천시 스카이컨벤션에서 열린 민주당 현장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암호화폐 투자자를 보호하고 청년의 마음을 헤아리자는 입장을 내비쳤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정부의 현행 암호화폐 과세안을 비판하며 과세를 유예해야 한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월 26일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과세를 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라며 "가상화폐 과세 유예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4월 27일 SNS를 통해 "암호화폐는 로또가 아니라 주식에 가깝다"며 정부의 과세 방침을 즉각 수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 의원은 과세 시기를 주식 양도소득세 도입 시기인 2023년으로 미루고, 공제 기준도 다른 금융소득과 합쳐 5000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행보를 지적하고 암호화폐 투자자 보호를 내세우며 민심잡기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암호화폐의 제도화와 투자자 보호를 위해 당내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주호영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4월 26일 열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암호화폐 문제를 놓고 정부와 여당이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 권한대행은 "'암호화폐를 인정할 수 없고 투자자를 보호할 수 없다'면서 '소득에는 과세한다'는 앞뒤 맞지 않는 논리에 암호화폐 투자에 나섰던 2030 청년들이 어처구니없는 배신감과 억울함을 드러내고 있다"면서 "국민의힘은 TF를 만들어 강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반발에도 요지부동…"암호화폐는 과세 대상"
정부는 시장과 정치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암호화폐 과세를 기존 안대로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월 27일 정부세종청사 기자회견에서 "가상자산을 거래하면서 자산, 소득이 발생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세 형평상 과세를 부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미술품을 거래해서 이득이 나도 기타소득으로 과세하기 때문에 가상자산을 거래하며 생긴 소득에 대해 과세가 있는 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여당 일각에서 제기한 암호화폐 과세를 유예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정부는 "여러 의견을 들어보겠다"면서도 당초 계획대로 암호화폐 과세를 2022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2020년 국회를 통과한 소득세법 개정안은 암호화폐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하고 연 250만 원을 넘으면 20% 세율로 분리 과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방세까지 포함하면 실제 세율은 22%다. 암호화폐 투자는 "투자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보호할 수 없다"면서도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정부의 태도를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