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에선 모든 변동이 자연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가격 하락을 유도해 단기 차익을 노리는 ‘곰 공격(bear raid)’이 대표적인 예다. 이는 거대한 자산을 보유한 ‘고래’ 투자자들이 숏 포지션, 허위 정보, 대규모 매도로 시장을 흔들어 패닉셀을 유도하고 떨어진 가격에서 수익을 챙기는 전략이다.
곰 공격은 단순한 가격 조정이 아닌, 의도적인 시장 조작 행위다. 초기에는 대량 매도·공황 유도 등으로 가격을 급락시키고, 이후 빠르게 숏 포지션을 청산하거나 저가 매수를 통해 실익을 챙긴다. 이로 인해 시장은 일시적으로 극심한 변동성에 노출되고, 레버리지 포지션이 대거 청산되며, 일반 투자자들의 신뢰는 크게 타격을 받는다.
한 예로 2022년 5월 테라와 루나의 붕괴 당시를 살펴보면 비슷한 양상이 뚜렷하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당시 대형 투자자들은 급락 직전 대량 매도에 나서 수익을 확보한 반면, 일반 투자자들은 하락장에 끌려 들어가 손해를 떠안았다. 나아가 그해 11월 FTX가 파산한 시점에도 고래들은 가격 급락 직전에 자산을 정리하며 같은 방식으로 이익을 챙겼다. BIS 보고서에 따르면, 가격이 떨어질수록 고래들이 자산을 처분하는 반면, 일반 투자자들은 지속적으로 매수에 나서는 구조가 반복됐다.
곰 공격은 구체적인 단계로 실행된다. 먼저 고래는 숏 포지션을 구축하거나 매집 기회를 준비한 뒤 대량 매도로 시장 심리를 흔든다. 이후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부정적인 루머나 허위 뉴스를 유포해 공황을 키운다. 시장에 확산된 불안감은 패닉셀을 유도하고, 동시에 자동 청산을 유발하며 가격을 더 끌어내린다. 마지막으로 가격이 바닥을 찍은 시점에 숏 포지션을 청산하거나 저가 자산을 매수해 수익을 실현한다.
이러한 행위를 가능케 하는 배경 중 하나는 암호화폐 시장의 낮은 유동성이다. 전통 금융시장보다 참여자 수가 적어 대규모 거래 한 건으로도 가격이 급등락할 수 있는 구조다. 여기에 스푸핑, 페이크 오더, 알고리즘 트레이딩 등 복잡한 수법까지 동원되기 때문에 일반 투자자는 대응이 쉽지 않다.
실제 곰 공격은 무너진 프로젝트의 실체를 드러내거나 과도하게 가격이 부풀려진 자산을 조정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소규모 투자자들에게 직접적인 손실을 안기며, 시장 신뢰를 훼손하는 부작용이 크다.
곰 공격의 전조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표적인 징후로는 뉴스 없이 나타나는 급락, 거래량 폭증, 빠른 반등, 과도한 공포심 조성 등이 있다. 고래 지갑의 대규모 이동도 유의미한 신호일 수 있다. 특히 거래소 입금이 감지되면 잠재적인 매도를 예고하는 경우가 많다.
곰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몇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손절매 주문(stop-loss)을 설정해 예기치 못한 급락에 대비해야 한다. 또한 포트폴리오를 분산하고, 가격 차트나 거래 패턴을 꾸준히 분석해 무리한 진입을 피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규제와 보안이 잘 갖춰진 거래소를 이용하고, 고래 지갑 추적 등 시장 활동을 꾸준히 관찰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된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시장 자유주의자들은 과도한 개입을 경계하지만, 곰 공격처럼 명백한 조작 행위는 규제를 통해 차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각각 관련 자산과 파생상품의 시장 조작에 대해 단속에 나서고 있으며, 유럽연합(EU) 역시 ‘암호자산시장 규제 법안(MiCA)’을 통해 시스템적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이 지속 가능성과 신뢰를 얻기 위해선 이러한 조작 행위에 대한 감시와 투자자 보호 장치가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 곰 공격은 개별 투자의 판단을 흐릴 뿐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