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투자업계가 고금리와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그리고 규제 불확실성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하면서 스타트업의 엑시트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 2021년 IPO 붐 이후 침체 국면에 빠진 인수합병(M&A) 및 상장 시장은 좀처럼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이는 벤처 자금 회수의 출구 전략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사인 톰베스트 벤처스의 매니징 디렉터 돈 버틀러(Don Butler)는 최근 기고를 통해 "지난 2020년 이후 기록적인 벤처 자금이 스타트업에 집행됐지만, 과도한 자금 공급에 비해 엑시트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장기간 누적된 대형 스타트업들의 상장 정체와 저조한 M&A 실적은 시장 전반에 구조적 부담을 키우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상장 기준이 과거보다 대폭 상향됐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연간 반복 매출(ARR)이 1억 5,000만~2억 달러(약 2,160억~2,880억 원) 수준이면 IPO가 가능했지만, 현재는 최소 4억 달러(약 5,760억 원) 규모가 요구된다는 게 벤처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수년간 이어진 고금리 여파로 기업 인수에 나서는 사모펀드와 대기업들도 비용 효율성을 우선시하면서 보수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
이 같은 엑시트 부진은 단기 수익만의 문제가 아니다. 벤처 생태계를 구성하는 핵심 참여자인 ‘리미티드 파트너(LP)’들은 펀드 매니저들의 성과를 엑시트 실적을 통해 판단하기 때문에, 회수 흐름이 막히면 중장기 투자 유입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자금공급이 줄면 유망 스타트업의 성장 속도뿐 아니라 혁신 자체도 둔화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걱정이다.
일부 업계는 올해 들어 친기업적 기조를 선언한 새로운 행정부 출범에 기대를 걸었으나, 최근 관세 정책 강화와 이에 따른 공급망 충격 등으로 또 다른 유동성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다. 한편, 전임 행정부 시절 과도한 인수 규제와의 단절은 긍정적인 변화로 평가되지만, 지금은 정책 자체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졌다는 점에서 기업 계산이 더 어려워졌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벤처 업계는 금리 인하 기조로의 전환 가능성에 집중하고 있다. 만약 고물가와 경기 둔화 압력이 미국 연방준비제도 등을 자극해 금리를 낮춘다면, 이는 M&A 시장 회복뿐 아니라 부진한 주택 시장 등 실물 경기 전반에도 활력을 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특히 인수합병 시 레버리지를 적극 활용하는 사모펀드에는 상당한 호재가 될 전망이다.
결국 이 같은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환경에서는 오직 최고의 실행력과 시장성을 갖춘 스타트업 일부만이 성공적인 엑시트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시장 참여자들에게는 신중하면서도 유연한 전략 설정이 더욱 중요해진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