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CBDC의 선두주자로 여겨지는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의 사용이 비자카드 사용량보다 많다는 분석이 나왔다.
2022년 2월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중국의 CBDC인 디지털 위안화(e-CNY)의 결제 서비스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디지털 위안화를 통한 거래가 비자(Visa)를 통한 결제보다 많다는 점이다.
글로벌 결제 서비스 업체인 비자는 수십 년간 세계 최대 스포츠 행사인 올림픽의 독점적인 전자 지불 시스템 제공사였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전까지 현금과 비자카드 두 가지 방법으로만 결제가 가능했지만, 2004년 이후 올림픽에서는 현금결제는 거의 사라지고 비자카드를 통한 결제만이 이뤄졌다.
하지만 2022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알리페이(Alipay)와 위챗(WeChat) 등을 통해 전자 지불 방식의 결제가 가능해졌다. 이로써 베이징 올림픽이 진행되는 주요 경기장과 선수촌 등에서 물품이나 음식을 구매할 땐 비자카드를 비롯해 디지털 위안화도 함께 사용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가장 큰 과제는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며 올림픽은 또한 디지털 위안화의 가장 큰 파일럿이기도 하다”라며 “선수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을 통제하는 이번 동계 올림픽은 디지털 위안화의 출시 기념 파티로 선전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월 4일 개막식이 열린 베이징 국가체육장(버드 네스트 스타디움)의 상점에서 비자카드를 통한 결제보다 훨씬 많은 거래가 디지털 위안화로 이뤄졌다”라며 “올림픽 기념상품을 판매하는 상점 등 소매점 중 다수에서 대부분의 중국 소비자들은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위안화가 비자카드보다 더 많이 사용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식 후원사인 비자의 권리를 중국 당국이 침해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위안화 결제를 위해 사용되는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오랜 기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전자 지불 서비스에 대해 독점 계약을 맺은 비자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디지털 위안화는 법정화폐이기 때문에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게다가 2022 베이징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결제를 위해 현금을 내는 것을 디지털 위안화로 대체한다면 사람들 간의 직접 접촉이 줄어들어 코로나19 확산 방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디지털 위안화 사용을 권고하기도 했다.
전자 지불 방식에 있어 독점 권한을 빼앗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비자이지만 비자는 해당 문제에 대해 침묵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에 대해 “최근 비자가 중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데 중국 정부를 화나게 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단기간에 끝나는 올림픽보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중국 시장 진출이 더욱 중요하다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디지털 위안화의 사용이 비자카드보다 많기는 했지만 이것이 디지털 위안화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사용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미 디지털 위안화는 중국 내에서는 상당히 활성화돼 있기 때문에 외국인 관객이 없는 이번 올림픽 특성상 디지털 위안화 사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외국인들에게는 디지털 위안화가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안네케 반 자넨니베르그(Anneke van Zanen-Nieberg) 네덜란드 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베이징에서 많은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으며, 만약 지불하게 된다면 비자카드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