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한달 전부터 미국 뉴욕에 체류하게 되었는데 내년 2월까지 미국 사법절차에 대하여 교육을 받거나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가상자산이나 블록체인에 대하여는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분위기를 완전히 읽을 수는 없으나 상당한 규모의 블록체인 관련 모임인 밋업(Meetup), 연방 법원 판결 내용 등으로 이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미국 금융의 중심지인 맨하탄을 관할하고 있는 뉴욕남부지방법원 내에서는 가상자산이 주요 쟁점이 되는 사건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는데, 위 법원에서는 최근 그 유명한 리플(Ripple) 사건, 비트코인을 이용한 자금 세탁 관련한 사건인 필립스(US v, Phillips) 사건과 데니(Denny v. Canaan) 사건 등에 대하여 판결을 선고한 바 있고 현재 가상자산거래소 에프티엑스(FTX)의 창업자 사무엘 뱅크먼-프리드(Samuel B. Bankman-Fried)에 대한 형사재판 등이 진행 중이다.
뉴욕주 밖의 연방재판을 보자면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에서는 항소법원(Circuit court)이 지난 달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인정하는 전제 하에 원고인 그레이스케일(Grayscale)의 손을 들어주었고, 증권거래위원회(이하 “SEC”)가 올해 6월경 바이낸스(Binance) 창립자 장펑자오(Changpeng Zhao)와 함께 바이낸스와 바이낸스US를 미등록 증권 거래소, 중개 및 청산 대행사로 운영되고 있다는 혐의로 기소하여 제1심재판이 진행 중이다. 텍사스서부지방법원은 최근 자금세탁과 관련한 토네이도캐시(Tornado Cash) 사건에서 연방 재무부(피고)의 승소판결을 선고하였고, 마이애미에서는 2명의 미국인과 1명의 남아공인이 하이드로(HYDRO) 가상자산에 대한 허위거래에 따른 시장조작 혐의로 기소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이미 판결이 이루어진 사건들 중 자금 세탁 사건이나 비트코인 ETF 사건은 다른 지면에서 따로 언급하도록 하고 여기서는 가상자산의 증권성 인정 여부에 대하여 미국 정부기관들의 태도와 흐름을 짚고 가도록 한다.
먼저 사법부의 흐름을 살펴보자면, 증권성 여부에 대하여 리플 사건에서 SEC의 주장이 일부 기각되어 리플 측이 일부 승소판결을 받았지만, 이에 대하여 가상자산 증권성 여부에 대한 미국 사법부의 기준이나 법리 설시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보이지 않는다. 리플코인이 거래소에서 대중에게 판매될 때는 증권성이 부인되지만 기관투자자에게 판매될 때는 증권성이 인정된다는 취지의 위 판결의 내용에 대하여 기준이 일관되지 않거나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다.
그리고 리플 사건을 선고한 뉴욕남부지방법원에서는 그 이전에 이루어진 킥(Kik) 사건, 텔레그램(Telegram) 사건 등에 대하여 위 리플 사건과 달리 모두 증권성을 인정한 바 있고, 리플 사건 직후에 위 법원에서 이루어진 테라 사건(SEC v. Terraform Labs)에서도 재판부가 위 리플 판결의 설시를 정면으로 일축한 바 있다. 뉴욕주는 아니지만 코네티컷연방법원에서도 Audet v. Fraser 사건에서 Paycoin에 대한 증권성을 부정한 배심원의 평결을 부인하고 증권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고려 하에 새로운 재판을 명령한 바 있다.
참고로 필자도 최근에 미국 뉴욕남부지방법원에서 근무하는 형사부 판사님을 만난 바 있다. 여러 가지 주제 중 위 가상자산의 증권성에 대하여도 얘기를 나눈 바 있었는데, 현재 자신도 가상자산에 대한 사건들을 여러 개 다루고 있다면서 말을 아꼈지만, 리플 사건의 결론에는 찬성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위 판사님은 이와 같이 제1심 판결들의 결론이 엇갈려 있을 때는 최소한 항소심 판결의 동향을 체크해 보아야 할 것 같다면서 멀지 않은 시일 내로 항소심을 관할하는 순회법원 판결이 선고되는 것을 지켜보자고 하였다.
미국 정부기관의 움직임을 보면 상품을 규율하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이하 “CFTC”)의 경우 비트코인에 대하여 명백하게 상품으로 보는 전제 하에 상품거래법(Commodity Exchange Act)상 사기적 부정행위, 등록의무위반 등을 이유로 법원에 제소하고, 법원도 CFTC의 주장을 인용하는 판시를 잇따라 내리고 있다. 증권을 규율하는 SEC의 경우 증권성 여부에 대하여 주지하다시피 최대한 많은 가상자산을 넣으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이에 따라 리플, 솔라나(SOL), 에이다(ADA), 폴리곤(MATIC), 알고랜드(ALGO) 등 다양한 가상자산에 대하여 증권성을 인정하는 전제 하에 법원에 제소를 하거나 관련업계에 안내하고 있다.
미국 내 입법부 동향에 대하여 보면, 뉴욕주에서는 2015년부터 가상자산사업자의 진입규제를 규정한 비트라이센스(Bitlicense) 체계를 확립한 이후 올해 5월경 레티티아 제임스(Letitia James) 뉴욕 법무장관이 디지털 자산 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가상자산 규제, 보호, 투명성 및 감독(CRPTO)법안을 제안하여 현재 주 의회에서 심사 중이다. 이 법안은 가상자산거래소에 대한 독립적인 감사를 가능하도록 하고 시장조작, 사기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된 투자자 보호장치를 명시하는 한편 관련 종사자의 이해상충행위를 방지하도록 규정하는 등 가상자산 전반에 걸쳐 폭넓은 법적 규율을 하고 있다. 이러한 뉴욕주 의회의 움직임은 리플 등의 가상자산에 있어 증권성 여부를 판단할 직접적 기준을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증권을 규율하는 미국 연방증권거래법과 유사한 내용을 가상자산 관련 법안에 따로 마련하였기 때문에 뉴욕주 사법부의 법률 해석상 가상자산의 증권 해당 범위를 축소시킬 여지가 있어 증권 규제당국보다 가상자산 업계에 더 유리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연방법 차원에서도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이 2022년 6월경 책임있는 금융개혁법안(Responsible Financial Innovation Act)을 제출하였고, 이 법안은 가상자산에 관한 공시규정, 관련 과세기준,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등 다양한 내용을 구비하고 있다. 그리고 French Hill 의원과 Glenn "GT" Thompson 의원 등이 발의한 21세기 금융개혁기술법안(Financial Innovation and Technology for the 21st Century Act)도 있는데, 최근 하원 금융 서비스 위원회와 하원 농업 위원회가 각각 위 법안을 승인하였다. 이 두 법안은 모두 가상자산의 상품성과 증권성을 구별하는데 필요한 기준을 제시하고 가상자산의 현물시장에 대하여는 CFTC의 규율을 받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상당 부분의 가상자산이 상품으로 간주되고 CFTC의 규제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위 리플 사건에서 SEC가 최근 미국 법원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였고 이를 법원이 승인하면 항소할 것이 유력한데, 어떠한 결론이 예상될까? 위와 같은 일련의 움직임으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법안들이 현실화된다면 종국적으로 증권형 가상자산이 SEC의 의견보다 상당히 작은 범위로 규율될 가능성이 있어 보이고 사법부의 증권성 여부 판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법률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증권성 여부에 대한 판단이 엇갈리는 각각의 연방 하급심 법원의 판결이 항소심과 대법원 판시를 통하여 어떻게 통합될 것인지 더 지켜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법원 판결에서는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1946년에 정립된 Howey Test가 가상자산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법리를 만들어 가상자산에 대한 증권성 여부를 판단할지도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새로운 법리를 만든다면 가상자산업계에 유리한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은 법률 시스템이 구비되고, 사법부의 증권성 해당 여부에 대한 법리 구성이 촘촘해지면 가상자산업계 또는 이에 진입하려는 자들은 그 규제체계에 맞추어 블록체인 시스템을 수정하거나 설계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가상자산 시장의 변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이러한 미국의 동향은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가상자산 규제당국과 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회생법원 이석준 판사
[본 칼럼 또는 기고문은 토큰포스트 기조와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