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금융감독청(FCA)이 2026년까지 새로운 암호화폐 규제 체계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는 자금세탁방지(AML) 중심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스테이블코인 발행, 지불 서비스, 대출, 거래소 운영 등 암호화폐 관련 전반적인 활동을 포괄할 강도 높은 규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암호화폐에 유화적 기류가 감지되는 것과는 상반되는 움직임이다.
그간 FCA는 AML 등록을 중심으로 암호화폐 회사를 관리해왔다. 그러나 등록 신청 기업 중 약 14%만이 문턱을 넘었을 만큼 진입장벽은 이미 높았다. 이에 더해 이젠 FCA가 한층 폭넓은 활동 범위를 규제 대상으로 삼으려 하는 만큼, 업계 전반에 구조적인 대응이 요구될 전망이다. FCA 디지털자산부 매슈 롱 국장은 해당 계획이 아직 조율 중이며 규정 적용 범위 역시 계속 바뀔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가운데, 특히 레이어2(L2) 솔루션 개발자나 크로스체인 기능, 브릿지 서비스, 스테이블코인 유동성 등을 다루는 프로젝트는 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단순히 영국 내 거주 여부나 법인 설립 유무를 넘어 유저 기반이 글로벌한 경우 영국 규제를 외면할 수 없다는 점이다. GDPR이 전 세계에 퍼진 사례처럼, 세부적인 예외 없이 글로벌 기준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가 FCA 기준에 따라 실시간 준비금 감사와 투명한 회계공시를 요구받을 경우, 이를 개별 국가마다 다르게 운용하기보다는 전 세계 통일된 기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결국 영국의 지역 규제가 국경을 넘는 글로벌 표준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탈중앙화 앱(디앱)의 개발자들이 흔히 "나는 단순히 스마트 계약을 배포했을 뿐 regulator 관할 밖"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상당히 단견이다. 현재 많은 서비스들이 대출, 지불, 수익 배분 기능 등 규제 당국이 지목한 핵심 기능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프런트엔드가 영국 이용자를 명확히 대상으로 한다면, 법적 책임은 회피할 수 없다.
한편,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변화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FCA의 향후 규제 도입을 예측하고 KYC 모듈, 지오펜싱, 리스크 분석 시스템을 설계에 반영한 팀이라면 향후 제도권 진입 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관 대비 앱을 설계하거나, 컴플라이언스 전환이 가능한 구조를 마련해두면 협력 파트너 확보에도 긍정적인 시그널이 될 수 있다.
글로벌 동향에 있어 핵심 쟁점은 각국의 규제가 정합성을 갖는 방향으로 수렴할 것인가, 아니면 뒤얽힌 규제 조각보처럼 전개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FCA는 유럽연합의 암호화폐 시장법(MiCA),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언급하고 있어 어느 정도의 규제 조율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금과 인력이 제한된 중소 프로젝트들에겐 지역별 별도 규제를 동시에 대응하는 일은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2026년이 아직 시간이 남아 보일 수 있지만, 실제 규제 도입 전까지의 유예기간은 각 프로젝트가 제도권 내 안착하는 데 필요한 준비 시간을 좌우한다. 따라서 L2, 브릿지, 지갑 등 기반 인프라를 구축하는 팀들은 FCA의 움직임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단순히 규제를 피하거나 역이용하는 시대는 막을 내리고, 규제를 사용자 보호 장치 중 하나로 수용하는 전략적 사고가 요구된다.
결국 글로벌 암호화폐 생태계의 미래는 지정학적 요인이 아닌 규제 대응 능력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으로 미국 내 규제가 다소 완화되더라도, 영국이나 유럽 등 다른 주요 시장이 강경한 규제 프레임을 내세운다면 전체적인 규제 환경은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규제 변화 이전에 선제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