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긴 약세장에서 핵심 가치와 생태계 구축으로 다시 눈을 돌린 암호화폐 산업은 연초부터 예측 불가한 상승 움직임을 확인하며 새로운 추진 동력을 얻었다.
엔터프라이즈 블록체인·암호화폐 솔루션 기업 '리플'의 핵심 인사들은 올해 암호화폐 산업이 '효용성' 측면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킬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특히 대중적 활용 사례가 된 대체불가토큰(NFT), 전 세계 당국이 추진 중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윤곽이 잡혀가는 암호화폐 규제 등이 올해 기술 가능성을 입증할 것이라고 봤다.
◇ NFT 미래 검증하는 2023년
데이비트 슈와츠 리플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올해 NFT의 가능성과 미래를 검증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술품, 시즌 티켓 등의 자산을 토큰화하는 데 성공하며 크리에이터와 수집가를 연결한 NFT 물결이 더욱 다양하고 실용적인 활용 사례를 제공하는 유틸리티 중심의 NFT 트렌드로 확대될 것을 예상했다.
지난해 레딧, 메타 등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가 NFT를 채택했으며, 워너 뮤직, 타임지, 스타벅스 등도 NFT 기반 적립 포인트, 연하장, 음원, 항공권, 언론사 구독 지원 등 다양한 활용 사례를 실험하며 긍정적인 시장 반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리플 CTO는 특히 부동산, 탄소배출권 등의 NFT 전환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랫동안 가격 및 기타 시장 데이터의 투명성 문제를 겪은 탄소시장에서 '토큰화' 기술은 탄소배출권의 진위성 검증을 지원, 녹색 경제 전환 가속화와 지속 가능한 가치 사슬 현실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을 NFT로 토큰화하면 이용자는 관심 부동산의 이전 소유자, 세금 기록, 가격 내역, 법적 분쟁 정보를 손쉽고 빠르게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리플 CTO는 NFT를 통해 부동산 시장에 명확한 디지털 소유권을 구현하면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유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활용 사례 심화 및 확대에 대해 리플 CTO는 "NFT가 모든 이들이 확인할 수 있고 조작 불가한 블록체인에 영구 내장되는 기록을 통해 '프로세스 효율성'과 '투명한 소유권 증명'이라는 현실적 과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NFT 컬렉션에서 게임까지 다양한 활용 사례가 주류로 편입될 것이고 효용성을 증명한 일부는 더 오랫동안 시장에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기업 경쟁 우위, 온∙오프램프 활용에 달려
데브라지 바라단 리플 엔지니어링 수석 부사장은 올해 암호화폐와 법정화폐를 연결하는 온∙오프램프 기술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온램프(on-ramp)는 법정화폐를 암호화폐로, 오프램프는(off-ramp)는 암호화폐를 법정화폐로 바꿔주는 것을 가리킨다.
그는 "암호화폐와 법정화폐 간 교환 이슈는 암호화폐 효용성을 제한하는 장애물"이라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암호화폐 송금에 온∙오프램프 기술이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라단 부사장은 "사업 모델에 암호화폐를 접목하려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법정화폐와 암호화폐 교환을 지원하는 온·오프램프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기업이 경쟁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일반 산업과 암호화폐 산업을 연결하기 위한 온·오프램프 기술 개발 움직임은 두 산업 모두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 결제 기업 스트라이프는 지난해 4월 트위터의 유료 서비스에 폴리곤 네트워크를 통한 암호화폐 결제 지원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법정화폐-암호화폐' 온램프 기술을 탈중앙화 거래소(DEX), 대체불가토큰(NFT) 플랫폼, 월렛, 탈중앙앱(dapp)에 직접 임베딩(내장)할 수 있는 맞춤형 위젯 형태로 출시했다.
온램프 솔루션 업체 '문페이(MoonPay)'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와 협약을 체결, 신용카드를 통해 타임지의 NFT 컬렉션 '타임피스(TIMEPieces)'를 결제할 수 있는 방안을 제공하고 있다.
◇ 암호화폐 혹한기, 업계 '성숙' 위한 단계
리플 임원진들은 암호화폐 혹한기를 업계 성숙을 위한 기회로 보고 있다.
데브라지 바라단 리플 엔지니어링 수석 부사장은 글로벌 경기 침체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야기한 '암호화폐 혹한기'에 시장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기업이 핵심 비전과 소비자 목소리에 다시 집중하고 재정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바라단 부사장은 "최근 언론을 장식한 많은 암호화폐 기업들은 실제로 투기적인 성격이 강했고 투자 피해를 야기하기도 했다"면서 "앞으로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고객 요구에 부응하는 기업만이 시장에서 롱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약세장 리스크가 크지만, 산업이 실패를 수용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시도한다면 큰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바라단 부사장은 특히 고객만족을 추구하는 '고객 중심'의 산업 문화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객 요구에 부응하고 최선의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고객 중심의 기업이 2023년 암호화폐 업계 리더가 될 것"이며 "제2의 애플, 아마존으로서 산업 전반의 수준을 끌어올릴 뿐만 아니라 소외된 고객 기반을 위한 새로운 산업 탄생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플 글로벌 고객 성공 수석 부사장 겸 아태 및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총괄인 브룩스 엔트위슬도 암호화폐 산업이 '무법지대'가 아닌 '책임감' 있는 산업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투자자와 벤처캐피털의 투자처 결정이 더욱 신중해지면서 암호화폐 기업들이 사업 모델과 고객가치 창출 방향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엔트위슬 총괄은 "닷컴 버블 이후 인터넷은 필수 기술이 됐다"면서 장기적인 암호화폐 산업 전망을 낙관했다. 그는 "이번 유동성 위기는 산업 성숙을 가리키는 긍정적인 신호이며, 산업이 지속성을 위해 거쳐야 할 중요한 단계"라고 진단했다.
유동성 위기가 급속도로 성장해온 암호화폐 산업이 긴밀하게 결속되는 계기를 마련했고, 강세에 의존했던 부실 기업은 정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엔트위슬 총괄은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 기업의 블록체인·암호화폐 활용 관심이 높아질 수 있다고 낙관했다.
기업들이 순이익 개선을 위해 자금줄을 조이고 있는 만큼 송금 등 사업 프로세스 효율화가 주요 과제가 됐으며, 더 많은 기업들이 암호화폐 지원 결제를 활용하도록 촉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기업간(B2B) 국제 거래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주니퍼 리서치에 따르면 B2B 국제 거래 규모는 지난해 34조 달러(한화 약 4경2290억원)를 기록했으며 2026년 42조7000억 달러(한화 약 5경3120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엔트위슬 총괄은 "암호화폐는 전통 금융 인프라의 한계로 문제를 겪고 있는 B2B 결제 환경를 위한 최적의 해결책"이라면서 "기업이 간접 비용을 절감하고 자금을 선조달 해야 할 필요성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금융 시장을 잡고 있는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등 대형 금융기관들도 내년 하반기 디지털 월렛을 출시해 암호화폐 연계 기술력을 강화하고 있다.
JP모건은 블록체인·암호화폐 사업부 '오닉스 디지털 애셋'을 운영하면서 퍼블릭 블록체인에서 디파이 거래 실험을 진행했으며, 국제결제은행(BIS)도 최근 디파이(DeFi, 탈중앙금융)가 '유의미한 기술 발전'이라고 인정하면서 관련 연구 의사를 나타낸 바 있다.
◇ '아태 지역' 뚜렷해진 암호화폐 규제
라훌 아드바니 리플 아태지역 정책 총괄은 올해 아태 지역 내 암호화폐 규제가 윤곽을 드러낼 것이며, 스테이블코인, 디파이 등 세부 부문에 대한 규제도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싱가포르 통화청(MAS)은 스테이블코인 규제 접근 방식에 관한 대중 의견을 수렴해 연내 최종 규제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홍콩통화청(HKMA)과 일본 금융청(JFSA)도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은 최근 개정안에서 국내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대해 일정 비율의 준비금 보유를 의무화하고 은행, 신탁회사 등 특정 자격을 갖춘 기업만 발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외 발행 스테이블코인 유통도 허용하지만, 발행사가 아닌 유통사 측에 자산보전 의무를 부담하게 하고, 송금 상한선을 회당 100만엔(한화 약 951만원)으로 제한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알려졌다.
이밖에 한국,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이 더욱 명확한 암호화폐 규제 체계를 마련 중이다. 한국은 자금세탁에 중점을 둔 특금법에 이어 시장을 중심에 둔 디지털자산기본법 작업을 추진 중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개인 투자자의 암호화폐 이용에 대한 규제 방안을 고심 중이다. 인도는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으로서 암호화폐 규제 안건을 다룰 방침이다.
라훌 아드바니 총괄은 최근 아태 지역에서 디파이 인기가 높아지면서 디파이 규제 관심도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2년 비자·유고브가 14개국 성인 1만62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태 지역 소비자 21%는 디파이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해당 비율은 올해 17%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응답자 38%는 6개월 내 디파이를 이용해볼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총괄은 디파이 부문의 보안 리스크, 규제 공백에 따른 소비자 보호 및 자금세탁방지 위험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규제 당국은 디파이 규제에도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표적인 디파이 규제 추진 사례로 일본 금융청의 디파이 규제 부문 신설과 함께, 싱가포르 통화청이 지난해 출범한 '프로젝트 가디언'을 꼽았다.
자산 토큰화와 디파이 앱의 타당성을 테스트하고 재무 안전성과 무결성을 해치는 요인을 관리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올해 규제 측면에서 수용 가능한 거버넌스 모델과 기술 표준도 개발할 예정이다.
◇ CBDC 시범 활용 확대
제임스 왈리스 리플 중앙은행 협력 담당 부사장은 지난해 CBDC에 대한 중앙은행의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고 평했다.
그는 한 설문조사를 인용 "전 세계 중앙은행의 80% 이상이 4년 내에 자국 CBDC 도입을 예상했다"면서 "이러한 흐름에 따라 올해 더 많은 CBDC 활용 사례가 개발되고 시범 운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련 사례로, 국제 결제를 개선하는 상호 운용 가능한 CBDC 솔루션 등을 언급했다.
이달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국(OSTP)과 상무부 산하 국립과학재단(NSF)은 국가 디지털자산 연구개발 의제 수립에 착수하는 가운데 CBDC 발행 가능성과 잠재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재무부는 디지털 파운드 부문 총괄을 구인하며 적극적인 CBDC 탐색을 예고한 상태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를 공식 통화량 집계에 반영하고 시범 활용 범위와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 디지털 위원화를 통한 증권 매수 등 활용 사례를 늘릴 뿐 아니라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 지원까지 추진했다.
왈리스 부사장은 "이처럼 중앙은행이 복잡한 온보딩 및 고객확인(KYC) 프로세스를 요구하는 운영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더 많은 시중 은행들이 CBDC 시범 운영 단계에 참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