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믹싱 프로토콜 '토네이도캐시'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제재 조치가 이더리움에 대한 검열 우려와 대응 방안에 대한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코인텔레그래프 등 외신은 이더리움 업계와 커뮤니티가 프로토콜 차원의 검열 이슈를 두고 엇갈린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앙화된 대형 업체들은 규제 이행을 위해 검열 방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커뮤니티는 블록체인 핵심 가치인 '검열 저항'에 대한 타협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논쟁은 지난 8일 미국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토네이도캐시'를 특명지정제재대상(SDN) 명단에 추가하면서 시작됐다.
당국은 거래를 익명화하는 토네이도캐시가 2019년 출시 이후 70억 달러 이상의 암호화폐를 세탁했으며, 북한 연계 해킹 조직 라자루스 등이 해당 서비스를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규제 당국이 불법 금융 범죄자가 아니라 '프로토콜' 자체를 제재하는 것은 이례적인 사건으로, 이더리움 블록체인 자체가 검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촉발했다. 관련 코드를 작성한 알렉세이 페르세프는 네덜란드에서 체포된 상태다.
◇중앙화된 기업들 "규제 이행은 불가피"
제재 조치 이후 대형 업체들이 당국에 협조하는 행보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우려는 더욱 심화됐다.
대형 이더리움 채굴업체 '이더마인'은 정부가 블랙리스트에 올린 '토네이도캐시'와 관련된 거래를 처리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PoS 이더리움을 위한 핵심 소프트웨어 옵션 'MEV-Boost'의 개발팀 플래시봇은 OFAC 규제를 따르기 위해 검증자와 블록 빌더를 연결하는 '릴레이'가 제재 주소를 포함한 거래를 기본적으로 제외하도록 설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커뮤니티가 반발하자, 개발팀은 "예정보다 일찍 릴레이 코드를 오픈하겠다"면서, 플래시봇 자체 릴레이는 OFAC 제재를 이행하겠지만, 다른 개발자들이 손쉽게 대안 릴레이를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더리움 디앱 지원 서비스 업체를 운영 중인 미카 졸투는 "플래시봇의 결정은 다른 릴레이 제공업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릴레이 제공업체들이 검열 없는 릴레이 옵션을 별도로 제공해 개별 검증자에게 선택권과 책임을 넘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분증명 블록체인 '중앙화' 문제, 검열 우려 키워
토네이도캐시 제재 조치는 중앙집중화 위험이 있는 지분증명(PoS) 합의 매커니즘 전환과 맞물려 검열 우려를 더욱 악화했다.
이더리움은 내달 지분증명(PoS) 방식으로 전환된다. 5만 달러에 상응하는 32 ETH를 예치하면 누구나 거래 검증 작업에 참여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PoS 블록체인에서 자금력을 가진 단일 주체가 많은 검증 권한을 확보해 블록체인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왔다. 현재 코인베이스, 크라켄 같은 대형 플레이어들은 이더리움 지분증명 체인인 '비콘체인(Beacon Chain)' 검증자 그룹의 66%를 차지하고 있다.
한 시장 관계자는 "탈중앙 가치를 강조하는 커뮤니티에 비해 잃을 것이 많은 대형 업체들이 정부의 검열 요구를 따를 가능성이 있다"면서 블록체인의 검열 저항 특성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브라이언 암스트롱 코인베이스 CEO는 이같은 우려를 인식한듯 "검열 규제를 따라야 한다면 차라리 거래소의 스테이킹 사업을 접겠다"며 검열 의사가 없음을 밝힌 바 있다.
◇검열 대응 방안 두고 찬반
이더리움 커뮤니티에서는 검열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소셜 슬래싱(slashing, 지분삭감), 사용자 단에서 진행되는 소프트포크(UASF)가 거론됐다.
슬래싱은 검증자가 예치한 자금이 일정 부분 삭감되는 것을 말한다. 트랜잭션의 유효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거나 악의적인 행동을 할 경우 받는 패널티로, 긍정적인 행위를 유도하기 위해 둔 안전장치다. 슬래싱 처분을 받은 검증자는 자금 손실을 입게 되며, 예치금이 16 ETH 미만으로 떨어지면 검증자 자격 자체를 상실하게 된다.
소셜 슬래싱의 효과를 두고 커뮤니티 내 찬반이 갈렸다. 한쪽에서는 이더리움이 신뢰할 수 있는 중립성과 검열 저항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고 찬성했지만, 다른 한쪽에선 "득보다 실이 큰 함정이 될 것"이라고 반대했다.
사이버캐피털 창립자인 저스틴 본은 "슬래싱은 OFAC 규제보다 더 위험한 덫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무고한 검증자의 예치금을 빼앗는 재산권 침해"라면서 "프로토콜 검열에 대해 유효한 솔루션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규제 이행 검증자가 과도하게 많아지고 OFAC 위반 트랜잭션을 아예 검증하지 않는 수준이 되면, 체인 분리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규제 위반 가능성이 있는 트랜잭션을 처리하는 검증자 비율은 매우 적을 것이기 때문에 적정 선에서의 검열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더리움 팟캐스트 '데일리 그웨이'의 창립자인 앤서니 사사노는 "검열 저항은 이더리움과 블록체인 산업 전반이 지향할 가장 높은 목표"라면서 "검열 저항을 타협을 한다면 다른 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핵심 개발자들은 검열 '불허'
이더리움 핵심 개발자들은 검열에 대한 강력한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고이더리움(게스, Geth) 개발자 마리우스 판 데르 위겐은 "검열 저항성을 유지하는 것은 이더리움 커뮤니티의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네트워크에서 트랜잭션 검열을 허용한다면, 이는 근본적인 실패가 될 것"이라면서 "검열을 허용할 경우, 생태계를 떠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루카시 로즈메이는 "이더리움이 검열 허용 코드를 만든다면 개발자들은 프로토콜에 대한 검열을 수행하는 '집행자'가 되는 것"이라면서 "개발자들은 이같은 일을 맡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