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한 기술이 실제 커리어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유니티 테크놀로지스(Unity Technologies)에서 생태계 성장 부사장을 맡고 있는 제시카 린들(Jessica Lindl)은 이에 대한 해답을 ‘커리어 게임 루프(The Career Game Loop)’라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그는 이 개념을 담은 동명의 책을 통해 변화하는 노동 시장에서의 생존 전략을 담아냈다.
린들은 10여 년 전부터 교육과 직업 훈련 현장에서 게임이 가지는 잠재력을 주목해왔다. 전통적인 교육 방식이 21세기형 경력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오히려 게임을 통해 문제 해결력, 협업 능력, 끈기 등 이른바 ‘지속 가능한 기술(durable skills)’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그는 “실제 연구를 통해, 게임 기반 학습이 기존 교육 방식보다 연성 기술 습득에 있어 더욱 효과적이라는 점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통찰은 곧 유니티에서의 경력과 맞물려 본격적으로 확장됐다. 린들이 주도한 교육 프로그램은 매년 100만 명 이상의 학생과 50만 명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하며, 이들 중 절반 이상은 게임 산업이 아닌 타 산업 분야로 진출한다. 이는 게임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경력을 설계하고 발전시키는 핵심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커리어 게임 루프는 전통적인 직업 궤도에서 벗어난 '루프 중심 경력 모델'이다. 평균적으로 사람들은 4년마다 완전히 새로운 역할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를 게임의 핵심 루프처럼 이해하자는 것이 린들의 주장이다. 이를 통해 개인은 이전과 다른 스킬셋을 다시 익히고,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재시작(respawn)’을 두려워하지 않는 유연성을 기를 수 있다.
린들은 "직업 세계는 더 이상 직선형 경로가 아니며, 게임처럼 여러 번의 반복 주기와 퀘스트, 리스폰이 동반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책에서는 50여 개의 게임과 업계 인물 이야기, 그리고 다양한 산업 사례를 인용해 어떻게 '게이머 마인드셋'이 현실 세계의 경력 탐색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특히 그는 구직 과정에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파급력을 강조했다. 지원서를 200개 보내 만나게 되는 채용 기회는 1건에 불과하지만, 정보 인터뷰나 인맥 네트워킹을 12번 진행하면 같은 확률의 취업 기회를 만든다는 데이터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린들은 “커리어의 핵심 열쇠는 약한 연결 관계(weak ties)에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대학 진학과 같은 전통 경로에 대한 이분법적 판단을 경계한다. 꼭 학위를 취득하지 않아도 수개월 간의 기술 훈련과 인증만으로도 취업 문을 열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왜 이 분야에서 일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근본 질문이라고 설명했다.
린들의 이러한 활동은 유니티 차원에서도 긍정적인 반향을 얻고 있다. 단순히 게임 엔진 사용법을 익히는 데 그치지 않고,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협업 능력, 창의적 사고,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등 ‘직무 생존 기술’을 함양시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유니티 생태계를 강화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실패의 가치다. 실패는 결코 끝이 아니며, 게임에서처럼 다시 시도하고 전략을 조정할 수 있는 기회라는 메시지는 혼란스러운 현재의 취업 시장에서 특히 설득력을 가진다. 린들은 “게임은 실패를 허용하고, 실패에 기반한 성장 마인드셋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한다”며, 그것이 오히려 미래 경력 설계에 적합한 원리라고 강조했다.
책 출간 후 린들은 교육계, 고용 업계, 다양한 산업 단체에서 활발한 강연과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그는 “우리가 공유하는 실천적 경험과 데이터를 사람들에게 더 널리 알릴수록, 더 많은 이들에게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책 집필을 시작했고, 그 믿음을 행동으로 이어가고 있다.
궁극적으로 그녀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현대인은 모두 게이머다. 그리고 게이머로서 익힌 전략과 태도를 커리어라는 무대 위에서 활용할 때,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경로와 기회가 열린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던져야 할 질문 역시 이제는 달라진다. “왜 게임만 하니?”가 아니라 “그 게임에서 배운 게 뭔데? 그걸 어디에 써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