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리스는 그저 게임 그 이상이었다.” 수십 년간 게이머들의 머릿속을 지배한 이 전설적인 퍼즐 게임의 배경에는 한 남자의 집념과 인생이 깊이 얽혀 있다. 테트리스를 대중화한 1등 공신 헹크 로저스(Henk Rogers)가 자서전 ‘더 퍼펙트 게임: 러시아에서 온 사랑(The Perfect Game: Tetris, From Russia With Love)’을 발간하며,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테트리스의 숨겨진 이면과 자신의 삶 전반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책은 단순한 추억 회상이 아니다. 헹크 로저스가 1980년대 후반, 소련으로부터 테트리스의 글로벌 판권을 따내기 위해 감행한 *극비* 침투 작전부터, 이후 기계 하나 없는 가운데 닌텐도 게임보이용 테트리스를 계약하는 성공까지, *게임 업계 역사상 가장 극적인 비즈니스 드라마*가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이 과정에서 당시 게임 창시자인 알렉세이 파지트노프와 오랜 우정을 쌓고, 그가 창작자로서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테트리스 컴퍼니’를 직접 설립해 공동 소유 체제를 확립했다.
현실은 영화보다 치열했다. 2023년 애플TV+의 ‘테트리스’ 영화가 감정적 울림을 담은 드라마로 그려졌지만, 헹크는 시나리오를 읽고 “이건 너무 엉터리”라며 임팩트와는 달리 정확하지 않은 대목들에 실망했다. 정확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그는 직접 집필을 결심했고, 그렇게 자서전이 탄생했다. 특히 그는 “알렉세이와 보드카병을 비우며 소련식으로 마셨던 술자리”와 같은 생생한 에피소드를 담아, 그 시절의 긴장감과 인간적인 면모를 생생히 그려냈다.
그러나 이 책은 테트리스의 뒷얘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2005년의 심장마비, 이른바 ‘위도우메이커’라 불리는 *치명적인 발작*을 기적으로 이겨낸 그는 이후 삶의 방향을 전환한다. “살아 있는 이유를 되찾았다”며 그는 기술업계 거물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기후 변화 문제 해결에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하와이의 블루 플래닛 재단(Blue Planet Foundation)과 블루 플래닛 얼라이언스(Blue Planet Alliance)를 설립해 재생에너지 확산을 글로벌 운동으로 확장시켜가고 있다.
게임이 주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철학도 뚜렷하다. 그는 “국내외에서 수많은 게임들이 돈벌이에만 급급하지만, 진정한 게임은 플레이어가 삶에서 ‘서사적 승리’를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팩맨이나 비주얼 중심의 AAA급 대작들과는 달리, 테트리스는 세대와 문화를 초월해 그 정교한 수학적 구조와 간결성으로 수십 년째 유효한 ‘완벽한 게임’으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테트리스를 *정신의학적 치료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 그는 “사고능력이나 인지 테스트를 할 수 있는 테트리스 기반 진단 툴을 개발 중”이라며, 향후 치매 예측이나 PTSD 완화 등 의료 응용 가능한 게임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게임 산업의 미래에 대해 그는 *창작자 중심의 생태계*로의 이행을 주문했다. “코로나19로 수요는 폭증했지만, 결국 성장을 독점한 몇몇 타이틀만 살아남았다”며, 모두가 상생하는 구조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는 실제로 ‘현실 세계에서 행동을 유도하는 게임’을 개발 중인데, 작은 친환경 미션을 실천하면 경험치를 얻고, 개인이 제안한 미션이 확산되면 추가 보상을 받는 구조다. 그는 이를 “세상과 연결되는 롤플레잉 게임”이라 칭하며, 앞으로의 게임은 가상의 공간을 넘어 실천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올해로 테트리스가 출시 40주년을 맞은 지금, 이 고전 게임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헹크 로저스의 이야기는 단순한 회고가 아닌, 게임이 인간 삶과 사회, 나아가 지구촌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선언문이다. 딸 마야 로저스가 CEO로 이끄는 테트리스 컴퍼니는 앞으로도 이러한 철학을 계승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