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 중심의 인재 이동이 2025년 들어 더욱 뚜렷하게 확대되고 있다. 2023~2024년에 걸친 시장 침체와 내부 구조 변화가 맞물리며 VC 업계 전반에서 파트너급 인사부터 중간 관리자, 초기 단계 투자자까지 이직과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투자 활황기의 정체성 위기, AI 시장의 급성장, 자금 조달 경색 등 복합적인 변수들이 맞물리며, 새로운 경로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단순한 인재 유출을 넘어 구조적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3년은 대형 펀드의 투자 위축과 실적 악화로 대표되는 ‘하강 국면’의 정점이었다. 이 시기 많은 벤처투자자들은 딜 소싱 기회가 사라지고, 포트폴리오 가치 보존에 매달리며 경력의 방향성을 되돌아보게 됐다. 특히 자산 운용 중심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분위기 속에서,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던 개별 투자자들이 줄줄이 탈정렬을 겪었다. 수년 동안 쌓아온 경력과 조직 내 역할 사이의 균열이 본격적으로 터진 해였다.
이 같은 변곡점은 새로운 기회로 이어졌다. 창업 욕구를 지닌 VC 출신들은 시장 침체를 오히려 독립의 계기로 삼았고, 대형 VC의 위계질서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투자 철학을 펼치려는 흐름도 뚜렷했다. 2024년 들어 회복 기대감은 있었지만 시장 반등은 더뎠고, 그에 따라 인적 자원의 재분배는 지속됐다. 특히 AI, 인프라, 생명과학 분야로 진입하거나, 초기 단계 스타트업 지원, 운영 책임자 전환 등 경로 다변화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실제로 파운더스펀드의 샘 블론드는 오퍼레이션 쪽으로 커리어를 전환했고, 전 벤치마크의 마일스 그림쇼는 다시 스로라이브 캐피털로 복귀했다. 키스 라보이스는 코슬라 벤처스로 돌아가며 업계에 화제를 모았다. 코튜 출신의 마이클 길로이와 고쿨 라자람이 함께 설립한 마라톤MP 같은 신생 펀드의 등장은, 독립 성향의 VC들이 본격적으로 시장 내 영향력을 키우는 흐름의 단면이다.
반면 기존 펀드들의 구조조정도 이어지고 있다. 그레이크로프트는 자금 모집 실패 이후 다섯 명의 투자자를 감원했고, 옥토퍼스벤처스는 투자팀 16%를 정리했다. 이니셜라이즈드 캐피털 또한 내부 개편을 통해 방향을 재정비하고 있다. 유럽 시장에서도 탈퇴 및 합류가 활발히 일어나면서, 판 자체가 재편되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2025년 들어서는 시장 분위기가 전년보다는 다소 긍정적으로 전환되고 있다. 1분기 기준 전 세계 자금 유입이 전분기 대비 17% 증가한 가운데, 건전한 회복 조짐이 포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상위 파트너들의 자리를 잇는 중간 인재들의 기회도 다시 늘어나고 있으며, 현재가 바로 경력 전환을 시도할 수 있는 최적 지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VC 업계의 인재 재편은 단기적인 이직 트렌드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거대 펀드의 권위가 흔들리는 동시에, 기술 중심의 신흥 VC들이 새 판을 짜는 시점에서 인재 이동은 투자 생태계의 지형 자체를 바꾸고 있다. 하락기였던 2023~2024년과는 달리, 올해는 활로를 모색하고 리더십 공백을 메우려는 전략적 움직임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지금, 변화에 동참할 것인지 정체에 머물 것인지. 벤처 투자자 누구에게나 던져진 이 질문은 단순한 선택이 아닌, 미래 시장의 기준을 결정지을 선택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