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또 다시 ‘테마주의 계절’을 맞았다. 상온 초전도체, 2차전지, 그리고 정치 테마주까지. 이름만 다를 뿐, 이들 테마는 한결같이 묻지마 투자와 거품의 전형적인 양상을 되풀이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하나, 정체불명의 찌라시 하나로 종목이 상한가를 치고, 다시 수직 낙하하는 흐름은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됐다.
‘논문 하나에 5조 증발’… 초전도체 테마의 허상
2023년 여름, ‘LK-99’로 명명된 상온 초전도체 관련 논문이 온라인상에 등장하자 국내 증시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논문에 등장하거나 관련 가능성이 제기된 신성델타테크, 덕성, 서남, 씨씨에스 등은 연일 상한가를 기록하며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특정 기업이 실험 장비를 납품했는지, 연구진과 연관이 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았지만, ‘연관 가능성’만으로 주가는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논문이 검증 실패로 결론 나며 상황은 급변했다. 며칠 새 주가가 폭락했고, 관련 종목들의 시가총액은 약 5조 원 가까이 증발했다. 결과적으로 초전도체 테마는 아무 실체 없는 기대감이 만들어낸 신기루에 불과했다.
‘배터리 아저씨’와 함께 오른 2차전지… 그리고 추락
2차전지는 최근 몇 년간 국내 증시에서 가장 강력한 테마 중 하나였다. 그 중심에 있었던 종목 중 하나가 바로 금양이다. 전해질 첨가제 기술 보유와 함께 이차전지 핵심 소재 기업으로 주목받으며 주가는 2023년 한 해 동안 폭등했다. 특히 이차전지 산업의 급성장을 전망한 유튜브 인플루언서 ‘배터리 아저씨’ 박순혁 작가가 홍보이사로 재직하며, 투자자들 사이에서 ‘믿고 사는 테마주’로까지 통했다.
그러나 불과 1년 반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지난해 9월 45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가 철회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데 이어, 몽골 광산 실적 추정치 부풀리기 논란까지 더해졌다. 결정타는 지난 21일 외부 감사인으로부터 받은 ‘의견 거절’ 감사의견이었다. 회계법인은 “계속기업으로서 존속 능력에 유의적 의문이 있다”며 상장사의 존속 가능성 자체를 문제 삼았다.
이에 따라 금양 주식은 현재 거래정지 상태이며, 한국거래소는 상장폐지 실질심사 절차에 돌입했다. 금양은 오는 4월 11일까지 이의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이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상장폐지 수순에 들어간다.
2023년 9조 원에 달했던 시가총액은 현재 6000억 원대로 축소됐고, 주가는 19만4000원에서 9900원으로 폭락했다. 금양의 사례는 이차전지라는 유망 산업조차 실적과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시장의 신뢰를 잃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유튜브나 인물 중심의 기대감만으로 형성된 주가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며 “특히 테마주일수록 실적 기반 검토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정치 테마주의 부활… 이름 하나로 상한가
최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일을 지정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법적 리스크가 일정 부분 해소되면서 정치 테마주가 다시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정치인의 이름이나 과거 이력, 정책 방향과 연관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한가를 기록한 종목들이 줄을 잇고 있다.
대표적으로 형지글로벌, 오리엔트정공, 동신건설 등은 이재명 대표와의 연관 가능성만으로 상한가를 기록했다. 형지글로벌은 계열사가 과거 무상교복 정책의 수혜주로 거론된 바 있고, 오리엔트정공은 이 대표가 과거 계열사인 오리엔트시계에 근무했다는 점에서 관련주로 분류됐다. 동신건설은 별다른 실적 개선 없이 정치 테마에 편입되며 단숨에 상한가에 올랐다.
이 외에도 소프트캠프(대표이사 이재명과 동문), 상지건설(이재명 캠프 참여 인사), 에넥스·한솔홈데코(기본주택 정책 수혜 기대), 코나아이(경기지역화폐 운영 대행사) 등 다수 종목들이 정치적 이벤트와 연결되며 단기 급등세를 보였다.
문제는 이 같은 주가 급등이 기업의 실적이나 펀더멘털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유튜브 영상, 커뮤니티 찌라시, 온라인 소문 등을 통해 관련성 여부가 확대 재생산되며 투기적 수요가 몰리는 구조다. 과거 에이텍, 우리기술, 한창, 정상제이엘에스 등도 유사한 흐름을 보이며 선거 직후 급락하거나 거래정지 위험에 직면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 테마주는 항상 새로운 키워드를 따라 반복되고 있지만, 그 끝은 대부분 좋지 않았다”며 “이슈가 소멸된 뒤 남는 것은 고점 매수의 손실과 차트뿐”이라고 경고했다.
“이 주식, 정말 그 테마 맞나?”
초전도체든, 2차전지든, 정치든. 결국 이들 테마주는 이름만 바뀔 뿐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특정 키워드에 과잉 반응하고, 유튜브와 커뮤니티를 통해 광풍처럼 퍼진 뒤, 누군가는 고점에서 빠져나가고 누군가는 고스란히 피해를 입는다.
테마주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기대감을 안고 시장을 뒤흔들 것이다. 그러나 고점에 물리지 않기 위해서는 투자자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종목은 정말 그 테마와 관련이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마지막 출구전략’에 내가 휘말린 건 아닌가?”
묻지 말고, 확인하라. 그것이 테마주 시대를 살아가는 투자자의 최소한의 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