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범유럽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에 대한 공공 협의 결과를 공개했다. 공공 협의를 통해 확보한 8200건 이상의 시민 의견은 유럽의회와 ECB이사회의 디지털유로 실험 진행 및 발행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데이터가 될 전망이다.
2021년 4월 15일(이하 현지시간) ECB는 디지털 유로의 공개 협의 결과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2020년 10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진행된 공개 협의 과정에서 8200건 이상의 의견이 접수됐다. 국가별 설문 참여율은 독일 47%, 이탈리아 15%, 프랑스 15%로 확인됐다.
유럽인들이 디지털 유로에 가장 바라는 사안은 프라이버시 보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43%는 디지털 유로가 갖춰야 할 최우선 기능으로 '프라이버시 보장'을 선택했다. 완전 익명성을 요구하는 응답률은 10% 미만이었다.
두 번째로 중요도가 높은 사안은 보안(18%)이었다. 11%는 유로존 전역에서 결제 지원, 9%는 추가 비용 없음, 8%는 오프라인 사용을 꼽았다.
공개 협의 보고서는 유럽의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ECB 이사회는 2021년 여름 디지털 유로 실험의 진행 여부를 결정하고 이후 6개월에서 1년 내 실제 발행 여부를 확정할 계획이다.
익명성이냐 금융 범죄냐 줄타기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암호화폐, 민간 스테이블코인 등 대안 화폐가 등장하면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CBDC 발행을 고심하고 있다.
프라이버시는 CBCD와 관련해 가장 쟁점이 되는 사안이다. 거래 기밀을 유지해 개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불법 활동을 막아야 한다는 상충되는 과제 때문이다.
미국은 프라이버시 등 CBDC가 가진 핵심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CBDC 개발에 신중히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부터 디지털 위안 실험을 실시해온 중국은 중앙 당국이 거래 정보를 전면 관리하는 '통제 가능한 익명성(controllable anonymity)'을 채택했다. 최대한 익명성을 보장하겠지만 자금세탁, 테러 자금 조달, 탈세, 범죄 행위에 대한 철저한 감독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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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로 발행 갈길 멀다…2025년 전망
ECB는 디지털 유로화가 민간 화폐 경쟁에 대비하고 유럽 결제·거래 부문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방인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관련 절차는 진행 중이지만 실제 발행까지는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유로 발행에 대한 독일의 반응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독일은 CBDC와 같은 디지털 화폐가 은행의 예금 사업과 소비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 ECB 총재는 2021년 3월 23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ECB 이사회와 의회가 프로젝트를 승인하면 디지털 유로 채택까지 4년 정도가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디지털 유로는 단순한 기술 작업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다. 디지털 유로는 기존 시스템을 방해하지 않고 강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재는 "유럽인들이 현금도 계속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비오 파네타(Fabio Panetta) ECB 집행이사는 "디지털 유로는 유럽인의 필요를 충족할 때만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유로가 공개 협의에서 드러난 시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