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SVB)이 미국 중소은행 퍼스트 시티즌스에 인수되면서 지난 40년간 스타트업의 '자금줄' 역할을 해 온 SVB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27일(현지시간) 퍼스트시티즌스가 SVB의 모든 예금과 대출을 모두 인수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SVB가 뱅크런 사태로 파산 절차를 밟은 지 17일 만이다.
1983년 10월 실리콘밸리 파이낸셜 자회사로 설립된 SVB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의 샌타클래라에 본사를 둔 지 40년 만에 SVB는 문을 닫은 것이다.
SVB는 그동안 스타트업에 돈줄 역할을 하며,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으로 성장했다.
기술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미국 벤처 캐피털 산업의 중심이었고, 스타트업에 예금과 대출은 물론, 투자 및 프라이빗뱅킹 서비스 등도 제공해 왔다.
SVB는 미국 테크·헬스케어 벤처기업 중 44%를 고객으로 두고 있으며, 시스코, 에어비앤비, 링크드인, 우버 등 많은 스타트업을 지원해왔다.
다른 은행들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신용을 제공하면서 스타트업 성장을 지원했고, 이러한 신용은 스타트업이 다른 자금을 조달하는 데에도 역할을 했다.
경기가 회복된 시기, 자금 여유가 생긴 스타트업들의 대출수요가 줄자 실리콘밸리은행은 여유자금을 국채, 모기지, 정부 보증채 등으로 눈을 돌렸다. 그동안 가장 안전하다는 미 국채로 구성된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에 투자해온 것이다.
하지만 기준금리 급등으로 미 국채는 가치가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의 긴축정책이 상황을 역전시켰다.
실리콘밸리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자금 유치에 곤란을 겪은 스타트업들이 예금 인출을 늘렸고, 이에 응하려고 보유하고 있던 국채를 매도한 것이 손실을 발생시켰다. 은행은 이를 메꾸기 위해 증자계획을 발표해 주가 폭락과 지난 9일 대인출로 이어졌다.
시장 전반에 자금 융통이 어려운 상황에서 스타트업이 한 번에 그동안 맡겨둔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하면서 예금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SVB는 18억 달러(한화 약 2조 3400억원) 규모의 손실을 내며 이를 매각했다. 이 소식은 대규모 뱅크런을 일으켰고 끝내 파산으로 이어졌다.
즉, 단기간의 기준금리 급등에 따른 위기관리 실패가 결국 SVB 파산을 볼러온 것이다.
스타트업의 자금줄 역할을 했던 SVB가 문을 닫으면서 자금 지원이 필요한 실리콘밸리 생태계의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스타트업은 지난해 자금이 고갈되고 가치가 대폭 하락하는 힘든 시기를 겪은 후 올해에는 상황이 회복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SVB 붕괴로 실리콘밸리 전역의 불안과 두려움이 더 커졌다"고 전했다.
12개의 벤처캐피털 펀드에 지분을 가진 투자자인 비잔 살레히자데는 "지금은 벤처 자금을 조달하기에 최악의 시기"라며 자신의 펀드가 지원했던 회사의 4분의 1에서 3분의 1이 앞으로 6개월 이내에 자금이 바닥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은행 내 파산 행렬은 이후 시그니처뱅크 폐쇄 등으로 이어졌다. 계속해서 미국에서 자산규모 14위 샌프란시스코 퍼스트리퍼블릭은행에서도 대량 예금인출이 발생해 JP모건체이스 등 미국 11개 대형은행이 300억달러(한화 약 39조원)의 예치금을 지원했다.
한편,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의 영향은 유럽으로도 번졌다. 15일 자산규모 세계 9위인 글로벌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가 내부통제 문제점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단소송을 당하면서 주가 폭락 이후 뱅크런이 발생했다.
스위스 중앙은행이 급히 71조원의 구제자금을 지원, 정부 주도로 스위스 최대 은행인 유비에스(UBS)에 인수됐으나 시장의 불안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