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태그호이어(TAG Heuer)가 포뮬러1(F1) 스폰서십을 계기로 브랜드 입지를 강화하고 있지만, 생산 확대에는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24년 LVMH가 체결한 연간 약 1억 달러(약 1,460억 원) 규모의 복수 브랜드 F1 스폰서 계약으로 인해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진 가운데서도, 태그호이어는 당장의 수요 증가에 맞춰 시계 생산량을 무리하게 늘리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태그호이어 CEO 앙투안 팽(Antoine Pin)은 최근 인터뷰에서 “브랜드의 매력도가 상승해 구매 수요가 느는 것은 환영하지만, 예상 수요에 먼저 대응해 생산량을 공격적으로 늘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안정적인 공급 계획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백악관이 스위스산 시계 등 일부 수입품에 대한 관세 강화를 발표하기 전부터 이 같은 태도를 취해왔다고 덧붙였다.
이번 F1 스폰서십은 시계업계가 경기 침체와 소비 심리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점에 체결된 것으로, 브랜드에는 적지 않은 마케팅 투자 부담이 따른다. 팽 대표는 “마케팅 지출이 커진 만큼, 공급 전략은 오히려 신중해야 한다”며 “과잉 생산으로 인해 재고가 쌓이는 사태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24년 태그호이어는 약 38만 개의 시계를 생산해 6억7,000만 스위스프랑(약 1조 1,818억 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년 대비 9% 가까운 성장률로, 브랜드가 고급 시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다만 회사 측은 이 수치를 공식적으로 확인하지는 않았다.
브랜드는 F1 계약 효과를 반영해 '포뮬러1' 컬렉션을 재출시했으며, 신규 모델은 솔라그래프(Solargraph) 무브먼트와 38mm 케이스를 채택해 실용성과 미학을 모두 고려했다. 이번에는 세 가지 기본 라인업과 여섯 가지 한정판이 함께 출시된다. 이와 함께 전설적인 드라이버 아일톤 세나(Ayrton Senna)의 발언에서 영감을 얻은 신규 슬로건 ‘Designed to Win’도 공개됐다.
포춘드 브랜드답게 태그호이어는 다양한 가격대의 시계를 전개하고 있으며, 입문형 모델은 유로화 기준 2,000 유로 미만인 반면, 최근 일부 초고가 제품도 선보였다. 대표적으로 올해 선보인 ‘모나코 스플릿-세컨드 크로노그래프 F1’은 세라믹 케이스에 수공 마감 무브먼트를 더한 10피스 한정판으로, 15만 5,000유로(약 2억 2,630만 원)에 책정됐다.
팽 대표는 “럭셔리는 가격대가 아닌 가치에 대한 표현”이라며 “소비자가 가격 대비 강력한 가치를 원하고 있으며, 이는 합리적인 고급 시계 시장 전반에서 요구되는 방향성”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고객 반응에 따라 일시적인 품귀 현상이 일어날 수 있고, 그럴 경우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요와 공급 조절이 까다로운 시계 산업 특성상 하나의 모델이 기획부터 매장에 진열되기까지 최대 12개월이 소요된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태그호이어는 F1 마케팅을 활용한 이미지 제고에 집중하면서도 생산 측면에서는 철저히 보수적인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팽 대표는 “이러한 시기는 오히려 브랜드가 차별화될 수 있는 기회”라며 “도전적인 시기를 앞으로 나아갈 발판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