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미국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유럽 내 확산에 대한 경고 수위를 높이며, 디지털 유로 도입을 통해 통화 주권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8일(현지시간) ECB 집행이사 피에로 치폴로네(Piero Cipollone)는 공식 홈페이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디지털 유로가 유럽 통화 시스템 내 스테이블코인의 외화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적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디지털 유로는 외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유로존에서 보편적인 결제 수단으로 채택되는 것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번 발언은 치폴로네 이사가 수차례에 걸쳐 강조해온 경고의 연장선으로, 특히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글로벌 확장 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그는 "미국의 친암호화폐 기조가 강화되며 유럽 금융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며 "디지털 유로 도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치폴로네는 "외국 결제 수단 및 카드사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유럽의 자율성을 훼손한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공-민간 협력의 핵심이 디지털 유로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를 통해 유럽이 결제, 수수료, 데이터 주권에서도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캐시 사용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캐시는 유럽의 금융 포용성과 회복탄력성을 뒷받침하는 '주권적 수단'이지만, 온라인 구매가 유럽 소매거래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지금의 환경에서는 활용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금은 온라인에서 사용할 수 없고, 유럽 내 결제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구조 탓에 비유럽 기업의 결제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움직여야 할 때"라며 "디지털 유로와 현금 법정화 규정 모두를 긴급히 추진해 위기 대응 능력을 확보하고 외자 종속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ECB의 이러한 입장과 별개로, 디지털 유로 프로젝트는 유럽 소비자들 사이에서 회의적인 반응을 마주하고 있다. 지난 3월 발표된 ECB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유럽인이 디지털 유로의 실질적 가치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우려까지 겹쳐 채택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