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하원 의원에서 디지털 달러 발행을 위한 법안이 발의됐다. 다만 해당 법안에서는 디지털 달러가 블록체인을 활용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가 아닌 단순한 형태의 디지털 화폐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3월 28일(현지시간) 코인텔레그래프, 코인데스크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하원 의원에서 “ECASH 법안 (Electronic Currency and Secure Hardware Act)”이 발의됐다. 해당 법안은 미국의 통화정책을 수립·시행하는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아닌 재무부가 디지털 달러를 개발하고 시범 운영할 것을 요구하는 법안이다.
ECASH 법안은 하원 금융서비스 위원회의 핀테크 TF(태스크포스)의 의장인 스티브 린치(Stephen Lynch) 메사추세츠주 민주당 하원 의원을 비롯해 추이 가르시아(Chuy Garcia) 일리노이주 민주당 하원 의원, 아야나 프레슬리(Ayanna Pressley) 메사추세츠주 민주당 하원 의원 등이 공동 발의했다.
코인텔레그래프에 따르면 ECASH 법안에 의한 디지털 화폐는 전 세계 중앙은행에서 도입하거나 연구하고 있는 블록체인 적용 CBDC 형태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안을 발의한 하원의원들은 CBDC를 배제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린치 의원은 “ECASH 법안에 의해 시작된 시범 운영은 CBDC의 잠재적 설계와 도입 옵션을 조사해온 연준과 조 바이든(Joe Biden) 행정부의 노력을 보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안에 따르면 제정 이후 90일 이내에 2단계 디지털 화폐 시범 운영을 시작할 것으로 계획돼 있으며, 제정 이후 48개월 이내에 실질적인 디지털 달러가 대중에게 배포돼야 한다.
법안의 목적은 경제적으로 소외되거나 기술적 접근이 어려운 사람에게 보다 사용하기 쉬운 미국 달러의 디지털 버전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린치 의원은 “해당 디지털 달러는 소비자 보호와 데이터 프라이버시를 ‘최대화’ 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록체인 없는 디지털 달러…“익명성 강화”
그동안 전 세계 정부, 의회, 중앙은행에서 밝힌 디지털 화폐 관련 법안, 정책을 살펴보면 대부분 블록체인 분산원장기술(DLT)이 적용돼왔다. 탈중앙화를 할 것인가 중앙집중식을 채택할 것인가의 차이는 있었어도 블록체인 자체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놀랍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린치 하원 의원의 법안 발의 과정에 참여했던 로한 그레이(Rohan Grey) 월라멧 대학교 법대 교수는 “해당 법안에서 설명하는 디지털 달러는 즉각적, 최종적, 직접적인 P2P(Peer to Peer)를 사용하는 오프라인 처리 방법이다. 디바이스를 사용하는 이 디지털 화폐는 공통 또는 분산된 원장이나 기타 추가 승인이나 검증이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까지 나온 CBDC의 경우 모든 거래가 원장에 기록되기 때문에 완전한 익명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라며 “원장이 없다면 거래를 검열할 사람도 없고 승인받아야 할 대상도 없다”고 덧붙였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CBDC가 익명성이나 개인정보보호에 취약하고 이는 개인정보보호의 관점이나 자유주의의 관점에 결함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특히 그레이 교수는 사용의 관점에서 ECASH 법안의 디지털 달러가 CBDC보다 소매 환경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주장했다. 은행이나 정부, 카드사와 같은 중개자 없이 사용자 간의 승인으로 거래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거래가 더욱 빠르게 거래할 수 있으며 수수료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디바이스(하드웨어)에 돈을 보관하고 사용하면서 원장을 활용하지도, 중개자도 없기 때문에 디바이스를 분실할 경우 그 안에 저장된 돈을 모두 잃을 수 있다는 위험도 존재한다. 이외에도 강력한 익명성을 악용한 자금 세탁이나 보안 시스템의 미비점을 노린 해킹 혹은 ‘위조 달러’ 생성 등의 위험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디지털 달러, 연준보다 재무부가 발행해야
ECASH 법안 발의로 미국의 디지털 화폐가 어떤 모습으로 출시될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연준은 지금까지 CBDC와 관련된 연구를 이어왔으며 지난 1월에는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이 발의될 경우 연준에 의한 디지털 화폐 발행이 아니라 재무부에 의한 발행이 현실화된다.
그레이 교수는 “만약 연준이 CBDC를 발행한다고 하면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라며 “하지만 오늘날 현금이나 계좌 예금 등은 다양한 모습으로 디자인돼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예상됐던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디지털 화폐를 연준이 아닌 재무부가 발행해야 한다고 설계한 것에 대해서 그레이는 “기존의 화폐처럼 사용되는 디지털 상의 무엇인가를 만든다면, 토큰 형태가 될 것이고, 무기명으로 사용돼야 하며, 이를 사용하기 위한 계정이나 중개자가 없이 소매 중심이 된다면 누가 발행해야 할까? 이런 모든 요소를 고려해 봤을 땐 재무부가 유력한 후보다”라고 주장했다.
그레이는 이어 “연준은 대부분 거시경제적으로 훈련된 학자들과 은행 직원들로 구성돼 있다. 그들은 시민들의 자유나 외교 전문가가 아니다”라며 “하지만 재무부는 외국 경제 제재를 집행하는 외국 자산 통제국이 있으며 가장 오래된 화폐 기관인 조폐국과 인쇄국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재무부가 더욱 넓은 범위의 권한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