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중앙화 자율조직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다오)’는 중앙 관리자 없이 모든 결정과 서비스가 다수의 합의로 이뤄지는 탈중앙화 조직이다. DAO 생태계 분석 플랫폼 딥다오(DeepDAO)에 따르면, 2022년 2월 11일 기준 4227개의 DAO가 존재한다. 총 가치만 132억 달러(15조 4883억 원) 규모다. 공동 이익을 추구하며 합의와 투표, 계약으로 움직이는 DAO는 골프장 인수부터 기업 운영, 우주여행, 국보 구매까지 다양한 목표로 움직인다. DAO는 웹3.0과 함께 블록체인 산업의 새로운 트렌드로 집중되고 있다.
김시호 교수의 방에는 빽빽이 들어선 책장이 한 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오랜 세월 손을 타 색이 바랜 전문서적들은 그가 학문에 몰두한 기간을 짐작케 한다. 김 교수는 1995년 반도체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자동차, 인공지능을 연구하며 자연스럽게 IT라는 영역으로 들어왔다. ‘산업혁명 이후 사회는 DAO로 운영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김시호 연세대 글로벌융합공학부 교수를 만나 DAO의 현재와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2022년 들어 DAO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DAO는 무엇이며, 어떤 원리로 작동하나요?
DAO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활용해 모든 결정과 계약이 탈중앙화되는 조직(기구)입니다. 중앙 관리자 없이 공동의 목표를 가진 사 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집해 자본을 모금·운영합니다. 의사 결정·보상·배분 등 모든 활동이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진행되고요.
소수의 관리자가 아니라 모든 참여자에게 의사 결정권과 조직 통제력이 분산되는 형태입니다. DAO는 조직의 규정과 정책, 이해당사자들(Stakeholders), 동작하는 스마트 컨트랙트 코드, 그리고 검증 시스템(Validator)으로 구성됩니다. 사용자는 본인 소유의 지갑 계정(일반적으로 공개키 코드)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요.
스마트 컨트랙트는 이더리움 기반의 블록체인 시스템을 적용해 거래 성립 조건을 정합니다. 거래 조건을 만족하면 자동으로 계약이 체결되고, 계약 조건대로 거래가 실행됩니다. 실행 결과(트랜잭션)는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저장합니다.
스마트 컨트랙트를 코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보통 이더리움의 솔리디티(Solidity)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는데, 솔리디티에서 개발된 프로그램을 탈중앙화 앱(DAPP)이라고 해요. 변환 (Compile)된 명령(Bytecode)은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저장돼 사용자들의 호출로 자동 실행됩니다.
DAO를 어떤 오프라인 기관이나 조직에 100% 적용하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그러나 온라인 거래 시스템, IoT(사물인터 넷) 동작 시스템, 게임 서비스 등의 분야에서 활발하게 DAO를 적용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DAO는 앞으로 확장될 NFT와 메타버스 환경을 구성할 것입니다. 특히 인간의 개입 없이 자동화되고 탈중앙화된 새로운 ‘가상공간’에서 온라인 거래 서비스 시스템을 구성하는 방법으로 주목됩니다.
디지털 시대에 신뢰 구현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DAO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비잔티움 장군 문제(Byzantine Generals Problem)와 관련이 있습니다. 화폐를 보면 발행권자가 있고, 위조하기 어려운 표식 장치를 넣습니다. 졸업 증명서라든지 한창 문제가 됐던 재직증명서가 다 종이로 된 시대잖아요. 온라인상에서는 증명서가 정본인지 아닌지 신뢰의 문제 있죠. 내가 데이터를 전달했는데 이 데이터가 제대로 전달됐을까, 해킹을 당해서 위조된 게 아닐까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만든 방법이 블록체인의 합의 알고리즘이거든요. 그래서 비트코인에서 사용하는 작업 증명(PoW, Proof of Work) 방식이 비잔틴 프로세스의 해답으로 나온 거예요. 약 10년 동안 사람들이 해킹해 보려 했는데 해킹이 안 된 거잖아요. 신뢰가 시작된 거죠.
예를 들면 두 사람이 책 한 권을 1만 원 주고 거래하기로 약속했어요. 근데 구매자가 1만 원을 안 보냈을 때,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1만 원을 주기로 한 걸 어디 가서 증명을 합니까? 변호사나 제3자를 앉혀놓고 사인한 걸 봤다고 도장을 찍든, 중개인을 두고 거래를 하든 해야 하잖아요.
스마트 컨트랙트는 두 사람이 도장 찍었다는 걸 자동으로 기록하는 거예요. 그러면 해당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모두에게 이들이 도장 찍은 걸 알려줍니다. 스마트 컨트랙트는 일종의 실행 코드예요. 합의를 통해 어떤 조건이 만족되면 자동으로 계약을 이행해 주니 신뢰를 구축할 수 있죠. 또 스마트 컨트랙트가 있으면 사용자가 있어야 하는데, 해당 스마트 컨트랙트의 목표에 자율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 DAO가 되는 거죠. 그래서 DAO가 신뢰를 구현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탈중앙화’라는 개념은 디지털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탈중앙화는 지금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웹3.0의 기본 철학입니다. 웹2.0은 데이터 자원을 중앙 저장소(클라우드)에 집중하는 방식의 서비스예요. 웹3.0은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 서비스입니다. 서버라는 중앙화된 개념이 없어요. 개인 대 개인(P2P)으로만 정보가 오가요. 웹2.0이 클라우드 웹 서비스로 돌아갔다면, 블록체인과 인터넷 기술이 결합해 스마트 컨트랙트 사용이 본격화되는 웹3.0은 DAO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운영될 것입니다.
물론 정부, 은행 등 중앙 기관은 직접 통제가 어려운 탈중앙화를 원하지 않겠지만, 자동화된 업무처리에서 거래의 무결성을 입증하는 방법은 탈중앙화 밖에는 없습니다. 예를 들면, 시스템이 인간을 대신해 은행 업무를 한다고 할 때, 공인인증기관이 ‘어떻게 인간이 직접 수행하지 않은 거래를 신뢰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만납니다. 은행원을 만나지 않고 통장을 개설할 때, 탈중앙화하는 게 신뢰가 높고 효율적이죠.
디지털 시대의 경제는 제3자(권 력기관 또는 중개업자 등)가 개입하지 않습니다. 현재는 부동산 전세를 놓으려는 사람과 수요자 두 사람만 만나서 부동산 거래 계약을 체결할 수 없죠. 나중에 한 사람이 계약의 내용을 부인하거나 내용을 변조하면 입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탈중앙화 방식에서는 계약서의 변조나 부인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제3자의 개입 없이도 거래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어떤 활용 사례를 예상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기업이 바뀔 거고요. 의사결정 구조가 바뀔 겁니다. 지금 직접민주주의를 못하니까 국회의원, 대통령 같은 대표자를 뽑아서 간접민주주의(대의민주주의)를 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다시 직접민주주의로 직접 행사가 가능해지도록 만드는 게 DAO죠.
리퀴드 민주주의 (Liquid Democracy)라는 개념이 떠오르는데, 이게 바로 DAO로 이루어지는 민주주의예요. 직접민주주의는 본인이 직접 표를 행사하고 대의민주주의는 대표자를 선출해서 위임을 하죠. 리퀴드는 유동적이에요. 표를 직접 행사할 수도 있고 대리자에게 권한을 위임할 수도 있는 형태입니다. 위임을 하면 그 결정은 블록체인에 기록돼 위임받은 게 확인돼요. 자신의 권한마저 스스로 어떻게 할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진정한 민주주의로 볼 수 있습니다.
요즘 프로 구단이 NFT를 발행하고 있어요. 그게 NFT 중심의 DAO를 통한 리퀴드 민주주의예요. 프로 구단이 팬에게 NFT를 발행하죠. NFT를 가진 팬은 구단의 결정권을 가져요. 예를 들면 ‘감독을 내보내’, ‘이 선수를 누구랑 트레이드 해’ 등의 투표를 시행하는 거예요. 결정권이 있는 팬들이 투표로 결정하게끔 하는 거죠. 파리생제르맹(Paris Saint- Germain FC) 구단이 메시를 데리고 생제르맹토큰(Paris Saint-Germain Fan Token)을 발행하거든요.
앞으로 달라진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토큰을 10만 원씩 1만 명에게 팔았을 때 판매한 만큼 구단은 자산이 생기는 것이고 팬들은 구단 운영의 중요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니까 더 큰 관심을 가질 거라고 보는 거죠. 구단은 수익을 얻고, 팬은 VIP 혜택을 받는 셈이죠.
미국에서도 일부 주(州)는 자치단체가 토큰을 발행해서 주요 의사결정을 동일한 방식으로 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예로 ‘이 지역에 복지시설을 만드는데 예산이 얼마든다, 어떻게 할까?’를 논할 때 지금은 시 의원·주 의원들이 모여서 결정하죠. 나중에는 DAO를 통해 바로 시민투표를 여는 거예요. 투명성도 좋고 결정 측면에서 굳이 논란을 만들지 않으니 사회적 비용이 줄어들죠. 다만 이 경우가 100% 보편화되려면 적어도 2040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보다 가까운 2030년쯤에는 기업의 자산 토큰화가 보편화될 것 같아요. 주식회사가 주식 대신 NFT를 발행하는 형식으로 바뀌거든요. 기업이 상장 전 투자금을 모으기 위해 진행하는 자금조달 방법인 기업공개(IPO) 대신 암호화폐공개(ICO)를 하게 될 것이고, NFT를 발행해 주식 대신 토큰을 사고 마켓에서 거래하게 되는 거예요. 기업 가치에 따라 토큰 가격에 변동이 생기고, 임원을 선임하고 정책을 정할 때 토큰이나 NFT를 가진 ‘주주’들이 직접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횡령 의혹이 나타난 개발자를 DAO를 조직해 추방한 NFT 프로젝트 ‘퍼지펭귄’의 사례가 대중화되는 겁니다. 정부 조직이나 지자체 조직이 직접민주주의로 바뀌는 건 2040년 정도에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는 정말 정치 제도도 바뀔 겁니다.
‘산업혁명 이후 사회는 DAO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그릴 수 있을까요?
최근 글로벌 대형 기업들이 메타버스 산업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죠. 이미 가상공간과 암호화폐 관련 거래는 대부분 DAO를 통해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NFT 발행(민팅), 토큰 스왑, 거래 및 디파이 등 거의 모든 경제활동이 그렇습니다.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등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에 의한 업무처리보다는 자동화 처리가 많아질 거예요.
거래·업무는 모든 과정이 변조 불가능하게 기록되고 추적됩니다. 감사 가능한 블록체인 기반의 스마트 컨트랙트 시스템이 기존 시스템을 대체할 것입니다. 다가올 ‘인공지능 혁명’ 이후에는 기계가 인간을 대신해서 일을 할 텐데요, 결국 자동화되고 탈중앙화된 업무는 DAO가 수행할 것입니다. 작게는 기능, 서비스, 계모임부터 크게는 기업 또는 기관의 역할 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본 인터뷰는 <BBR: Blockchain Business Review> 3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