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지수펀드(ETF)는 주식 종목처럼 개인이나 기관 모두 손쉽게 거래할 수 있는 펀드다. 특정 지수의 움직임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된다. 개별 주식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펀드 투자의 장점과 언제든 원하는 가격에 거래할 수 있는 주식 투자의 장점을 결합시켰다.
비트코인 ETF는 비트코인 가격에 수익률을 연결한 파생상품이다. 실물 자산을 보유하지 않고 금융 회사가 설계한 ETF를 통해 투자 노출할 수 있으며 보안, 수탁, 규제 부담을 덜 수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나 월렛 없이 익숙한 증권 계좌를 통해 투자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비트코인 ETF, 수요는?
유럽 시장은 이미 다양한 암호화폐 기반 상장 지수 상품을 내놨다. 3월 8일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암호화폐 ETF는 유럽 투자 자문업체·기관투자자가 선호하는 투자 상품 2위에 올랐다.
트랙인사이트에 따르면 2021년 2월 비트코인 ETF에 유입된 자금은 2억 2100만 달러에 달한다. 총운용자산은 45억 달러 수준을 기록했다. 최대 비트코인 ETF 상품은 스톡홀름 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27억 달러 규모의 ‘비트코인 트래커 EUR’이다. 캐나다 ETF 승인 이후 유럽 내 암호화폐 투자 상품 출시가 급증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미국과 규제 보폭을 같이 하는 캐나다에서는 2021년 2월 퍼포스 비트코인 ETF가 처음으로 규제 문턱을 넘었다. 이후 이볼브 비트코인 ETF, CI파이낸셜 비트코인 ETF가 잇달아 규제 승인을 받았다.
북미 최초 상품인 퍼포스 비트코인 ETF(BTCC)는 토론토 증시에 상장된 첫 날 1억 6500만 달러(약 1826억 원)이 거래됐다. 한 달 만인 3월 18일 ETF 자산 규모가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브라질은 3월 19일 남미 최초로 암호화폐 ETF 2종을 승인했다. QR자산운용은 100% 비트코인으로 구성된 상품을, 해시덱스는 암호화폐 5종으로 구성된 상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미국 비트코인 ETF는 '아직'
비트코인은 5조 9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ETF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2013년 윙클보스 형제를 시작으로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비트코인 ETF에 도전했지만 한 건도 규제 승인을 얻지 못했다.
기관 자본과 관심이 비트코인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상품과 서비스는 부족한 상황이다. 미국 자산운용사들은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높은 고객 수요에도 규제로 인해 ETF 상품을 지원할 수 없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미국 기관 투자자들은 투자 신탁을 통해 비트코인에 간접 투자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관급 비트코인 투자 상품 그레이스케일 비트코인 신탁(GBTC)의 경우 비트코인 상승과 함께 규모가 크게 불어났다. 총운용자산은 2020년 16억 달러에서 360억 달러까지 늘었다. 2020년 12월 출시된 비트와이즈 10크립토지수펀드(BITW) 규모는 3월 16억 달러로 증가했다.
기관 투자자들이 가격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투자 신탁을 이용하는 이유는 암호화폐를 직접 매입하는 것보다 익숙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월렛을 설치하거나 암호화폐 거래소로 자금을 넣지 않아도 기존에 이용하던 증권사를 통해 지분을 사고팔 수 있다.
신탁이 가진 한계점은 신속하게 신주를 발행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개인이 접근하기 어렵다. 비트와이즈 신탁의 경우 승인 투자자만이 2만 5000달러에 달하는 신주를 생성할 수 있으며 12개월 동안 판매가 제한된다. 이같은 공급 제한은 프리미엄 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다.
미국, ETF 승인 왜 꺼리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비트코인 ETF 신청을 반려한 이유로 유동성 부족, 시장 조작 위험, 수탁 방안 부재 등을 거론했다. 규제 기관은 암호화폐나 관련 상품을 적절히 평가할 만한 정보도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일반 투자자가 비트코인의 극심한 변동성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비트코인은 2021년 들어서도 24% 가까이 하락했가다가 다시 두 배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트코인이 투기 자산이라는 인식도 남아있다. 재닛 옐런(Janet Yellen) 미 재무장관은 “비트코인은 비효율적이고 투기적"이며 "자금 세탁, 테러 자금 조달 등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달라진 암호화폐 위상…ETF 승인 길 열까
2020년과 2021년 암호화폐 시장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비트코인은 2021년 2월 16일 3년 만에 2만 달러를 돌파하고 최고점 기록을 경신했다.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해 3월 13일 6만 달러라는 쾌거를 이뤘다. 비트코인 시장 규모는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2020년 하반기 시작된 상승장은 기관이 주도했다. 비트코인을 새로운 투자 자산으로 보는 시각이 확산되면서다. 기관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 위험을 피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비트코인 투자를 고려 중이다. 전설적인 투자자 및 대기업의 채택으로 비트코인은 투기 자산에서 가능한 대안 투자 자산으로 신뢰를 높이고 있다.
테슬라, 매스뮤추얼,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스퀘어, 메이투 등 대기업들이 비트코인을 매입했다. 골드만삭스는 암호화폐 거래 데스크를 재개했다. 뉴욕멜론은행은 비트코인 수탁 사업을, 모건스탠리는 비트코인 펀드를 준비 중이다.
골드만삭스가 자사 기관 고객 28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1%가 "디지털 자산을 갖고 있거나 취급하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 기업들, ETF 재도전…가능성은?
비트코인 상승장과 캐나다 금융당국의 ETF 승인으로 비트코인 ETF 승인 기대가 높아지면서 미국 기업들이 신청 움직임을 재개하고 있다.
2021년 1분기 발키리(Valkyrie), 뉴욕 디지털투자그룹(NYDIG), 위즈덤트리(WisdomTree), 스카이브릿지캐피탈(SkyBridge Capital) 등이 비트코인 ETF를 신청했다.
SEC는 심사를 시작하고 45일 내에 승인·반려하거나 심사를 연장할 수 있다.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큰 시장인 만큼 미국 내 비트코인 ETF 승인 여부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SEC가 제기한 시장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2021년에도 EFT 승인은 어렵다고 주장한다. 캐시 우드 아크 인베스트 CEO는 "시가총액이 2조 달러를 넘기 전에는 SEC가 비트코인 ETF를 승인할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SEC 조직 변화는 비트코인 ETF 승인에 대한 낙관론에 힘을 싣고 있다. 암호화폐 ETF에 회의적이었던 제이 클레이튼(Jay Clayton), 달리아 블라스(Dalia Blass) 위원 등이 기관을 떠났고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정통한 개리 겐슬러가 기관을 이끌 예정이다.
2019년 ETF 승인률을 10%로 예측했던 제이크 체르빈스키(Jake Chervinsky) 컴파운드 법률고문은 "개리 겐슬러는 암호화폐를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수년 간 비트코인을 강력히 지지해왔다"면서 "관련 정책이 비트코인 ETF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다.
존 다비(John Davi) 스토리아 포트폴리오 어드바이저 CEO는 3월 23일 CNBC 방송에서 "ETF 승인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ETF 시장에는 비트코인보다 더 애매모호한 천연가스나 변동성 지수(VIX) 선물도 있다"면서 "때가 왔고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에 디지털 자산을 포함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