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 은행 위기 사이에서 균형 잡기에 나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올해 두 번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다시 한 번 '0.2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물가 둔화세'에 대한 언급은 없어졌지만, '지속적인 금리인상(ongoing increases)'이라는 표현을 삭제하며 통화 정책 경로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회는 2월 21일과 22일(현지시간) 진행된 정례회의 이후 성명에서 "장기적으로 완전 고용과 물가상승률 2%를 달성하기 위해 위원회는 연방기금금리 목표 범위를 4.75~5.00%로 상향 조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1월과 2월 예상보다 물가상승률이 높았던 만큼 지난달 성명에 포함됐던 '물가가 다소 완화됐다(eased somewhat)'는 표현은 빠졌다.
FOMC 성명은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몇 달 동안 일자리가 증가해 견조한 속도를 유지하고 있고 실업률도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한편, 당국은 물가상승률을 2%로 되돌릴 수 있도록 충분히 제한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달성하기 위해 "지속적인 금리인상(ongoing increases)을 진행한다"는 표현 대신 "추가적인 정책 확정(some additional policy firming)'이 적절할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금리인상 주기가 종료 수순에 들어갈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도 물가 상황에 따른 추가 긴축 여지를 남긴 모습이다.
러시아 전쟁 내용은 완전히 삭제했고, 최근 은행 위기 내용을 추가했다.
연준은 "은행 시스템은 건전하고 회복력이 강하다"면서도 "최근 상황은 가계, 기업에 대한 신용 여건(대출)이 더 어려워질 수 있으며 경제 활동, 고용, 물가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또한 "은행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하다"면서 "물가와 관련된 시장 위험성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덧붙였다.
연준 위원들이 예상한 연말 기준금리 전망인 점도표는 시장 예상보다 낮은 5.1%로, 12월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5월 다시 한 번 금리를 인상하고 6월부터 금리가 동결되는 경로를 제시하고 있다.
연준 위원 10명이 5.00~5.25%를 전망했다. 5.25~5.50%(3명), 5.50~5.75%(3명), 5.75~6.00%(1명)을 예상했다.
◇ 연준 의장 "은행 사태 여파 불확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30분 뒤 진행된 기자회견은 최근 은행 위기와 그에 따른 통화 정책 변경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다.
연준 의장은 지난 2주 동안 여러 은행이 다양한 문제점을 보이면서 유관 당국과 함께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그는 "예금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려 은행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높이고자 했다"면서 "모든 예금과 은행 시스템은 매우 안전하고 유동성도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금융 여건이 어려워지면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파가 있을 것"이라면서 "얼마나 영향을 줄지, 어떤 통화 정책 변화가 있을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실리콘밸리 은행의 경우 경영 실패가 있었다면서 "은행은 굉장히 빠르게 확장을 했고 제대로 리스크 헤징을 하지 않아 유동성 리스크, 금리 인상 리스크에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감독과 규제 관련해서 내부 검토를 진행해 무엇이 문제였는지 원인을 확인할 것이며, 이를 막기 위해 어떤 정책 결정을 할지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금 전액 보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금융 시스템이나 경제에 문제가 있을 때 연준은 예금자를 충분히 보호할 수단이 있으며 이를 활용할 것"이라면서 즉답을 피했다.
제롬 파월 의장은 이 같은 불확실성을 반영해 지속적인 금리 인상이 아니라 추가적인 금리 인상이 적절할 수도 있다고 표현을 바꿨으며, 지난 12월과 비슷한 연말 기준금리 전망치를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은행 사태로 금융 여건이 많이 어려워지면 통화 정책은 아무래도 덜 긴축적일 수 있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다만, 제롬 파월 의장은 여전히 물가가 높고 노동 시장이 시장을 지탱하고 있다면서 물가 안정화 작업을 멈추지 않을 뜻을 나타냈다.
그는 "지난 FOMC 회의 이후 나온 경제 지표들은 예상보다 더 높은 수준이었다"면서 "물가상승세를 다시 낮추기 위해 갈 길이 멀고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상품 물가상승률이 6개월 연속 하락하는 등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 둔화) 과정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면서도 "원하는 것보다는 더디게 디스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걱정했던 주택 부문도 신규 임대료 물가 둔화로 인해 개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최근 3개월 동안 월평균 3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2월 실업률은 3.6% 수준으로 여전히 고용 시장이 타이트하다"면서도 "임금 상승률이 둔화 기미를 보인 만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동시장 수급 균형이 맞춰질 것이고, 관련 물가와 임금 압력도 낮아질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하지만 "시장이 금리인하를 예상하고 있다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면서 "연내 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연준이 생각하는 기본적인 시나리오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아울러 "은행 사건이 있기 전보다 연착륙 가능성이 낮아졌고 앞으로의 상황을 더 지켜봐야겠지만 여전히 연착륙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금리인하 없다" 발언에 힘잃은 시장
은행발 경기침체 위기 조짐에 금리인상에 대한 연준의 확신은 한풀 꺾인 듯했다. 하지만 연준 의장이 '올해 금리인하는 없다'고 발언하며 은행 위기보다 물가에 무게를 두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장은 하락 반응하고 있다.
미국 뉴욕증시에서 22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 지수는 1.63%, S&P500 지수는 1.65%, 나스닥 지수는 1.60% 하락 마감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101.953으로, 6주 최저 수준까지 내려갔다.
비트코인은 전날 대비 2.67% 하락한 2만7337 달러, 이더리움은 전날 대비 3.03% 내린 1738.99 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5월 3일 열리는 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동결 확률은 50.1%, 0.25%포인트 인상 확률은 49.9%로 비슷한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최종 금리 전망치는 현재 수준보다 0.25%포인트 높은 5.00~5.25%를 가리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