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ETF 시장이 구조적 진화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4월 18일, 미국 자산운용사 캐너리 캐피탈 그룹(Canary Capital Group)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Canary Staked TRX ETF’라는 이름의 상장형지수펀드(ETF) 등록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번 ETF 신청은 단순히 신규 상품 하나가 아니라, 중국계 퍼블릭 블록체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ETF 시장에 공식 진입을 시도한 역사적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는 트론(TRON)이 글로벌 규제 체계와 제도권 금융 시스템에 본격 편입되는 신호이자, 암호화폐 산업이 제도권 금융과 수익 구조까지 융합할 수 있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TRX ETF, '수익 구조'를 포함한 첫 암호화폐 ETF
해당 ETF는 TRON 블록체인의 기본 토큰인 TRX를 보유하며, 일부는 위임지분증명(DPoS) 방식으로 스테이킹돼 추가 수익을 창출한다. ETF 구조 안에 블록체인의 운영 참여를 통합한 것이다. ETF의 가격 산정은 코인데스크 인덱스를 기준으로 하며, 커스터디는 비트고(BitGo)가 맡는다.
이는 ETF 상품 구조 내에서 암호화폐의 본질적 특성인 ‘네트워크 수익 창출 모델’을 수용한 첫 사례로, 단순한 가격 추종형 ETF와는 명확히 구별된다.
이 같은 설계는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기점으로 본격화된 ‘알트코인 ETF 시대’ 속에서, 가장 구조적으로 진화된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월가의 문을 두드린 중국계 블록체인
트론(TRON)의 TRX ETF 신청은 기술적 실험을 넘어서 중국계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월가(Wall Street) 제도권 문턱을 공식적으로 넘어서기 위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이나 플랫폼의 성공 사례라기보다는, 중국이 주도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공식적으로 다뤄지는 최초의 사례로서, 향후 기술 외교 및 글로벌 규제 협력 이슈에서도 논의될 수 있는 중요한 이정표다.
TRX ETF의 기반이 되는 TRON은 2017년 설립 이후 빠르게 성장해, 2025년 4월 기준 전 세계 3억 개 이상의 사용자 계정을 보유한 고성능 퍼블릭 블록체인이다. 디파이, NFT, 메타버스, 게임 등에 걸친 탈중앙화 생태계를 갖추고 있으며, 특히 스테이블코인 인프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대표적으로 TRC20-USDT는 테더(Tether)와의 협력을 통해 탄생한 TRON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 현재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거래량의 절반 이상을 처리하고 있으며, 하루 평균 200억 달러 이상의 거래를 지원하고 있다. 처리 속도는 전통 금융 인프라 대비 수백 배 빠르며, 거래 수수료는 0.1% 수준이다.
이는 단지 기술적 성과가 아니라, 아시아·남미·아프리카 등 실수요 기반 국가에서 실질적인 금융 포용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저스틴 선, 글로벌 금융 플랫폼 구축 야심 드러내
TRON의 창립자인 저스틴 선(Justin Sun)은 “금융은 소수의 특권이 아닌, 전 인류의 권리여야 한다”는 철학 아래, 사용자 중심의 기술 설계와 글로벌 확장에 집중해 왔다.
TRX ETF는 그가 구상해온 ‘제도권과 기술 기반 생태계의 연결점’으로서의 실현 단계로, 그가 꾸준히 언급해온 ‘자유금융항(Free Port of Finance)’ 비전—AI·메타버스·블록체인을 통합한 차세대 디지털 경제 허브—의 출발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선은 2025년 포브스 커버를 장식하며 글로벌 블록체인 리더로 떠올랐으며, TRON은 현재 중국 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가장 활발한 퍼블릭 블록체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규제 변화 속 의미 더해지는 ‘스테이킹 ETF’
SEC는 아직 스테이킹이 포함된 알트코인 ETF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이번 신청은 규제기관에 새로운 정책적 판단 기준을 요구하는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스테이킹 기반의 ETF 구조는 향후 디지털 채권, 탈중앙 연금 상품, 온체인 이자형 펀드 등 다양한 상품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기관투자자들이 암호화폐를 포트폴리오에 편입할 수 있는 논리적 기반을 마련해 준다.
TRX ETF는 단순한 신규 ETF가 아니라, 암호화폐 ETF의 ‘다음 챕터’를 여는 출발점이다. 스테이킹 수익, 실사용 기반 생태계, 글로벌 규제 연계 가능성까지 포함한 이번 시도는 “ETF란 무엇을 담을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변이 되고 있다.
디지털 자산이 ‘단순 투자 대상’을 넘어 수익 구조가 통합된 자산군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다름 아닌, TRON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