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가상계좌 발급을 중단하자 일부 거래소가 법인계좌 아래 수많은 거래자의 개인계좌를 두는 일명 '벌집계좌'를 편법으로 운영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벌집계좌는 본인 확인 의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자금세탁 소지가 다분하고 해킹 등 상황 발생시 거래자금이 뒤엉키는 최악의 사고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고 금융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이에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이 실시하는 가상계좌 고강도 조사를 통해 이 부분을 면밀히 들여다볼 예정이다.
가상계좌는 대량의 집금·이체가 필요한 기업이나 대학 등이 은행으로부터 부여받아 개별고객의 거래를 식별하는 데 활용하는 법인계좌의 자(子) 계좌다. 법인계좌에 1번부터 100만번까지 일련번호를 줘 특정인 명의의 계좌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대다수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그동안 가상계좌를 활용해 영업해왔다.
하지만 최근 은행들이 정부 암호화폐 규제를 의식해 지난해 말부터 거래소 상대로 가상계좌 신규 발급을 중단하자 후발 거래소들은 일반 법인계좌를 발급받은 뒤 이 계좌 아래에 거래자의 계좌를 운영하는 편법을 썼다.
엑셀 파일 형태로 저장·운영되는 벌집계좌 장부는 거래자 수가 많아질 경우 자금이 뒤섞이는 등 오류를 낼 가능성이 크고 해킹 등 사고에도 취약하다. 게다가 법인계좌에 예속된 자금이므로 법적인 소유권도 거래자가 아닌 법인이 갖는다. 이들 계좌는 실명 확인 절차도 미흡해 자금세탁 용도로 활용됐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금융당국은 거래소들이 이처럼 편법으로 가상계좌를 운영해온 사실을 은행들이 알면서도 방조하거나 조장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법인계좌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소액거래가 실시간으로 발생한다면 법인계좌가 암호화폐 거래에 악용되고 있음을 모를 수 없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현재 농협은행과 기업은행, 신한은행, 국민은행, 우리은행, 산업은행 등을 대상으로 현장 점검을 진행 중이며 위법사항 적발시 초고강도 제재를 가할 방침이다. 또 암호화폐 거래소 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자금세탁이나 시세조종, 유사수신 등 범죄가 적발되면 거래소 폐쇄도 불사하기로 했다.
도요한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