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해방의 날(Liberation Day)’ 관세 발표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대외 무역 긴장이 다시 고조되며 유동성 위기가 현실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암호화폐 시장도 2020년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이번 하락장에서 비트코인(BTC)은 상대적으로 견고한 흐름을 보였으나, 이더리움(ETH)만은 유독 깊은 하락세를 겪으며 투자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미국, 유럽, 중국, 인도 등 주요국 증시가 일제히 0.6~4%대 조정을 받은 가운데, 원자재 시장의 충격도 컸다. 특히 WTI 유가는 이달 들어 13% 이상 급락했고,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금마저 4.7% 하락했다. 이와 함께 암호화폐 시장도 전반적인 매도세를 피하지 못했고, 최근 7일간 비트코인은 약 1% 하락한 반면, 이더리움은 무려 11% 가까이 폭락해 시장 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 유동성 흐름을 분석하면 ETH에 가해지는 압박이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분석기관 글래스노드(Glassnode)에 따르면 ETH 시장에는 한때 월 155억 달러(약 22조 6,300억 원)의 자금이 유입됐지만, 현재는 월 60억 달러(약 8조 7,600억 원)의 순유출로 전환된 반면, 비트코인 시장은 여전히 월 60억 달러 규모의 순유입을 기록 중이다. 이는 시장이 현재 변동성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ETH보다는 BTC를 선호하고 있다는 판단을 뒷받침한다.
자본가치 변화에서도 이 같은 차별화가 확연하다. 2022년 말 이후 ETH의 실현 시가총액은 약 32%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같은 기간 BTC는 117% 급증했다. 이는 비트코인이 이 시장 사이클에서 훨씬 많은 투자 수요를 끌어들였다는 것을 뜻한다.
마켓 밸류에이션 지표인 MVRV(시장가치 대비 실현가치 비율)를 보면 투자자 수익성의 격차가 더욱 드러난다. 이더리움의 MVRV는 1.0 아래로 하락해 평균 보유자들이 손실 구간에 진입한 반면, 비트코인은 여전히 수익 구간을 유지하고 있다. 통상 평균 수익률이 손실로 전환될 경우, 매도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ETH의 추가 조정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장기 관점의 데이터도 ETH 수익성 저하를 뒷받침한다. 비트코인 보유자들은 지난 812일 동안 ETH 보유자보다 평균적으로 더 높은 수익률을 거둬 왔다. 이는 ETH에 대한 시장의 기대와 신뢰가 위축돼 왔음을 반영하는 수치다.
ETH/BTC 환율의 급락도 이더리움의 약세를 시사한다. 2022년 9월 이후 해당 지수는 약 75% 하락했으며, 최근 4월 들어서만 11.4%의 추가 낙폭을 기록했다. 이는 실제 시장에서 ETH보다 BTC에 자본이 더 몰리고 있음을 수치상으로 보여준다.
실현 손실 규모의 차이 역시 현재 시장 심리를 보여준다. 최근 하락장에서 ETH는 5억6,400만 달러(약 8,240억 원) 가량의 손실을 기록한 반면, BTC는 이보다 적은 2억4,000만 달러(약 3,500억 원)의 손실에 그쳤다. 통상 하락 시 실현 손실이 클수록 그 자산의 심리적 저항선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간 강세장마다 단기적으로 비트코인을 능가하던 ETH의 특성은 이번 사이클에서 보이지 않았다. 자금 이탈, 수익성 악화, 가격 데이터 등 복합적인 지표가 하나같이 이더리움의 상대적 약세를 지적한다. 강한 매수 모멘텀이 다시 형성되지 않는 한, ETH의 부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