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리움(ETH) 메인넷에서 새로운 프라이버시 기능을 제공하는 ‘프라이버시 풀(Privacy Pools)’이 공식 출시됐다. 이번 도입은 프라이버시 기술과 규제 준수를 동시에 추구하는 실험적인 프로젝트로, 이더리움 공동창업자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이 직접 1 ETH를 예치하며 초기 테스트에 참여한 사실이 주목을 받았다.
프라이버시 풀은 이더리움 생태계 개발사 0xbow.io가 3월 31일 처음으로 선보인 반허가형 프라이버시 도구다. 사용자들은 해당 플랫폼을 통해 익명성이 보장된 상태로 트랜잭션을 수행할 수 있으며, 동시에 해당 자금이 불법 행위와 연계되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다. 이는 기존 프라이버시 프로토콜들이 안고 있던 ‘불법 자금 세탁 통로’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0xbow.io는 이번 시스템이 ‘어소시에이션 셋(Association Sets)’이라는 구조를 통해 트랜잭션을 묶어 처리하며, 이를 통해 검증된 입금만 익명 풀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만약 후속 조사를 통해 특정 입금이 불법 자금과 연결됐을 경우, 해당 항목만 제거하고 나머지 자금은 영향받지 않는 유동적 구조도 마련돼 있다. 부정 판정이 내려지면 이용자는 ‘레이지퀴트(Ragequit)’ 기능을 통해 예치 자산을 원래 주소로 돌려받을 수 있다.
이번 프라이버시 풀 론칭은 지난 2023년 비탈릭 부테린, 체이널리시스 수석 과학자 제이컵 일룸, 바젤대학교 교수진이 공동으로 발표한 백서를 기반으로 한다. 백서에는 프라이버시 보호와 규제 준수 간 균형점을 찾기 위한 시스템 설계 원리들이 상세히 담겨 있었으며, 0xbow.io 전략 고문 아민 술레이마니(Ameen Soleimani)도 집필에 기여했다. 해당 문서는 1만 2,000건 이상의 다운로드와 9건의 학술 인용을 기록하면서 이 분야에서 이미 이론적 기반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출시 직후부터 약 21 ETH 규모가 프라이버시 풀에 입금됐으며, 총 69건의 초기 입금 중 최소 1건이 부테린의 것으로 확인됐다. 초기 예치 한도는 1 ETH로 제한되지만, 시스템이 충분히 검증될 경우 점차 상향 조정될 계획이다.
0xbow.io는 이 프로젝트가 “프라이버시를 일상화하자(Make Privacy Normal Again)”는 비전을 담고 있다며, 블록체인 내 프라이버시 보호 기술이 범죄와의 연관성 없이도 규제에 부합할 수 있음을 증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이번 프로젝트는 Number Group, BanklessVC, Public Works 등의 투자사 및 엔젤 투자자들로부터 지원을 받았고, 스마트컨트랙트 보안업체 Audit Wizard의 정식 감사를 통과한 상태다.
한편, 탈중앙 프라이버시 프로토콜인 토네이도 캐시(Tornado Cash)는 과거 북한의 해킹 조직 라자루스 그룹이 자금세탁에 사용하면서 2022년부터 2025년까지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에 의해 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올해 1월 미 연방 항소 법원이 해당 제재가 부당했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블랙리스트에서 해제되기도 했다.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발생한 불법 암호화폐 거래 규모는 410억 달러(약 59조 8,600억 원)에 달했으며, 이는 전체 온체인 거래의 0.14%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수치는 향후 추가 범죄 주소가 확인됨에 따라 510억 달러(약 74조 4,600억 원)까지 증가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번 프라이버시 풀 출시는 이러한 우려를 반영한 보안 친화적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