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거대한 축이다. 2022년 3월 9일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며 투표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온라인 투표는 대표자 선출 외에도 사회적으로 대국민 참여가 전제되는 여러 분야에 적용됨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의 손쉬운 참여를 돕는 ‘직접민주주의’ 실현 도구의 역할을 한다. 온라인 투표에 블록체인을 결합해 여러 투표 솔루션을 서비스하는 한국전자투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투표도 온라인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투표를 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온라인 투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조작 불가능을 증명하는 데이터 무결성입니다. 두 번째는 비밀보장, 익명성이죠. 세 번째는 투표 과정의 공정성입니다. 투표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이 중간에 누가 몇 등인지, 몇 표 얻었는지 알 수 있으면 안 돼요.
한국전자투표는 블록체인을 온라인 투표에 적용해 데이터 무결성을 증명합니다. 데이터를 분산하고 탈중앙화해 해킹이나 조작을 방어하기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러나 블록체인 투표를 만든다고 무조건 안전한 시스템이 될 것이라는 것은 막연한 생각입니다. 추적이 가능한 블록체인의 속성이 익명성을 어렵게 만들죠. 굉장히 아이러니한 데, 어떤 데이터가 누구 것이라는 걸 체인에 기록하면 조작을 못하지만 반대로 완벽한 추적도 가능하거든요.
투표는 익명성이 보장돼야 됩니다. 이 같은 문제가 있다 보니 데이터를 쌓고 나서 개표 후에 추적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기술이 필요하죠. 한국전자투표는 자체 개발한 보안암호엔진과 결과를 섞어주는 '믹스넷'을 사용해 익명성을 보장합니다.
한국전자투표는 2006년부터 온라인 투표 개발에 힘써온 국내 유일 전자투표 전문기업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온라인 투표시스템(K-Voting),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동주택 전자투표 서비스 사업의 시스템 개발과 서비스 부분을 함께하고 있으며, 선관위 ‘블록 체인 기반 온라인 투표 시스템 시범 사업’에도 컨소시엄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8년 블록체인 실증사업에서 블록체인 기반 암호기술과 익명화 기술인 믹스넷을 국내 온라인 투표에 적용함으로써 위조를 방지하며 프라이버시 문제를 해결했다. 박재영 대표는 “직접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선 의견을 모을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온라인 투표의 단점을 극복한 한국전자투표 서비스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대표적으로 한국전자투표서비스(KE보팅)가 있습니다. 대국민 서비스 일환으로 모든 협의체, 학교, 아파트 누구나 어떤 단체에 구애받지 않고 온라인 투표를 할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재미있는 게, 선관위 K보팅하고 이름이 비슷해요. 실제로 선관위 K보팅 이름도 제가 지었어요. 근데 상표권 주장은 못하죠(하하).
2021년 10월 1일부로 선관위 K보팅의 민간 영역 부분은 서비스가 중지되면서 기존 사용자들은 갈 데가 없잖아요. 그래서 상당 부분 한국전자투표서비스로 돌아왔죠. 그다음에 LH와 같이 하는 아파트 e투표, 노동조합 대상 투표인 노동e투표 등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블록체인 기반 분산신원증명(DID) 기술을 적용한 DID 온라인주총 투표 서비스를 오픈했습니다. 해당 서비스는 현재 10개 기업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2년 3월부터 정기주총 서비스를 정식 이용할 수 있어요. 그러나 현재는 DID를 이용한 전자 주총을 했을 때 상법상 효력 인정이 안 돼요. 이 부분은 규제샌드박스를 신청했는데, 결과가 나올 때까진 DID기반으로는 진행하기 쉽지 않습니다. 기술이 앞서 나가서 법제화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선관위가 1000만 명 이상이 참여 가능한 블록체인 기반의 온라인 투표 시스템을 추진하는 등 온라인 투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높아지고 있는데, 대선이나 주요 선거에서 언제쯤 온라인 투표 이용이 가능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왜 우리는 대선에서 전자투표를 못하냐?’라고 물어봐요. 법이 없어요. 공직 선거는 용지를 발행하고 오프라인 선거로 하게 돼 있어요. 사회적 합의, 정치적인 유불리의 허들을 넘어서 법제화가 돼야 하는데 아직은 안 돼 있죠.
이 외에도 장소에 대한 문제가 있어요. 투표를 하는데 완전히 원격지에서 할 건지, 전자투표를 하더라도 거소지에서 할 건지에 대한 문제가 있어요. 한국전자투표가 서비스하는 온라인 투표는 대부분 핸드폰으로 하거든요. 어플이 아닌 핸드폰으로 URL이 발송되고 유권자 본인 확인 절차를 거쳐 투표하고 온라인에서 결과를 확인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대리 투표’ 문제가 있죠.
대부분의 나라에서 전자투표를 할 때도 거소지 투표를 하지 공직 선거에 원격투표를 사용할 확률은 희박합니다. 공직선거 도입을 위해서는 유권자 인증, 투표 비밀 유지 등 기술에 대한 안정성과 신뢰성 확보를 검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어요.
다만 현재 안정성·신뢰성이 충분히 적용된 온라인 투표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운영돼 온 실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적 이해 부족, 보수적 수용 문화로 인해 민간선거에서 조차 더딘 도입을 보이고 있습니다.
결국 제도적, 기술적 측면이 받쳐준다고 해도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온라인 투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요?
중앙선관위가 전자투표 표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놨는데 시장이 성숙하지 않다 보니 가이드라인을 공개하진 않았어요. 즉, 어떤 시스템을 서비스해야 한다는 규정이나 제약이 없어요.
어떤 업체들은 ‘우리는 국가가 인증하는 보안 시스템을 썼다’라고 하는데, 그냥 암호검증모듈(KCMVP)이라고 데이터베이스(DB) 암호화한 걸 자랑스럽게 말해요. 근데 DB 암호화조차 안 하면 모든 내용이 공개되거든요. 투표 도중에 누가 몇 표 얻었는지 등도 다 알 수 있잖아요. 암호화를 할 경우 누군가는 키를 갖고 있어요. 키를 갖고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DB를 열어 볼 수 있어요. 눈 가리고 ‘암호화했다’하는 정도인데 본인들이 온라인 투표 전문가인 것처럼 행세를 해요.
보안 기술이 미흡한 서비스 집단이 어떤 식으로든 다른 마음만 갖고 있다면 투표를 했던 집단의 성향을 다 파악할 수 있고 팔아먹을 수도 있다는 개연성이 있습니다. 심지어 민감한 선거에서 특정 후보자가 투표 데이터를 볼 수 있게 되면, 본인이 어떻게 선거 운동을 해야 되는지를 알게 되는 등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할 수 있는 여지가 많죠.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투표 시스템을 사회가 허용해 주면 안 됩니다.
온라인 투표기술이 지금까지 발전해 왔는데, 사건이 한번 터지면 모든 온라인 투표가 안전하지 않은 것처럼 인식될 것이고, 시장이 도입되는 시기도 더 늦어지게 된다는 부분에서 걱정이 있죠. 그러나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경험을 쌓고 사회 수준이 올라가면서 대부분 사회적으로 필요한 쪽으로 진화를 하잖아요. 전자투표도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여건이 안 되거나 기술이 없었어요. 이제는 오프라인 장소에 가서 투표하는 시간, 투표용지를 발행해야 하는 비용 등 오프라인 투표가 갖고 있는 많은 단점들을 극복하는 방향이 훨씬 더 편리하기 때문에 앞으로 세상이 온라인 투표로 가 야한다는 것에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온라인 투표로 이행하는 과정이 얼마나 걸릴지는 사회나 정부의 의지, 기술 발전 정도 등에 따라 다르겠죠. 어려서부터 사람들이 투표를 많이 체험해 보면 자연스럽게 사회적 합의는 좀 더 쉽게 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전자투표 플랫폼을 해외로 확대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떤 방식인지 설명해 주세요.
한국전자투표의 전자투표엔진과 플랫폼들은 클라우드 기반으로 돼 있어요. 그래서 지금 해외 쪽에 서비스를 론칭할 계획입니다. 영업력이 있는 파트너를 찾아서 클라우드로 론칭을 해주고 수익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생각입니다.
또 국가를 상대로 서비스를 제안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이미 기존의 플레이어들이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에 한국전자투표는 국내에서 했던 대로 민간 쪽에서부터 아파트, 협의체, 학교, 노조 등 민간 영역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할 계획입니다.
민간에서 사용이 늘어나고 온라인 투표로 많은 사람이 의견을 나눠 민주주의에 가까워진다면 국가에서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겁니다.
한국전자투표가 그리는 로드맵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한국전자투표의 목표는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입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의견을 직접 펼치는 거죠. 예전에는 예산이 많이 들고 기술이 없어서 못했는데, 이젠 되잖아요. 대선뿐만 아니라 국가의 어떤 사안에 대해서 전 국민한테 물어보는 거죠. 굳이 여론조사하지 말고 사안에 관심이 있거나 관련된 사람들은 자기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거예요.
직접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장을 만들 계획입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바로바로 물어보고 표현하는 것이 사회적 합의로 가는 길이잖아요. 갈등 해소가 되고 표현한 것에 대한 비밀도 완벽하게 보장이 되는, 어떤 조작도 할 수 없는 시스템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본 인터뷰는 <BBR: Blockchain Business Review> 2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