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4일 이오스(EOS) 최초의 블록이 생성됐을 때, 사람들은 이오스가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을 넘어서는 3세대 블록체인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이오스는 실패했다는 평가와 함께 예전의 위상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올해 6월 출범한 ‘한국이오스토큰홀더연합회’의 류한석 회장은 한국의 참여가 이오스 생태계를 다시 혁신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류한석 회장에게 현재 이오스 생태계 문제와 한국의 역할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BBR> 1월호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기소개와 함께 블록체인 분야에 어떤 계기로 입문하게 되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류한석입니다. 현재 노드 운영 회사 ‘노드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이오스 커뮤니티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한국이오스토큰홀더연합회(한이연)를 발족해 현재 회장직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저는 2012년 은행연합회 산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회사인 디캠프에 있었습니다. 제가 투자 실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 암호화폐 거래소 코빗을 만드신 유영석 대표님이 투자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그때 알고만 있던 비트코인을 처음으로 구입했습니다. 이후 2017년 가을에 외국 버닝맨이라는 페스티벌을 갔는데 다 비트코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한국에 돌아와 유영석 대표님께 도대체 이게 뭐냐 물어봤더니 ‘블록체인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는 답변을 해주셨어요. 그때부터 관심을 갖고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ICO(Initial Coin Offering)는 너무 위험한 것 같으니 노드를 운영해보자 생각했고, 그때 가장 핫하게 뜨고 있던 이오스의 BP로 출마했습니다.
이오스 생태계에서 BP가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BP(Block Producer)는 말 그대로 블록 생성자인데, 거칠게 표현하면 채굴자입니다. 비트코인 같은 작업증명(Proof of Work, PoW)은 가장 먼저 문제를 푼 사람이 블록을 생성하고, 이더리움을 비롯한 지분증명(Proof of Stake, PoS)은 스테이킹 양에 비례해서 발언권을 가지잖아요? 이오스는 위임지분증명(Delegated Proof of Stake, DPoS)을 사용합니다. 내가 가진 이오스 토큰의 수만큼 BP 후보에게 투표하고, 가장 많은 투표를 받은 상위 21개 BP가 블록을 생산하게 됩니다. 기존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를 위해 노드(채굴자)가 많아질수록 거래 속도는 느려진다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오스는 투표를 통해 선출되는 소수의 노드로도 충분한 탈중앙화와 빠른 거래를 지원할 수 있다는 비전을 가지고 등장했습니다.
투표를 통해 네트워크를 운영하자는 것은 사실 굉장히 혁신적인 개념입니다. 비트코인은 내가 채굴기를 몇 대 가지고 있느냐, 내가 얼마나 많은 전기를 쓰느냐에 따라서 돈을 벌어가는 구조거든요. 이더리움이나 포스(PoS) 체인도 마찬가지로 내가 토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이 때문에 이더리움이나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고래들이 장악하고 있고, 우리는 그 고래가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깰 수 있는 게 이오스 블록체인입니다. 고래들이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닌 커뮤니티가 투표를 해서 블록체인을 운영하자는 겁니다.
올해 6월 한국이오스토큰홀더연합회가 출범했습니다. 암호화폐 업계 최초의 사례인 것 같은데, 해당 단체를 설립하신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오스는 2017년 ICO를 거쳐 2018년에 나왔지만, 그때부터 지난 4년 동안 원래 내세웠던 비전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토큰 홀더들의 투표가 잘 진행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일부 거래소에서 표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거래소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고객들의 토큰을 자기 입맛에 맞는 BP에게 투표하고, 그 대가로 받은 돈을 고객들한테 나눠줬어요. 이렇게 한 사람이 표를 사서 순위가 오르자 다른 BP들도 덩달아 표를 사는 치킨 게임이 됐습니다. 사실 블록체인의 본질은 공동체의 의사결정에 관한 내용입니다. 단순히 비즈니스가 아니에요.
블록체인 위에서 여러 가지 비즈니스가 탄생하는거고, 블록체인은 그 비즈니스를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인 거죠. 이 플랫폼의 공동 의사결정을 커뮤니티가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의사결정권을 돈으로 팔았다? 그러면 안되는 거죠. 그러나 매표라는 현상이 주류가 돼버리면서 이오스가 표방했던 가치도 많이 퇴색됐습니다. 그래서 일부 언론에서는 카르텔 체인이란 말도 나왔던 거고요
한국은 영미권, 중화권 다음으로 이오스가 많은 곳입니다. 이오스 전체 발행량의 10%에 달하는 거의 캐스팅 보트(Casting Vote) 수준이죠. 그런데 지금껏 한국 거래소에 있는 표가 매표 외에 제대로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막강한 힘을 가지고도 움직이지 않는 상황인거죠.
토큰홀더 관점에서 봤을 때 이건 거래소가 고객들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도록 막아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캐스팅 보트인 한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오스 생태계를 혁신할 수 있습니다. 청렴한 케이 보팅(K-voting)을 통해 이오스 생태계를 바로잡을 기회가 눈앞에 있는 거죠. 이게 성공했을 경우 이오스는 완전히 새로운 레벨로 들어서서 블록체인 산업 전체의 위상을 다음 단계로 가져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더 이상 권리를 돈으로 사는 게 아닌, 내가 신뢰하는 사람들이 권리를 가지게 하는 체인이 되는 거죠. 이를 위해선 한국의 투표자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한이연을 만들었습니다. 한국 거래소의 참여를 통해 이오스가 원래 표방했던 거번드 블록체인(Governed Blockchain)의 비전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취지인 거죠.
그렇게 되면 한국 거래소 또한 하나의 카르텔이 되는 건 아닐까요?
한국 거래소의 참여를 카르텔로 볼지 말지는, 결국 그 표가 실질적으로 홀더의 의지를 대변하는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 거래소들은 표를 돈 받고 팔았습니다. 자기 말을 듣는 BP들만 뽑은거죠. 한국에선 그런 것을 그대로 두고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정당성입니다. 그리고 정당성은 홀더들의 의사가 얼마나 반영되는가, BP를 선정하는 기준이 얼마나 명쾌한가에서 만들어지는 거죠.
예를 들어 한국이 ‘매표 행위에 가담하는 BP는 한국 커뮤니티 투표를 받지 못합니다’ 이렇게 선언하면 어떻게 될까요? 사실 노드원도 지난 4년 동안 살아남기 위해서 매표행위를 했던 적이 있어요.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보기 힘든지 알면서도 그들과의 관계가 끊어질까 두려워 말 못한 것도 많습니다.
한국이 투표에 참여한다면 노드원을 포함한 BP들이 ‘저는 현재 누구로부터 얼마만큼의 표를 사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행위를 그만두려고 합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질 겁니다.
한국 커뮤니티가 청렴을 요구 사항으로 내걸고 지속적으로 감시하면 체인 전체의 투명성과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어요. 상위 21위를 점유하고 있던 기존 세력들을 절반 가까이 몰아내고, 거버넌스를 깨끗한 곳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겁니다.
거래소와 투자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게 중요해 보이는데, 설득할 방법이 있을까요?
문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계속 목소리를 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같이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 이런 자리에서 공감대를 얻어내고 의미를 설명해야죠. 한 분 한 분을 최대한 설득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하는 일이에요.
제가 킥 스타터 10년 역사상 상위 103위에 랭크된 적이 있는데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결국 모멘텀, 기세입니다. 처음에 100명 서명하면 뉴스가 나옵니다. 그러면 뉴스를 보고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 기세를 통해 1천, 2천 명까지 가게 됩니다. 뉴스가 나오고 사람들이 소식을 접할 수 있도록 저는 계속 북을 치고 돌아다니는 거죠.
일전에 이오스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증권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몇 안 되는 체인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렇습니까?
사실 이건 이오스가 가진 엄청난 가능성 중의 하나입니다. 이오스를 만든 블록원(Block.one)이라는 회사는 1년 동안 더치 옵션 방식으로 ICO를 진행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보통 ICO를 하는 프로젝트는 받은 돈으로 코드를 개발하거나 체인을 런칭하는 등의 약속을 합니다. 그런데 블록원이 약속한 것은 코드를 만들고 오픈소스로 공개한다, 그리고 이오스 토큰을 블록원 몫으로 10% 남겨놓는다, 이게 끝이었어요. 실제로 체인 런칭도 저같이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코드를 다운받고 진행했습니다. 이오스 재단이나 블록원이 한 게 아니에요.
증권법 관점에서 봤을 때, 제3자가 투자자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직접 일을 하면 증권법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블록원은 소스 코드만 오픈했을 뿐이고 이오스 코인은 커뮤니티가 만들었습니다. SEC 관점에서 보면 이오스는 투자받아서 생긴 게 아닌, 그냥 자생적으로 생긴 거죠.
2019년에는 블록원이 가지고 있던 10%의 이오스 물량마저도 SEC에 250억 가량의 벌금을 내면서 청산했습니다. 증권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거죠.
최근에 이오스 커뮤니티가 블록원이 보유중인 이오스 물량을 동결시켰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어떤 의미인 건가요?
사실 커뮤니티 입장에서 블록원은 ICO를 통해 자신의 돈을 받은 대상입니다. 그런데 블록원은 커뮤니티를 위해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인가 하는 순간 증권법에 걸릴 수 있거든요. 가뜩이나 5조 원가량을 모았는 데 SEC가 얼마나 호시탐탐 보고 있었겠어요.
블록원은 손발이 묶여 있고, 이오스 체인 위에서 자금이 유통되야 댑(DApp)들도 개발이 될텐데 돈이 다 매표 보상으로 갔습니다. 커뮤니티 입장에선 블록원이라도 투자를 해주고 조치를 취하길 바랬는데, 아무것도 안한 블록원이 미웠던 거죠.
사실 이건 이오스가 SEC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선이 그어졌다는 점에서 좋은 소식이기도 합니다. 커뮤니티가 블록원을 쳐낸 거잖아요? 결국 블록원의 지분마저 없어지면서 이오스는 완전히 증권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된거죠.
이오스의 위상이 옛날 같지 않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오스가 위상을 되찾고 다시 성장할 수 있으리라 보시나요?
요새 운이라는 걸 많이 느낍니다. 성공한 창업자에게 물어보면 실력 100%로 성공했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겁니다. 다 타이밍이고 운이거든요. 지금 세계에서 불고 있는 BTS, 오징어게임, 지옥 등 어딜 가나 K 열풍이 불고 있잖아요? 저는 한국의 때가 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국운이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오스의 상황도 한국에 들어오고 있는 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4년 동안 이오스의 위상이 많이 변했다라고들 하는데 그 기간은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되기 직전에 겪었던 어두웠던 시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찾기 위해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생했던 기간이라 생각합니다. 뭔가가 알을 깨고 부활하고 있고, 그 계기가 바로 한국이 될 것이라는 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기존 중앙화된 권력과 기축통화로 살던 세상이 정(正)이라면, 이런 횡포를 견딜 수 없어 탈중앙화의 기치를 든 것이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반(反)입니다. 근데 이렇게 했더니 대규모 자본을 가진 익명의 고래들이 네트워크를 주도했습니다. 이오스는 이런 두 가지 가치대립의 합(合)이 될 겁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 컨센서스에 참여하는 체인이 되는 겁니다. 한국의 투표가 그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본 인터뷰는 <BBR: Blockchain Business Review> 1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