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초 암호화폐 시장은 작년 한 해를 자축하기 바빴다. 비트코인이 6만9000달러 신고점을 기록하고, 시장은 NFT, 디파이, P2E, DAO 같은 혁신 상품을 내놨다. 암호화폐는 주류 산업의 신사업 아이템이자 정재계가 주목한 핫 키워드였다.
비트코인이 ‘10만 달러’를 가볍게 넘을 것이란 기대와 달리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지만, 이미 수많은 인파가 몰려든 암호화폐 판은 자신감과 희망을 잃을 줄 몰랐다. 미국 연준의 긴축 정책이 상승 불씨를 끌 매서운 바람이 될 줄, 대형 플레이어들이 속수무책 무너질 줄 상상할 수 없었다.
2022년 암호화폐 산업은 부실과 붕괴의 연타를 맞아 지금도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다. 실패와 상처로 점철된 듯한 한 해를 면면히 살펴보니 충격과 소란에 묻힌 발전적인 순간들도 있었다. 적재적소에서 배치돼 제 역할을 해낸 기술, 우직하게 여전한 걸음을 내디딘 플레이어도 눈에 띈다.
2022년 한 해를 돌아보며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 주요 이슈 10가지를 선정해 정리해 봤다.[편집자주]
◇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암호화폐 거래·수탁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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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4일 테라발 충격이 다소 진정된 여름, 10조 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암호화폐 거래·수탁 지원을 위해 코인베이스와 파트너십 체결했다. 블랙록은 자사 투자관리 플랫폼 ‘알라딘(Aladdin)’에 암호화폐 기능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코인베이스 주가는 30% 이상 폭등했다.
같은 달 11일 블랙록은 “급격한 시장 침체에도 기관의 투자 관심이 높다”면서 기관 투자자가 비트코인 현물에 직접 투자 노출할 수 있는 신탁(Private trust)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크라켄 자회사 ‘CF벤치마크’,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업체 ‘서클’ 등 암호화폐 기업들과의 협력 소식을 전했다.
2017년 비트코인을 ‘자금세탁 수단’으로 평가했던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은 올해 3월 러우 전쟁이 디지털 화폐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며 달라진 인식을 내비쳤다. 그는 “전쟁으로 인해 국가들이 자국 통화 의존도를 재평가하고 디지털 화폐 부문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블랙록뿐 아니라 전통 금융기관 다수가 올해 암호화폐 사업 활동을 전개했다. 스테이트 스트리트 은행, 뉴욕멜론은행은 암호화폐 수탁 시장을 두드렸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는 3월 비트코인·이더리움 마이크로 옵션, 8월 유로화 표시 암호화폐 선물, 10월 아발란체, 파일코인, 테조스 기준가격 등을 선보이며 부지런히 암호화폐 상품군을 늘렸다. 대형 증권사 찰스 슈왑, 피델리티디지털애셋, 패러다임, 세쿼이아캐피털, 시타델시큐리티즈, 버츄파이낸셜 등은 내년 암호화폐 거래소 EDX마켓 출범을 계획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 '코드(code)'도 제재 대상…‘토네이도캐시’ 재무부 블랙리스트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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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8일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은 이더리움 기반 암호화폐 믹싱 서비스 '토네이도캐시'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미국인의 토네이도캐시 사용이 금지됐고, 관련된 USD코인(USDC)·이더리움(ETH) 주소 44개가 특별제재대상에 올랐다. 재무부는 “토네이도캐시가 자금세탁을 막기 위한 기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서 “출시된 2019년부터 약 70억 달러 상당의 암호화폐가 세탁됐으며, 여기에 북한 해커 조직 ‘라자루스’의 자금도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토네이도캐시 웹사이트와 깃허브(GitHub) 계정은 삭제됐고, USDC 발행사 서클, 탈중앙화 거래소 유니스왑 등 다수의 앱에서 토네이도캐시 월렛 주소 차단, 자금 동결이 이뤄졌다.
통상 개발자, 기관, 이용자를 특정한 것과 달리 프로토콜 자체를 제재 대상에 올렸다는 점은 논란이 됐다. 커뮤니티는 “오픈 소스 코드는 범죄가 아니다”라며 반발했고, 비영리단체 코인센터는 “누구도 통제하지 않는 자동화된 코드를 규제한 것은 부적절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달 12일 네덜란드에서 토네이도개시 개발·자금세탁 관여 혐의로 개발자 알렉세이 페르체프가 체포됐다. 페르체프 측 변호인은 “토네이도캐시는 탈중앙화 프로토콜로, 개발자가 통제권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네덜란드 검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내년 2월까지 수감될 것이라고 알려졌다.
◇ 이더리움 머지, 풀 죽은 시장에 ‘심폐소생’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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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매커니즘을 ‘작업증명(PoW)’에서 ‘지분증명(PoS)’으로 전환하는 ‘머지(Merge)’ 업그레이드 일정이 가시화되면서 시장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기술 발전에 따른 산업 신뢰도 개선과 수익성 향상에 대한 기대감이 작동했다.
머지는 기존 PoW 네트워크(Eth1)와 PoS 네트워크 '비콘체인(Eth2)'을 병합하는 방식으로 9월 4일 3시 45분경 최종 완료됐다. PoW는 복잡한 문제를 풀어낸 채굴자에 거래를 검증·기록할 권한을 주고 암호화폐로 보상하는 방식이라면, PoS는 코인을 일정량(32 EHT)을 예치한 스테이커에 네트워크 운영 참여 권한과 보상을 주는 방식이다. 전력소모량을 99.95% 줄여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머지 이후 이더리움의 경제적 가치가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는 “이더리움은 채권, 상품 같은 금융상품과 비슷하고, 높은 이자를 제공해 기관 투자자, 특히 환경에 관심을 가진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대안 상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더리움 인프라 개발사 컨센시스도 “PoS 전환을 통해 이더리움이 기관 투자자에 매력적인 디플레이션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100만 달러 이상을 스테이킹한 ‘기관급 스테이커’는 지난해 1월 200명 미만에서 지난 8월 1100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코인베이스프라임, 바이낸스, 앵커리지디지털, 이더마인 등 다수의 기업이 이더리움 스테이킹 서비스 출시를 서둘렀다.
실제 머지가 완성될 때까지 시장은 기대감에 들떴다. 현물 시장과 파생상품 시장도 활기가 돌았다. 8월 중순 이더리움은 6월 18일 880.93달러 저점에서 106% 상승해 비트코인 상승세(30%)를 훌쩍 넘어섰다. 이더리움 시총이 비트코인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머지 업그레이드에 앞서 베팅하려고 하는 대형 헤지펀드 참여로 이더리움 옵션 미결제약정 규모가 빠르게 급증했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는 “이더리움 머지가 가까워지면서 거래자들이 이더리움 가격 리스크 관리를 위해 CME를 찾고 있다”며 이더리움 옵션 출시 계획을 밝혔다.
머지 후 거시 경제 영향이 더욱 커졌기 때문에 큰 상승세를 연출하진 못하고 있다. PoS 전환에 따른 몇 가지 문제도 찬물을 끼얹었다. 이용자가 대형 서비스 업체를 통해 스테이킹을 진행하면서 이더리움에 대한 검증 권한이 소수 대형 업체에 집중되는 모습이 확인됐다.
이 같은 중앙화 문제는 규제 리스크도 높였다. 게리 겐슬러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보유자에게 코인 '스테이킹(staking, 예치)'을 지원하는 암호화폐와 취급업체가 증권 규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며 이더리움 증권 가능성을 내비쳤다.
◇타협의 결론, 세계 3대 거래소 FTX 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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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X 투자 계열사 알라메다리서치의 대차대조표의 상당 부분이 FTX의 거래소 토큰 FTT로 구성돼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1월 6일 바이낸스가 FTT를 처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후 암호화폐 가격 급락과 거래소가 감당할 수 없는 대규모 인출이 시작됐고, 세계 3대 암호화폐 거래소는 빠른 속도로 무너졌다.
FTX는 11월 11일 파산 보호를 신청했고 샘 뱅크먼 프리드 FTX 설립자는 CEO직을 내려놨다. FTX가 고객 자금을 알라메다리서치의 위험 투자에 사용하는 등 운영과 재정 관리 측면에서 부실과 부패를 드러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시작인 리먼브라더스 사태, 부패 기업의 상징인 ‘엔론’ 등 갖은 오명을 뒤집어썼다. 그를 비롯해 FTX, 알라메다 임원들은 미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테라 붕괴 당시 해결사를 자처했던 샘 뱅크먼 프리드는 충격을 가까스로 벗어난 산업을 다시 무너뜨렸다. 당시 암호화폐 시장에서 증발한 가치는 약 2600억 달러(한화 약 351조원)로, 시총을 작년 1월 수준인 7890억 달러 수준까지 축소시켰다. 채권자는 약 100만명으로 추정되며 이중 상위 50대 채권자에 대한 채무만 31억 달러(한화 약 4조173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여름 FTX의 지원을 받은 블록파이, 보이저디지털뿐 아니라 제네시스 트레이딩, 그레이스케일, 제미니 등 새로운 피해 기업이 양산됐다. FTX에 자금이 묶인 제네시스는 지난 16일 대출금 상환 및 신규 대출을 일시 중단해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이후 중앙화 거래소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거래소의 비트코인 대규모 유출이 이어졌다. 11월 15일 기준 데이터 분석 플랫폼 난센에 따르면 바이낸스, OKX 등 대형 중앙화 거래소(CEX)에서는 대규모 자금 유출이, 탈중앙화금융(DeFi, 디파이) 프로토콜에서는 대규모 자금과 이용자 유입이 확인됐다.
◇ 유통량 위반 '위믹스', 4대 암호화폐 거래소서 퇴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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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게임사 위메이드의 자체 코인 위믹스가 국내 4대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퇴출됐다. 11월 24일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등 디지털자산 거래소 협의체(DAXA, 닥사)가 ▲중대한 유통량 위반 ▲투자자에 미흡하거나 잘못된 정보 제공 ▲소명 기간 중 제출된 자료의 오류 및 신뢰 훼손 등을 이유로 위믹스를 투자 유의 종목으로 지정하고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위메이드는 다음날 긴급 기자회견에서 “아무 설명 없이 거래지원 종료를 하겠다는 건 일방적인 통보이자 갑질”이라고 비판하며, 4대 거래소 대상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12월 7일 법원은 위메이드가 신청한 3건을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위메이드가 스스로 밝힌 유통량을 실제 위반했으며, 이를 제한해 잠재적 투자자의 위험을 방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8일 오후 3시 위믹스는 4대 거래소에서 거래지원이 종료됐고, 내년 1월 중 출금 지원도 종료된다.
상장폐지 결정에 위믹스 가격은 연초 대비 90% 이상 하락했고 1조2700원에 이르는 시가총액이 증발해 투자자 피해도 발생했다.
위메이드는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위믹스 거래지원 종료결정의 부당함을 밝히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위믹스 유통 계획을 공개하는 등 투명성과 신뢰 회복에 나서고 있다.
이밖에도 올해 산업의 명암을 가르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올초 페이스북의 스테이블코인 ‘리브라’와 ‘노비’가 문을 닫았고, 대표 P2E 게임 엑시인피니티의 로닌 블록체인에서 7500억 달러 규모의 해킹이 있었다. 컴퓨트노드, 코어사이언티픽 등 채굴 대기업들이 시세 하락과 에너지 비용 상승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고 있다.
NFT 거래량, 디파이 총예치금도 크게 줄었다. 다만, 비자, 페이팔 등 대형 브랜드의 NFT·메타버스 상표권 출원은 계속됐고, 레딧,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이베이, 나이키, 스타벅스, 타임지 등이 NFT를 채택해 웹3.0 이용자를 늘렸다. 암호화폐 가격과 상관 없이 기술 혁신이 계속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던졌다.
마지막으로 “가치를 중시하고 열정을 가진 개발자들은 가격 움직임과 상관없이 개발을 지속하면서, 금융위기 이후 3년이 스타트업의 황금기가 된 것처럼, 미래의 인기 프로토콜이 나오는 약세장이 될 것"이라는 크리스 딕슨 a16z 총괄 파트너의 낙관적 전망을 공유한다. 2022년을 버텨낸 힘이 2023년을 밀고갈 저력이 되길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