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된 시장 상황 가운데 꾸준히 기반을 다져온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 속에 다양한 변화와 기회를 맞았다.
공급망, 결제 등 기존 시스템이 가진 문제와 한계를 드러내고 혁신 필요성을 확인시켜준 코로나 사태 상황에서 블록체인·암호화폐는 가능성 있는, 준비된 솔루션 기술로 집중 조명을 받았다. 산업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던 정부는 정부특금법 통과, 과세 도입 등 제도화를 통한 실제적인 수용 단계를 밟고 있다.
토큰포스트는 지난 한 해 국내외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을 장식한 주요 이슈 10가지 선정해 정리했다.
1. 특금법, FATF 암호화폐 지침 국내법 전환
2020년 3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암호화폐 산업이 제도화를 위한 첫 걸음을 뗐다.
이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지난해 6월 내놓은 권고지침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다. 기존 금융기관에 부과된 자금세탁·테러자금조달방지(AML·CFT) 의무를 가상자산사업자(VASP)에도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금법 개정안에 따라 VASP는 시중은행에서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실명계좌)'을 발급받고,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갖춰야 한다. 또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영업신고를 해야 영업이 가능하다. FATF 지침의 핵심인 트래블룰은 특금법 시행 1년 후 시점인 2022년 3월 25일부터 도입된다.
정부는 구체적인 시행 내용을 제시하기 위해 지난 11월 △가상자산사업자(VASP) 정의 △가상자산의 범위, △신고 서류 및 절차,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의개시 기준, △가상자산 이전 시 정보제공 대상·기준 등을 담은 관련 시행령 개정안도 발표했다.
2. 코로나19 확산에 비트코인 오르고 실물 자산 내리고
2020월 3월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실물 경제와 암호화폐 시장의 명암이 갈렸다. 팬데믹 공포에 주식 시장은 사상 최악의 낙폭을 보이며 무너졌다. 안전 투자 상품인 금과 국채마저 매도세가 형성됐다. 각국 정부가 적극적인 대응을 예고하고 중앙은행들은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 나섰지만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같은 인위적인 구제책이 없던 암호화폐 시장은 40%이상 하락하며 5000달러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후 암호화폐 시장은 자체적인 회복력을 보이며 꾸준히 상승 기류를 만들었다. 한편, 지난 5월 비트코인의 세 번째 반감기는 기대만큼 뚜렷한 가격 상승을 보이진 않았지만 공급량 제한 특성을 부각시켰다.
반면에 정부는 무제한 양적 완화 정책을 펼치며 달러 가치 하락을 예고했다. 이 가운데 비트코인은 새로운 가치 저장 수단으로 주목을 받았고, 유력한 개인·기관 투자자들이 연이어 투자 사실을 공개했다. 그레이스케일비트코인신탁, 시카고상품거래소(CME) 비트코인 선물 시장 등 기관 부문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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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텔레그램, 결국 규제 문턱을 못 넘었다
2020년 3월 텔레그램의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규제 장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중단됐다. 지난해 10월 SEC는 2018년 텔레그램이 진행한 17억 달러 규모의 토큰세일이 증권법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최종 판결에서 SEC의 손을 들어줬고, 그램 토큰 발행 및 판매에 대한 금지 명령을 내렸다.
텔레그램은 투자자에 환불 옵션을 제시하고 출시일을 조정하는 등 프로젝트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텔레그램은 벌금(1850만 달러 ), 투자금 반환 (12억2000만 달러) 등 이행 사안에 합의하면서 지난 6개월 간의 법적 공방을 마무리했다.
다른 대기업들도 규제 저항에 부딪혀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었다. 캐나다 소셜 미디어 킥 (Kik) 도 ICO 관련 벌금형 처분을 받고 서비스를 종료했다. 페이스북은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 리브라의 명칭을 디엠으로 변경하고 이미지 쇄신에 나섰지만 규제 우려와 당국의 반대는 계속되고 있다.
4. 디지털 위안화 발행 가시화...주요국 중앙은행도 관심
2020 년 4월 디지털 위안화를 지원하는 월렛 이미지가 유출되면서, 중국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실험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먼저, 선전 , 청두 , 수주 , 슝안 네 개 도시에서 제한적으로 실험을 진행했으며, 현재는 징둥닷컴 등 유명 기업들과 협력해 단계적으로 실험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선전, 이달에는 쑤저우 시에 거주하는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위안화 시범 운영을 실시했다.
페이스북의 디엠(전 리브라), 디지털 위안화 등 대규모 민간 화폐 발행 가능성이 가시화되자, 그간 뒷짐을 지고 있던 선진 국가들도 디지털화폐 발행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도 금융 시스템 보완 및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디지털 달러 발행을 추진할 명확한 이유가 없다고 봤던 미 연준도 디지털 달러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다. 유럽연합도 디지털 유로 발행 여부를 이르면 내년 확정할 계획이다. 일본도 주요 경제 정책에 CBDC를 포함시키고 발행 역량을 갖추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국도 내년 말까지 22개월 간 CBDC 파일럿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다.
5. 국내 암호화폐 과세 구체화
2020년 7월 국내 암호화폐 과세 방안이 확정됐다. 지난 7월 기획재정부는 암호화폐 매매를 통해 얻은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하고, 연 250만 원 이상의 소득에 대해 20% 세율로 과세한다는 내용의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비거주자나 외국인의 경우에는 암호화폐 거래소 등 사업자가 세액을 원천징수해 납부하도록 했다. 암호화폐 과세는 2022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암호화폐 과세 여부 및 방안을 논의해왔다. 지난해 12월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 외국인 고객의 소득세 원천징수 관련 세금 803억 원을 부과하는 등 실제적인 세금 징수에 나서기도 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지난 1월 "수익이 발생한다면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는 원칙에 입각해 과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6. 디파이, 새로운 수익 시장 가능성 열다
2020년 여름 암호화폐를 이용한 탈중앙금융(defi·디파이) 생태계가 폭발적인 성장을 보였다. 디파이는 스마트컨트랙트 기술을 활용해 계약 실행을 자동화한 금융 서비스를 말한다. 블록체인 기술로 금융 서비스에 필요했던 중개 기능을 대체시켰다.
코로나19로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데 반해 디파이는 이자농사(yield farming), 플래시론(flash loan) 등의 서비스로 높은 이율을 제공해 인기를 모았다. 이용자 수, 총예치금액, 관련 토큰 시가총액 등 모든 성장 지표들이 껑충 뛰었다. 은행 계좌 없이 스마트폰을 통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서비스 도달 반경도 더욱 넓었다.
모든 금융 활동을 새롭게 구현할 수있는 디파이 기술은 암호화폐 투자에 관심을 가진 개인뿐 아니라 미래 금융을 주도하기 원하는 일반 기업과 금융기관의 주목을 받고 있다. 베를린 비영리 연구기관 '디젠(dGen)'은 “디파이 시장은 새로운 금융 서비스 모델을 제공하며 수 년 내 현재 핀테크 산업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7. 페이팔 등, 주요 기업 암호화폐 품다...기술 상용화 표면 위로
2020년 10월 오랫동안 루머 혹은 시장 기대에 그쳤던 글로벌 결제기업 페이팔의 암호화폐 서비스가 공식화됐다. 전 세계 3억 5000만 사용자를 보유한 페이팔은 자체 월렛을 통해 암호화폐 거래 및 보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사용자 대상 서비스는 지난 11월 시작됐다.
페이팔은 내년 초에는 전세계 2,600만 개 가맹점에서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비트코인캐시 (BCH), 라이트코인 (LTC) 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또 내년 상반기 간편 송금 서비스 자회사 '벤모(Venmo)'와 해외까지 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대형 금융기관들이 암호화폐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JP모건은 자체 암호화폐를 활용하는 블록체인 기반 '레포(repo)' 거래에 성공하며 내년 상용화에 나선다. 스탠다드차타드는 기관급 디지털 거래 플랫폼을, 피델리티는 비트코인 담보 대출을, BBVA은행은 암호화폐 거래 및 수탁 사업을 준비 중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6월 카카오의 블록체인 개발 자회사 그라운드X가 암호화폐 모바일 지갑 서비스 클립(Klip)을 출시했다. 지난 11월에는 KB국민은행이 블록체인 기업, 투자사와 협력해 디지털자산 관리기업을 설립했다.
8. 사상 최대 열기 美 대선에서 확인된 블록체인의 자리
2020년 11월 3일 제46대 미국 대통령 선거가 사상 최대 열기 속에 진행됐다. 집계 지연, 가짜 뉴스 등의 문제로 혼란이 지속되면서 신뢰, 투명성, 자동화를 특장점으로 하는 블록체인은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 기술로 재조명됐다.
비탈릭 부테린, 자오 창펑 등 암호화폐 업계 인사들은 블록체인을 통해 투표 프로세스를 효율화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블록체인 시스템은 이미 여러 주 전당대회 등에서 활용된 바 있다. 러시아의 경우 전국민 개헌 선거에서 블록체인 시스템을 사용하기도 했다.
블록체인은 가짜 뉴스를 막기 위한 솔루션으로도 채택됐다. 대선 투개표 결과를 공식 집계하는 미국 연합통신사(AP)는 대선 결과를 퍼블릭 블록체인 이더리움(ETH)과 이오스(EOS)에 게재해 조작 및 변경 가능성을 차단했다. 올해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Verizon)과 대형 언론 뉴욕타임스도 가짜 뉴스를 막기 위한 블록체인 기반 솔루션을 선보인 바 있다.
9. 비트코인, 사상 최고점 기록…2만 3000달러 돌파
2020년 12월 오랜 암흑기를 보낸 암호화폐 시장은 최근 들어 2017년 상승장을 재연하고 있다. 올해 3월까지만 해도 5900달러 선에 거래됐던 비트코인은 지난 10월 1만 달러까지 올랐다. 이달 1일에는 전고점을 경신하고 이후 1만 9000 달러선을 유지했다.
한펴, 지난 17일 오전 비트코인 가격은 2만 달러를 돌파했다. 이후 상승 흐름을 유지하며 오후에는 2만3000달러까지 넘었다.
시장은 투기 열풍으로 그쳤던 2017년과 달리 규모 있는 암호화폐 현물·파생상품 시장과 더욱 전문화된 거래·수탁 시스템 등이 뒷받침하는 상승 흐름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10. 이더리움 2.0 시대 개막
2020년 12월 이더리움 2.0 전환의 첫 단계인 비콘체인이 1일 저녁 9시(한국시간) 정식 가동에 들어갔다. 이더리움 2.0은 이더리움이 제2의 인터넷으로 거듭나기 위해 처리속도와 확장성 한계를 개선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이더리움 재단은 지난 5일부터 이더리움 2.0 전환에 필요한 이더리움을 예금 컨트랙트에 예치하는 방식으로 검증인을 모집했다. 초반 참여도가 저조해 기한 내 달성이 어렵다는 예상이 높았지만, 11월 23일 목표액의 절반을 넘기더니 그 다음 날 하루 만에 최소 예치목표량 52만 4288 ETH를 초과 달성했다.
이번 0단계는 거래 검증 방식을 작업증명(PoW)에서 지분증명(PoS)으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PoW 검증 방식은 과도한 컴퓨팅 파워와 전력이 투입될 뿐 아니라 거래 처리 속도도 상당히 느리다.
반면에 PoS는 32 ETH를 예치하면 누구나 검증자로 네트워크 운영과 합의에 참여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 거래 처리 속도와 확장성, 에너지 효율성 등도 크게 개선된다.
이더리움 2.0 전환의 최종 완성까지는 5~10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7 년 반짝 유행을 지나 2018년부터 긴 암흑기를 지내온 블록체인·암호화폐 시장은 관심과 투자가 줄어든 상황에서 꾸준히 내실을 다져왔다. 디파이, 탈중앙신원인증(DID) 등 실제적인 활용 사례를 내놓고 기술 구현 역량도 한층 강화시켰다.
시장이 성숙해지면서 전 세계 각국 정부도 더 나은 규제 환경을 조성해가고 있다. 정부 차원의 블록체인 연구·개발 투자 지원이 이어지고 있으며 암호화폐 관련 규제도 속속 수립되고 있다.
러시아는 올해 국가 첫 암호화폐 법률인 '디지털금융자산법'을 통과시켜 암호화폐 거래를 합법화했다. 인도준비은행의 암호화폐 취급 금지 조치는 올해 3월 대법원 판결로 철회됐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포레스터(Forrester)는 올해 기업용 블록체인 및 분산원장기술 발전을 강조하며 "내년 기업용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30%가 상용화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쟁력 강화를 노리는 글로벌 대기업들은 이같은 첨단기술 활용에 주목하고 있다.
PwC는 최근 보고서에서 "블록체인은 다양한 산업 부문에서 추적 기능과 신뢰 수준을 개선할 것"이라면서 "향후 10년 동안 글로벌 국내총생산(GDP) 1조 7,600억 달러, 관련 일자리 4,000만 개를 창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1년, 기술 가치와 잠재력을 신뢰하며 발전을 이끌어온 저력으로 블록체인·암호화폐 산업이 더 큰 도약을 이뤄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