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암호화폐 시장을 짧게 요약하면 “비트코인 신고점 기록, 업계의 제도권 진입, 틈새 기술의 주류화”라고 할 수 있다. 암호화폐 시장은 가장 다채롭고 활력 있는 한 해를 보냈다. 시장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더욱 구체화하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투자 거물, 기업, 기관을 포함한 수많은 참여자들이 시장에 발을 들였고 대규모 자금이 따라왔다.
토큰포스트는 2021년 산업 흥행을 일군 주역들, 대형 사건의 핵심 인물들, 시장을 들썩이게 한 문제의 인물들까지 정리해봤다. 순위는 없다!
샘 뱅크먼 프라이드(Sam Bankman-Fried)
암호화폐 파생상품 거래소 FTX CEO
FTX 창업가이자 CEO인 샘 뱅크먼 프라이드는 1992년생으로 29세에 260억 달러의 순자산을 보유하며 2021년 포브스 선정 미국 400대 부자 순위에 올랐다. 2021년 12월 코인베이스, 비트퓨리 경영진과 함께 의회 청문회의 증언자로 참석해 암호화폐 업계를 대변하기도 했다.
FTX는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같은 암호화폐 거래소에 비해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공격적인 마케팅과 강력한 규제 이행을 통해 시장 입지를 다지고 있다. 수백 억대 명명권을 매입하며 미국프로농구 구단 ‘마이애미 히트’의 홈구장을 ‘FTX 아레나’로, 미식축구장 ‘캘리포니아메모리얼스타디움’을 ‘FTX 필드'로 바꿨다. ‘월드시리즈’에 광고를 내걸었고 2022년 ‘슈퍼볼’ 광고도 준비 중이다. 홍콩에서 바하마로 본사를 이전하고, 규제 승인 거래소 레저엑스를 인수하며 안정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등 규제 이행에도 힘을 주고 있다.
아케인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7월 기준 FTX의 암호화폐 선물시장 점유율은 16%로 1위인 바이낸스(24%)를 추격하고 있다. 10억 달러 상당의 투자금 유치로 기업가치를 250억 달러까지 높이며 12월 기준 세계 12위 유니콘 기업에 등극했다.
잭 도시(Jack Dorsey)
트위터 전 CEO 겸 스퀘어 CEO
소셜미디어 트위터 창업자이자 간편결제 기업 스퀘어의 CEO인 잭 도시는 일찍부터 비트코인을 인터넷 단일 화폐로 지지해온 인물이다. 트위터와 스퀘어에 비트코인 기능을 추가하고 하드월렛, 탈중앙화 거래소 tbDEX 등을 개발하던 중, 2021년 11월 트위터 CEO직을 전격 사임하고 스퀘어의 사명을 ‘블록(Block)’으로 리브랜딩하며 비트코인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잭 도시는 2006년 3월 21일 처음 올린 트윗 ‘방금 트위터를 설정했다(just setting up my twttr)’를 NFT로 발행해 화제를 모았다. 12월에는 사용자 중심의 인터넷을 표방하는 웹3.0을 거대 벤처 투자가 주도한다고 비판해 a16z 중심의 벤처 투자 부문과 설전을 빚기도 했다.
일론 머스크(Elon Musk)
테슬라·스페이스X CEO
일론 머스크는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와 우주 항공업체 스페이스X의 CEO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 2021년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2020년 연말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싶은 걸 참고 있다”고 했던 머스크는 2021년 암호화폐 시장에 참전했다.
혁신적인 사업가인 동시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짜인 그는 2021년 한 해 여러 차례 시장을 뒤집어 놨다. 테슬라의 비트코인 결제와 철회, 도지코인에 대한 지지와 폄하 발언에 시장이 크게 출렁였고, 일론 머스크는 시장의 영웅과 원흉 사이를 오갔다. 암호화폐 시장의 가장 큰 리스크가 ‘일론 머스크’라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였다.
‘도지코인(DOGE)’은 머스크 덕을 톡톡히 봤다. 인터넷 밈에서 장난처럼 시작돼 시총 12위 암호화폐가 되기까지 일론 머스크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최근에도 그는 “도지코인은 비트코인보다 나은 결제 수단”이라고 발언했고, 테슬라의 도지코인 결제 지원을 약속했다.
나입 부켈레(Nayib Bukele)
엘살바도르 대통령
엘살바도르는 2021년 6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지정했다. 비트코인을 통해 금융 포괄성과 해외 송금 수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던 나입 부켈레 대통령은 직접 비트코인 법정화폐 구상을 공개한 뒤 곧장 입법 절차를 밟았다.
IMF, 세계은행까지 나서서 여러 차례 위험성을 경고했고 국민들도 들고 일어났지만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비트코인 도입을 준비했다. 자체 지갑 ‘치보(Chivo)’를 출시하고 가격 변동성을 잡기 위한 펀드도 조성했다.
국가가 비트코인을 지원한다는 대형 소식에도 비트코인은 하락세를 보였는데, 엘살바도르는 때마다 대량 매입을 진행하며 암호화폐에 대한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비슷한 경제 상황에 처한 나라들이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실험을 주목하고 있다.
비플(Beeple)·마이크 윙클먼(Mike Winkelmann)
디지털 아티스트
2021년 3월 12일 13년간의 작업물을 콜라주한 비플의 NFT 작품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매일: 첫 5000일)'는 세계적인 경매 업체 크리스티에서 약 780억 원에 판매됐다. 디지털 작품이 희소성과 막대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며 NFT에 대한 관심을 크게 증폭시켰다.
전통적인 예술 시장이 먼저 움직였다. 크리스티에 이어 소더비, 필립스 등 세계 3대 옥션 하우스, 대형 미술관 등이 NFT 대열에 가세했다. 비플이 터트린 축포에 예술계뿐 아니라 많은 산업들이 눈을 돌렸고 NFT 활용 방안을 찾고 있다.
로함 가레고즐루(Roham Gharegozlou)
액시엄젠·대퍼랩스 CEO
2021년 한 해 암호화폐 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NFT’였다. 산업 변방에서 산업의 대중화를 선도하는 부문으로 성장했다. 대중적인 관심을 모으는 데는 인기 NFT 게임들의 활약이 있었는데, 가장 먼저 소비자 유치에 성공한 크립토키티와 가장 큰 인기를 끈 NBA탑샷이 모두 로함 가레고즐루의 손에서 나왔다.
대퍼랩스는 잇달아 NFT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서 가장 중요한 개발사로 자리매김했다. 안드리센호로위츠(a16z), 구글벤처스(GV) 등 대형 벤처 기업의 지지를 받으며 사업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2021년 3월 3400억 원, 9월 2964억 원 상당을 조달하며 기업가치를 9조 75억 원까지 평가받았다.
쭝응우옌(Trung Nguyễn)
엑시 인피니티 개발사 스카이마비스 CEO
블록체인과 NFT를 결합해 게임을 통한 수익 창출을 가능하게 한 ‘플레이투언(Play-to-Earn)’ 게임의 시작, ‘엑시 인피니티(Axie Infinity)’를 개발했다. 제2의 크립토키티를 꿈꾸며 엑시 인피니티를 만들었다고. 엑시 인피니티 이용자는 게임을 하면서 캐릭터 엑시를 수집·거래할 수 있는데, 돈 버는 게임으로 알려져 동남아를 중심으로 큰 인기몰이를 했다.
엑시 인피티니가 일으킨 P2E 게임 열풍에 전 게임 산업의 이목이 쏠렸다. 국내에서는 2021년 여름 위메이드가 글로벌 170여 개국에 P2E 게임 ‘미르4’를 출시하며 블록체인 게임 시대의 스타트를 끊었다. 스카이 마비스는 2021년 10월 페이스북, a16z, 삼성넥스트 등에서 18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으며 3조 5300억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게리 겐슬러(Gary Gensler)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2021년 1월 암호화폐·블록체인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진 개리 겐슬러가 차기 SEC 위원장으로 내정됐다. 2019년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강의한 경력이 있어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우호적인 시각을 가졌을 것이라고 알려졌었다. 비트코인 현물 ETF를 단 한 건도 승인하지 않고, 리플을 포함해 여러 암호화폐 프로젝트에 소송을 제기했던 전임자 대비 산업 진흥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깊은 관심이 규제 완화를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2021년 4월 17일 SEC 위원장에 임명됐지만 규제 상황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비트코인 선물 ETF를 승인했다는 점은 진전이지만 현물 ETF는 여전히 막혀 있고, 리플 소송도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개리 겐슬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400조 달러 규모의 파생상품 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를 주도한 대표적인 규제 개혁가였다. 시장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규제가 먼저라는 규제 찬성론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면서 암호화폐 거래소, 스테이블코인과 디파이에 대한 규제까지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도 권(Do Kwon)
테라폼랩스 CEO
테라폼랩스는 블록체인 기반 차세대 결제 플랫폼을 만든다는 목표로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 테라, 담보 토큰 루나, 그리고 다수의 디파이 프로토콜을 개발·운영하고 있다. 디파이, NFT 부문에서 유망성을 인정받아 2021년 초 판테라 캐피털, 코인베이스벤처스 등에서 2500만 달러를, 7월에는 애링턴 XRP 캐피털, 판테라 캐피털, 갤럭시 디지털, 블록타워 캐피털 등에서 1억 5000만 달러를 유치했다. 2021년 초 1달러 미만에 거래되던 루나는 한때 99달러까지 상승해 현재도 시총 9위를 유지하고 있다.
루나 개발사는 넷플릭스, 테슬라, 애플 등 미 빅테크주 주가를 추종하는 합성자산인 ‘미러 프로토콜’, 스테이킹된 거버넌스 토큰의 유동화를 지원하는 ‘앵커 프로토콜’도 개발했다. 미러 프로토콜과 관련해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도권 CEO에 소환장을 발부하고, 도권 CEO는 SEC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법적 갈등을 예고했다.
글을 마치며. 올해의 인물을 선정한 많은 기관들은 1위 자리에 무명의 참여자들, 커뮤니티를 올렸다는 사실을 전한다. 화두가 화력이 될 수 있었던 건 일반 대중의 애정과 참여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밀고 당기며 산업을 이끌어온 이들 덕분에 2021년 한 해 암호화폐 시장은 역사상 가장 큰 보폭으로 걸었던 듯하다. 기대와 다른 연말 약세장에 분위기가 한풀 꺾였지만, 2022년 새해에도 기막힌 아이디어와 열정을 가진 이들이 산업을 ‘넥스트 레벨’로 올려놓을 것을 기대해본다. 마침내 주류화의 문을 두드린 패기와 약세장에서 큰 도약을 준비했던 저력을 기억하며
“HAPPY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