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형 은행들의 1분기 실적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은행 산업 전반에 미묘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해방의 날’이라 칭하며 새로운 관세 부과 조치를 공개했다. 이 여파로 금융시장과 경기 전반에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투자자들은 이번 실적 시즌을 통해 은행들이 느끼는 충격의 정도와 향후 전략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분기 실적 결과에는 실물 지표보다 전망이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바클레이즈의 애널리스트 제이슨 골드버그는 "은행 자체는 관세로 직접 타격을 입지 않더라도, 고객 기반인 각 산업군이 타격을 입으면서 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은행업종 전반을 대표하는 KBW 나스닥 은행지수는 현재까지 올해 들어 약 18% 하락했다. 이는 S&P500지수보다 더 큰 낙폭으로, 경기 둔화에 따른 대출 상환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이번 주 금요일, JP모간체이스(JPM), 웰스파고(WFC), 모건스탠리(MS)가 실적을 공개하며 실적 시즌의 포문을 연다. 이튿날에는 뱅크오브아메리카(BAC), 씨티그룹(C) 등의 발표가 이어지고, 피츠버그에 본사를 둔 PNC 파이낸셜서비스(PNC) 등 지역은행도 순차적으로 실적을 공개할 예정이다. JP모간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주주 서한에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은행은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히며 관세 정책의 빠른 해결을 촉구했다.
실적 발표에서 특히 주목받을 항목은 대출 성장률이다. 트루이스트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초 기업대출 증가율이 약 1%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예년 봄에 흔히 관측됐던 4~5% 수준보다 크게 낮은 수치로, 기업들이 트럼프 정책 발표 이후 전략적 결정을 보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바클레이즈 역시 GDP 성장률 둔화가 대출 증가를 제약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기업 인수합병이나 기업공개 등 투자은행 부문의 딜메이킹 감소도 실적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스웨덴 기반 후불결제 서비스 업체 클라르나, 온라인 티켓 판매 플랫폼 스텁허브, 암호화폐 중심 트레이딩 플랫폼 이토로 등이 최근 기업공개 일정을 연기한 것은 불확실성이 자금조달 시장에 미친 영향을 방증한다. 바클레이즈 애널리스트들은 해당 부문의 딜 흐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적절한 시장 회복이 있을 때까지 잠시 미뤄지고 있다"며 낙관론도 함께 제시했다.
신용 품질 역시 핵심 변수다. 모건스탠리의 베시 그래섹 애널리스트는 "소비자들의 저축 수준이 낮아져 관세로 인한 가격 상승을 감내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 경우 소비와 대출 상환 능력에 모두 제약이 생기며, 은행들은 부실채권 발생 증가에 대비해야 한다. 물론 과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자본건전성 규제로 인해 현재 은행권의 기본 체력은 준수한 상태다. 파이퍼 샌들러의 스콧 시퍼스는 "현재의 자본 수준은 업계 전반이 위기에 대응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하다"고 평가했다.
이번 실적 시즌은 과거 실적보다 향후 방향성 제시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통상정책 리스크가 실물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금융기관이 이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