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금융 규제당국이 정한 암호화폐 기업의 의무 등록 기한이 임박한 가운데, 규제 문턱을 넘지 못한 기업들이 영국을 이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국 내 암호화폐 기업은 2022년 3월 31일까지 금융 감독당국인 재정청(FCA)의 운영 허가를 받지 못하면 서비스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2020년 1월 10일 유럽 제5차 자금세탁방지지침(5AMLD)이 시행되면서 영국 당국은 암호화폐 기업에 규제당국 등록을 의무화하고 2021년 1월 10일까지 정식 허가를 받도록 했다.
하지만 엄격한 자금세탁방지 요건과 느린 등록 처리로 인해 상당수의 기업이 운영 허가를 받는데 실패하면서 당국은 몇 차례 유예 기회를 제공했다.
2021년 1월 9일부터 7월 9일까지 등록 신청 기업에 임시 운영을 허용하는 임시 허가제를 도입했고, 2021년 6월 해당 기한을 2022년 3월 31일로 연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감을 하루 앞둔 현재도 암호화폐 기업의 등록 현황은 답보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백 개 기업이 등록을 신청했지만, 현재까지 정식 등록을 마친 곳은 33개 기업뿐이다.
영국 떠나는 기업들…"해외 이전이 답"
등록 가능성이 희박해진 기업들은 영국 등록을 포기하고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크로아티아, 스위스 같은 인근 국가로 사업장을 이전해 영국 이용자를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지난 3월 25일 암호화폐 시장조성업체 B2C2, 암호화폐 디지털 뱅킹 앱 와이렉스(Wirex), 트라스트라(Trastra), 코인버프(CoinBurp) 등 6개 업체는 정식 허가를 얻는 데 실패해 임시 운영 명단에서 제외됐다.
암호화폐 거래소 블록체인닷컴은 '규제 불확실성'을 이유로 재정청 등록 신청을 철회하고, 리투아니아, 미국, 아일랜드에 사업 등록을 알아보고 있다.
런던 소재 암호화폐 수탁업체인 '카퍼테크놀로지(Copper Technologies)', 디지털 은행 '레볼루트(Revolut)' 같은 대형 암호화폐 기업을 포함해 12개 기업이 임시 운영 명단에 남아 당국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업계 "현지 경쟁력 저하 우려"
현지 업계에서는 재정청의 규제 접근방식이 암호화폐 기업의 영국 이탈을 야기하고, 시장에서 해외 기업보다 자국 기업을 불리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외 기업들은 FCA 등록 심사 및 비용 없이 영국 시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규제 절차를 착실히 밟은 자국 기업에만 규제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2022년 8월 재정청에 정식 등록을 마친 암호화폐 거래소 제미니 영국 자회사의 블레어 할리데이(Blair Halliday) 대표는 "규제가 관할 국가 내에서 올바른 운영 방식을 택한 기업들에 부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기업뿐 아니라 이용자의 영국 이탈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카퍼의 수석 고문을 맡고 있는 필립 해먼드(Philip Hammond) 전 영국 재무장관은 2021년 1월 인터뷰에서 "명확한 암호화폐 규제를 마련하는 데 있어 영국이 유럽연합(EU) 같은 다른 금융 허브에 뒤처졌다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이라며 "영국이 금융 인재들과 시장 내 위상을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