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산업에 대한 과잉 과세로 논란이 된 미국의 인프라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관련 위반 행위를 '중범죄'로 간주하는 수정 조항까지 생기면서 산업 부담은 더욱 가중됐다.
2021년 11월 5일(현지시간) 로이터,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의회는 도로, 교량, 수자원공급, 인터넷 통신망 등 낙후된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 1조 2000억 달러(약 1400조 원) 이상을 투입한다는 '인프라 예산 법안'의 입법 절차를 마무리했다.
법안은 조 바이든(Joe Biden) 미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중점을 두고 추진해온 것이지만, 야당인 공화당뿐 아니라 여당인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대가 있어 수개월 동안 진행되지 못했었다.
법안은 암호화폐 시장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과세 대상자인 '브로커'의 정의를 과도하게 넓게 설정해 암호화폐 거래에 관여하지 않는 채굴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까지 무리하게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논란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법안은 2021년 8월 10일 상원 의회를 통과했다. 당초 1조 7000억 달러로 잡았던 예산 규모를 1조 2000억 달러 수준으로 조정하면서 공화당의 지지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암호화폐 과세 내용을 수정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반영되지 못했다.
미 하원은 11월 5일 막바지 논의를 거쳐 당내 이견을 좁힌 뒤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법안을 상정해 표결에 부쳤다. 찬성 228표, 반대 206표로 법안은 최종 통과됐다. 공화당에서 찬성 13표, 민주당에서 반대가 6표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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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어 산, 디파이 활동 '중범죄' 간주되나
암호화폐 산업은 인프라 예산법이 시장 발전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브로커' 정의뿐 아니라 새로 수정된 세금 징수 조항 '6050I'도 논란이 되고 있다. 1984년에 만들어진 6050I 조항은 기업·개인이 1만 달러 이상을 현금이나 은행 이체로 받을 경우, 15일 이내에 송금인의 이름, 주소, 사회보장번호, 거래 특성 등의 정보를 국세청에 보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인프라 법안은 해당 조항을 수정하며 현금의 정의에 '모든 디지털 자산(any digital asset)'을 포함시켰다. 다른 과세 조항과 달리, 6050I를 위반할 경우 '중범죄'로 간주돼 최대 5년까지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이는 은행이나 기타 금융기관에는 적용되지 않는 부분이다.
코인베이스 CEO "디파이에 재앙"
인프라 법 내 암호화폐 관련 조항에 대해 업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브라이언 암스트롱(Brian Amstrong) 코인베이스 CEO는 해당 조항이 디파이와 디지털 자산을 중범죄 취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프라 법안에 포함된 6050I 조항은 재앙"이라면서 "디파이 같이 건강한 암호화폐 활동 다수를 중대 범죄로 규정해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멜템 드미러스(Meltem Demirors) 코인셰어스 수석전략책임자도 "이번 개정은 위헌적이고 반미적인 성격을 띤다"고 우려를 표했다.
법률 전문가들도 암호화폐나 대체불가토큰(NFT) 같은 디지털 자산은 해당 법률을 준수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아브라함 서더랜드(Abraham Sutherland) 버지니아 법대 강사는 "디지털 자산, 특히 탈중앙화금융(DeFi, 디파이) 이용자에 불리한 조항"이라면서 "디파이를 전면 금지시키진 않았지만, 디파이 특성 상 이행할 수 없는 보고 요건을 부과한 것"이라고 짚었다.
서더랜드는 "1980년대 마약과의 전쟁에서 빠르게 범죄 퇴치 수단으로 발전한 것으로, 세금이 아니라 사실상 범죄 퇴치와 관련된 것"이라면서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범죄 집행 조항을 지출 법안에 슬그머니 넣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비용이 많이 들뿐 아니라 실행불가능하고 위험한 6050I 조항 수정은 법치와 민주적 법제화 규범에 대한 모욕"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오래된 법망이 산업을 좁혀오는 가운데, 산업은 정부의 규제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기술 혁신을 이어갈 방안을 더욱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해당 법안은 며칠 내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 공포될 예정이다. 재무부는 법률 해석 방안을 설명하고 이행 지침을 발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