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끈질긴 물가 상승에 대한 막판 총력전을 이어가면서 기준 금리를 16년 최고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연준은 2022년부터 10회 연속 금리를 인상한 끝에 통화 정책이 충분히 제약적인 수준에 도달했음을 시사했지만, 명확한 금리인상 중단이나 동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회는 5월 2일과 3일(현지시간) 진행된 정례회의 이후 성명서를 통해 "장기적으로 완전 고용과 물가상승률 2%를 달성하기 위해 위원회는 연방기금금리 목표 범위를 5.00~5.25%로 상향 조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연준은 성명서 일부 문구를 수정하며 금리인상 주기가 막바지에 와 있음을 시사했다.
'충분히 제약적인(sufficiently restrictive) 통화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위한 추가적인 정책 결정(some additional policy firming)이 적절하다'는 확정적 문구를 삭제했다.
또한 '추가 인상(future increases)을 판단할 때'가 아니라 '어느 정도의 추가 정책이 적절한지 판단할 때' 통화 정책 및 영향, 경제·금융 상황을 고려하겠다고 표현을 변경했다.
연준 의장은 이 같은 내용 변경에 대해 "더 이상 '예상'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면서 "회의 때마다 입수된 데이터를 토대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연준 의장 "금리 인하 없다...최종 금리 근접한 듯"
하지만 30분 뒤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시장의 금리 개선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물가가 예상만큼 빠르게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금리 인하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세가 작년 중반기 이후 둔화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압력이 높다고 판단했다. 3월 개인소비지출(PCE)가 4.2%, 핵심 PCE가 4.6% 상승하며 2% 목표치를 상회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연준 의장은 통화 당국의 목표가 '완전 고용'과 '물가 안정'이며 구매력을 끌어내리는 물가 상승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임을 피력했다.
그는 "물가상승률이 내려가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면서 "주택을 제외한 물가상승률은 아직 많이 낮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2021년 3월 이후 물가가 낮아졌다가 다시 올라가는 상황을 두세 번 목격했다"면서 "금리가 매우 긴축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적절한 판단을 위해서는 1년 물가 수준과 실질 금리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FOMC 정례회의에서 금리 인상 중단이 고려됐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위원들이 0.25%p 인상에 동의했다"면서 "금리 인상 중단에 대해서 얘기가 나오긴 했지만 이번에 해야 한다라는 말이 나오진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최종 금리에 어느 정도, 많이 가까워졌다는 말은 있었다"면서 "현재 여러 데이터를 봤을 때 최종 금리에 근접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완만한 경기침체...."예전 같은 '높은 실업률' 없다는 뜻"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는 "3월 FOMC 회의 때 연준 위원 절반이 경기 침체를 전망하고, 민간 지표에서도 침체 가능성이 확인되는데 왜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다고 낙관하는지" 질문했다.
연준 의장은 "당시에는 1분기 GDP가 나오기 전이었다"면서 "실제 상황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분기 GDP는 1.1%를 기록, 작년 미국 경제가 상당히 둔화됐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높은 금리 상황에서도 소비자 지출이 3.7%로 유지되는 등 경제는 여전히 확대 국면에 머물고 있다.
파월 의장은 "경기 침체를 피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두 시나리오 모두 가능하지만 경기 침체가 발생할 가능성보다는 경기 침체를 피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낙관했다.
또한 FOMC 위원들이 예상하는 것은 대부분 '완만한 경기 침체'이며, 그 근거는 탄탄한 고용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고용 시장에서 점진적인 개선 신호가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과잉 수요 상태라고 지적했다.
14개월 동안 금리를 5%p 인상했음에도 올해 첫 3개월 동안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고, 실업률은 긴축 시작 시기와 비슷한 3.5%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편, 연준 의장은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한동안 추세를 하회하는 경제 성장과 노동시장 여건 둔화를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통화 긴축과 최근 은행권 사태로 신용 여건이 긴축되면 추가적인 경제 역풍도 겪을 수 있다고 예고했다.
◇ "은행권 사태에 교훈 얻었다...다시 없을 것"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가장 먼저 꺼낸 문제는 은행권 사태였다. 그는 은행 상황이 3월 초 이후 많이 나아졌으며 미국 은행 시스템은 여전히 건전하고 탄력적인 상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신용 여건이 엄격해지면 경제 활동, 고용, 물가상승률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봤다. 신용 여건에 들어간 은행은 약 40~45%로 추정됐다.
연준 의장은 "많은 은행들이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면서 은행권 문제가 아직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했다.
다만 "3월 초 이후 많은 중소은행들이 유동성을 확보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당국 역시 대출 프로그램을 통해 은해을 지원하고 시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제롬 파월 의장은 이번 사태를 통해 교훈을 얻어 재발을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전례 없는 속도의 뱅크런을 경험했다"면서 규제와 감독에 반영해 더 건전하고 강력한 은행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이 발전해서 이런 사태가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당국 감독 규제 역량에 문제가 있었다라고도 할 수 있다"면서 "지금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원인을 찾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JP모건이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 인수를 통해 몸집을 더 불린 것에 대해서는 "큰 은행의 인수합병은 현실적인 것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은행 시스템 전반에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지역 은행이 인수해도 좋았겠지만 법적 절차에 따라 인수자가 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 국가부도 상황, 연준 고려 사항 아냐
정부의 부채 한도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 행정부와 미국 의회가 해결할 문제"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하며 "채무불이행 상태가 됐을 때 미 연준이 미국 경제를 구제할 수 있다고 기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연준 의장은 "부채 한도를 시의적절하게 증액해야 부채를 상환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 경제에 너무나도 큰 영향과 불확실성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채무불이행 상황은 아예 발생해선 안 되는 일"이라면서 "은행 시스템, 미국의 경제와 위상을 보호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채 한도 증액 불확실성이 금리 결정에 영향을 주었냐는 질문에는 "부채 한도 리스크에 대해 얘기를 나눴하지만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연준은 채무불이행 상황을 고려해서도 안 되고, 애초에 거론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주식 시장, 뚜렷한 변화 없어 '실망'...은행 위기에 치고 나가는 암호화폐 시장
주식 시장은 FOMC 성명서나 제롬 파월 발언에서 명확한 금리인상 중단 신호가 없었다고 판단하며 하락했다. 뉴욕증시에서 다우 지수는 전일 대비0.80%, S&P500 지수는 0.70%, 나스닥 지수는 0.46% 하락했다.
반면, 암호화폐 시장은 계속되는 은행 위기 속에 오히려 상승 반응했다. 오전 9시 기준 비트코인은 전날 대비 1.22% 상승한 2만9094 달러, 이더리움은 전날 대비 1.69% 오른 1907.43달러를 기록했다.
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6월 14일 열리는 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동결 확률은 81.5%, 0.25%포인트 인하 확률은 18.5%이다. 최종 금리 전망치는 5.00~5.25%를 가리키고 있으며 7월부터 금리인하에 들어갈 확률은 57.6%로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