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부총재는 "FTX의 붕괴는 규제를 통한 리스크 관리가 부재했기 때문"이라면서, 암호화폐 생태계에서 등장한 신기술을 규제 안에서 발전시켜야 한다고 발언했다.
21일(현지시간) 영란은행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존 쿤리프 부총재는 코번트리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암호화폐 규제와 탈중앙화금융(DeFi, 디파이)에 대한 견해를 공유했다.
그는 당초 스테이블코인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해 연설할 계획이었지만, 초안을 작성하는 사이 암호화폐 생태계에서 매우 크고 극적인 실패를 목격해 산업 전반에 대한 내용을 다루게 됐다고 밝혔다.
존 쿤리프 부총재는 "규제되지 않은 공간에서 태어난 암호화폐가 최근 몇 년 동안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지원할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면서 "업계 일부가 '규제 밖의 금융 시스템 개발'을 목표하고 있지만, 지난 한 해 동안 업계는 불안정한 모습을 드러냈다"고 짚었다.
그는 FTX와 중앙화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해 "여러 상품과 기능을 일괄 지원하는 거대 회사로 운영되면서도 전통 금융과 같은 면밀한 관리가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대출, 중개, 거래, 청산,결제 등 금융 기능들은 서로 다른 위험을 수반할 뿐 아니라 이해 상충이 발생할 수 있어 기존 금융 업계에서는 각 기능을 서로 다른 회사로 분리해 엄격히 관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FTX 실패가 탈중앙화 플랫폼으로의 이동을 촉진했다는 잠정적이고 제한적인 증거들이 나오고 있는데, 해당 플랫폼들이 실제로 '탈중앙화된 상태'인지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업계는 규제가 아닌 소프트웨어 프로토콜을 통해 분산 금융을 개발하는 것이 '해답'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탈중앙) 프로토콜 뒤에는 운영 수익을 가져가는 기업과 이해관계자들이 존재하며, 어떤 경우 누가 프로토콜 거버넌스를 통제하는지 불확실한 사례도 있다"고도 짚었다.
존 쿤리프 부총재는 "암호화폐 생태계와 주류 금융과의 연결성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면서 "소비자를 보호하고 금융 안정성을 지키며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규제기관의 접근 방식은 개방적이어야 한다"면서 "암호화폐 금융이 기존 금융과 동일한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이같은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탐색해야 한다"면서도 "높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혁신을 추진할 순 없다"고 선을 그었다.
영란은행 부총재는 업계의 불안정하고 건전하지 못한 사업 관행 때문에 암호화폐가 실패할 수 있다는 지난 17일자 파이낸셜타임즈 칼럼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는 "리스크 관리 실패는 기술 자체에 대한 실존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 "암호화폐는 기존 위험 관리 체계 안에서 개발하고 채택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토큰화, 암호화, 아토믹 청산(atomic settlement), 분산, 스마트 컨트랙트처럼 암호화폐 세계에서 개척되고 개발된 기술들은 일상의 디지털화로 인해 사라질 가능성이 낮다면서 "이를 발전시켜 금융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해 영란은행, 재정청(FCA), 재무부가 규제 샌드박스를 준비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쿤리프 부총재는 영란은행이 자체 CBDC 발행에 대한 자문 보고서를 연내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디지털 파운드화 작업과 도입에 대한 모든 결정은 현재 화폐, 결제, 기술 추세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의 맥락에서 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