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지요 로젠탈(Joe Rosenthal)이 촬영한 유명한 이오지마 성조기 게양 사진이 미국 애리조나주 코튼우드에 대형 벽화로 재탄생했다. 이번 작품은 세도나 출신 예술가 클라우디오 ‘쿼드릴리언(Quadrillion)’ 발데스(Claudio Valdez)가 미국 군인정신에 대한 헌사로 미국재향군인회 제25지부 건물 동쪽 벽면에 직접 그린 것이다.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이번 벽화는 원작 사진 못지않게 사실적으로 표현됐다. 작품을 감상한 한 지역 참전 용사는 “냄새만 없다면 진짜 현장을 보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발데스는 “작업하는 동안 매우 감정적인 경험이었다”며 “이 벽화는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우리가 쟁취한 역사와 자유에 대한 상징”이라고 전했다. 특히 그림 속 가장 왼쪽 군인이 애리조나 출신 포마 아키멜 오오담(Puma Akimel O’odham) 부족의 일원 이라 헤이스(Ira Hayes)라는 점도 벽화를 이곳에 그린 중요한 이유였다.
약 8주간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에서 발데스는 에어로졸 페인트를 활용해 밤 시간에 작업을 이어갔다. 바람 영향을 덜 받고 집중도 더 잘된다는 이유에서 그는 주로 야간에 창작 활동을 펼친다고 설명했다. 특히 섬세한 배경 묘사와 구름 연출로 벽화에 극적인 감정을 담아냈다고 밝혔다.
작업을 지켜본 미국재향군인회 포스트25 지부 커맨더 빌 티닌(Bill Tinnin)은 발데스를 “정확하고 세심하게 일하는 뛰어난 예술가”라며 극찬했다. 벽화 완성 이후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코튼우드는 다시금 미군의 희생을 기리는 장소로 주목받고 있다.
엘살바도르 출신인 발데스는 생후 1년 만에 뉴욕으로 이주했다. 어머니의 재봉 기술과 할아버지의 목수 솜씨에서 영향을 받은 그는 최소한 일에 대한 ‘책임’만큼은 어릴 적부터 각인돼 있었다고 전했다.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대학에서는 마케팅으로 학사를 취득하고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정식 예술교육을 받았다.
9.11 테러 후 플로리다로 이주한 그는 잠시 시정부 소속 벽화가로 일하다가 이후 멤피스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비영리단체 ‘페인트 멤피스(Paint Memphis)’와 협업하며 세계 각국 예술가들과 함께 대형 벽화를 그리는 기회를 얻게 됐고, 이를 계기로 커리어가 급속히 확장됐다.
“처음엔 부담스러웠지만, 그들이 제 실력을 믿어준 것이 제 경력의 분기점이 됐어요.” 그가 '쿼드릴리언 마일즈(Quadrillion Miles)'라는 별칭을 얻은 것도 이 즈음이다. “내가 걸어온 여정의 길이를 상징하고 싶었죠. 돈이 아니라, 거리였습니다.” 이후 그는 대부분 ‘쿼드릴리언’으로 불리게 됐다.
현재 발데스는 세도나의 펍 ‘PJ’s Pub’에서 외부 간판과 바 뒷벽 벽화를 작업 중이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섬세한 광섬유 조명을 결합한 ‘전례 없는 벽화’를 선보일 계획이다. 펍 운영자 셰리 부스(Sherie Booth)는 “정말 재능 있는 예술가이자 함께 일하기 편한 사람”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의 예술적 뿌리는 어린 시절 읽은 ‘세도나 관련 책’에 있으며, 실제 세도나에 발을 디딘 이후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 산속 탐험과 암벽 등반을 일상으로 삼고 있다. 발데스는 “애리조나의 예술 미래를 내 손으로 새롭게 조각하고 싶다”며 “오래도록 기억될 작품을 남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