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활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의사가 환자의 진료 기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의료 분야의 엄격한 규제로 진료 데이터에는 접근조차 쉽지 않다. 의료진은 매번 환자 상태를 직접 묻는 방법 밖에 없다. 환자도 자신이 먹는 약이 무엇인지, 과거에 어떤 질환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하기 어렵다. 메디블록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기존 중앙집중형 의료시스템이 가진 ‘정보 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한 환자 중심의 의료 데이터 플랫폼을 만들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환자 중심의 의료 정보 유통 플랫폼을 만드는 메디블록의 대표 고우균입니다. 개발자로 시작했고, 치과의사로도 일했습니다. 두 경력을 융합해 의료 분야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서울과학고 동창인 영상의학과 전문의 이은솔 대표와 메디블록을 창업했습니다.
메디블록이 해결하고자 하는 현재 의료시스템의 한계는 무엇입니까?
병원에 가면 의사가 환자에게 복용 중인 약은 없는지, 과거 질환이나 수술 이력은 없는지 묻습니다. 그런데 보통 환자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력을 알면 환자분에게 맞는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데, 직접 물어보는 것 외에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어서 환자에게 일일이 확인을 해야 하죠. 진료 기록을 조회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의료 분야는 타 분야와 다르게 개인이 본인의 진료 정보에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는 의료 정보 시스템이 의료기관 단위로 파편화돼 있기 때문이고요. 두 번째는 특정 기관이 의료 정보를 독식할 수 없도록 하는 강력한 규제 때문입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보니 가장 민감한 분야가 의료거든요. 어쩔 수 없이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어요. 의료는 효율성이 아니라 안전성이 중요하니까요. 이렇다 보니 개인 의료정보는 각 병원을 중심으로 관리되고 있음에도 환자가 진료를 받으면 다른 병원에서는 그 기록을 조회할 수 없습니다.
진료 기록을 공유할 수 있으면 불필요한 중복 검사를 피할 수 있고 그 정보를 토대로 보다 양질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진료 시간도 줄일 수 있죠. 현재로서는 그런 시스템은 물론, 의사와 환자 간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툴이나 중간에 두고 같이 볼 수 있는 데이터가 없는 상황입니다. 개인의 의료정보를 제3자가 한꺼번에 모아서 사용하는 것에 대한 강력한 제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렇습니다. 민감한 데이터다 보니까 관련 규제는 점점 더 촘촘해지고 있어요.
작년에 데이터 3법이 개정되면서 가명정보를 정보 주체 동의 없이 연구에 활용하는 게 가능해졌다고 하지만, 의료 분야에서는 전혀 진행된 부분이 없습니다. 인프라 면에서 봐도 금융 산업은 데이터 공유 인프라가 많이 생겼는데, 의료 분야는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 금융기관은 많아야 100개 남짓인데, 의료기관은 10만 개가 넘습니다. 하나하나가 다 별도의 기관인데, 법적으로 이 기관들 사이에 정보 공유를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주 규모가 큰 의료기관을 제외하고는 데이터 공유를 위한 리소스를 확보하거나 인프라를 구축하기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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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블록은 어떤 솔루션을 제공합니까?
메디블록은 기술과 규제 차원의 문제를 ‘환자 중심 의료 데이터 플랫폼’으로 개선하려고 합니다. 데이터의 사용 결정권을 환자가 갖고 있으니, 각 병원에 분산된 데이터를 하나의 플랫폼에 모아두고 환자 스스로가 개인의 데이터에 엑세스해 진료나 분석을 위한 의료정보 사용 동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이 정보를 병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를 개인이 직접 결정함으로써 병원 중심인 의료정보 시스템을 환자 중심으로 전환시키고 개인정보의 탈중앙화를 이루게 만듭니다. 솔루션은 블록체인 기반 ‘신원 증명’과 ‘데이터 진본 증명’을 통해 환자가 원하는 곳에 데이터를 제공하도록 합니다. 신원 증명과 진본 증명이 돼야 데이터를 믿고 사용할 수 있는데, 블록체인을 사용한 분산신원인증(DID) 기술을 적용해 이런 부분을 지원할 수 있죠.
혈액 검사 데이터를 예로 들면, 김 아무개가 언제, 어디서 혈액 검사를 했는지, 수치가 어떻게 나왔는지 등 고유 정보가 있을 것입니다. 블록체인은 해당 정보가 실제 김 아무개의 것이고, 어떤 기관이 어떻게 해당 정보를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동의 여부를 명확히 할 수 있습니다.
메디블록은 병원과 기관이 저장하던 환자의 의료정보를 개인이 앱에 저장해 자신의 진료이력을 안전하게 수집·관리하고 보험 청구 등에 활용할 수 있는 개인용 프로그램 ‘메디패스’, 이와 연동돼 효과적이고 신뢰도 높은 의료 정보를 유통하기 위한 의료기관용 전자의무기록(EMR) 프로그램 ‘닥터팔레트’를 개발해 환자가 중심이 되는 의료 생태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생성하고 활용했던 의료 데이터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환자가 직접 관리하고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것이죠. 메디블록은 정보 생산, 관리, 활용, 3단계에 맞는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닥터팔레트와 메디패스는 의료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습니까?
메디패스는 환자가 진료 기록을 내려받아 10초 안에 실손보험을 청구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반 간편 보험 청구 서비스입니다. 몇 번의 터치로 간편하고 빠르게 실손보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최근 3년간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등 7개 병원에서 받은 진료 내역을 조회할 수 있어요. 환자는 40여 개 보험사에 서류 제출 없이 무료로 보험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보험사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개인이 직접 제공하는 정보를 받아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죠. 보험사, 환자, 의료기관 모두 편리하고 안전하게 의료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의원·보건소 등 1차 의료기관에서는 의사의 컴퓨터를 데이터 저장소로 사용하기 때문에 컴퓨터 전원을 끄면 메디패스 서비스와 컴퓨터의 연동이 끊기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4시간 돌아가는 클라우드 베이스의 전자의무기록(EMR) 서비스 ‘닥터팔레트’를 개발했습니다. 닥터팔레트는 웹 베이스로 구현됐습니다.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아도 인터넷 상에서 손쉽게 이용가능합니다. 클라우드 EMR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것이죠. 메인넷 패너시어를 기반으로 운용되는 닥터팔레트와 메디패스에서 생성되는 의료정보는 상호운용됩니다. 닥터팔레트와 메디패스 지원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는 본인의 의료 정보를 필요한 곳에 자유롭게 제공해 중복 검사와 오진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닥터팔레트를 사용하는 1차 의료기관도 메디패스 앱을 이용해 예약, 진료, 수납까지 상급종합병원과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디지털 뉴딜 2.0 등 ‘디지털 헬스케어’를 추진하고 있는데요. 이런 시스템을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할 수 없었을까요?
호주와 싱가포르에서 정부 주도로 비슷한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각 의료기관에서 만든 정보를 정부 서버에 전부 기록하는 중앙화된 형태죠. 환자는 발급받은 아이디로 정부 서버에 접속해 병원에서 의료 기록을 볼 수 있고, 병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어요. 문제는 서버 하나만 해킹하면 수많은 데이터가 노출된다는 점입니다. 해커들의 표적이 되기가 너무 쉬워요. 실제로 싱가포르의 의료 정보 데이터베이스가 몇 번 해킹을 당했습니다. 총리뿐 아니라 수백만 명의 의료 정보가 순식간에 해킹 당해 누출되는 사건이 있었죠. 한곳에 중요한 정보를 다 모으면 그만큼 큰 리스크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기관 단위로 분산해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MR인증제를 통해 데이터의 단계마다 특정 요건을 갖추도록 강제를 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을 하고 있어요. 메디블록도 그런 방향에 맞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의료 분야에서 메디블록 서비스를 확산하기 위해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생성된 데이터가 밖으로 송출되려면 규제가 잘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원 인증과 데이터 인증을 지원하는 마이데이터 사업이 의료 분야에 도입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블록체인이 사용됩니다. 블록체인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기록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죠. 메디블록은 무엇보다 표준화된 블록체인이 사용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국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세계 표준을 따르는 분산신원인증(DID)을 지원하면 여타 블록체인과 호환돼 블록체인 산업 성장과 의료 서비스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데이터 흐름을 가속화하고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플랫폼에서 메디코인을 사용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인센티브 구조가 잘 만들어져야 흐름이 만들어지고, 전체적인 생태계가 잘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메디패스에 경제적인 인센티브뿐만 아니라 활동에 대해 보상하는 등 정성적인 면에서도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메디블록은 ‘환자 중심의 의료 데이터 플랫폼’으로 어떤 미래를 그리고 계십니까?
현재 의료 서비스 환경에서 환자분들은 ‘눈 뜬 봉사’와 같은 상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료에 앞서 마땅히 알아야 할 정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모르는 상태로 진료하게 되죠. 의료 서비스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 불편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메디블록은 블록체인을 통해 데이터 플로우를 만들어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생각입니다. 현재는 데이터가 전혀 유통되지 않고 있지만 ‘환자 중심의 의료 유통 플랫폼’을 구축해 데이터가 흐를 수 있는 채널을 만들고 개인과 기관이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하는 것이 메디블록의 목표입니다.
본 인터뷰는 <BBR: Blockchain Business Review> 11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