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과정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 컨설팅이라는 일의 핵심이다. 커니코리아에서 블록체인 컨설팅을 이끌고 있는 진창호 상무는 기업이나 기관이 쉽게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커니코리아가 컨설팅에 담는 가치와 고민은 무엇인지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커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커니(Kearney)는 전 세계 40개국에서 60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 경영컨설팅 회사입니다. 1926년부터 커니는 본질적인 올바름(essential rightness)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고객들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효과가 있으면서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분야 컨설팅을 진행할 때 어떤 부분을 중점으로 두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블록체인 기술에 집중하는 것보다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블록체인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방식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블록체인을 적용했을 때 효율이 극대화되지 않을 경우 적용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컨설팅을 하다 보면 멋지고 이상적인 얘기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요. 그때마다 현실적인 관점으로 내려오는 게 필요합니다. 컨설팅 결과를 당장 내년에 진행할 수 있는가, 회사가 컨설팅을 수용할 역량이 되는가를 실행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컨설팅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은 무엇이 있나요?
신기술에 대한 개념을 같은 눈높이로 이해한다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AI나 RPA(로봇 프로세스 자동화)는 사람들이 우호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기업 입장에서도 적용이 쉽습니다. 반면 블록체인의 경우 예전 코인 투기와 연관 지어 왜곡된 시각으로 보시는 분들도 있고, 일부 대기업의 경우 C레벨(경영진)에서 블록체인 과제가 내려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 블록체인이 어떤 기술이고, 왜 필요하고, 어떻게 좋아지는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블록체인은 기본적인 철학과 사상이 생태계의 구조와 프로세스를 바꾸는 개념인만큼 거대한 변화가 필요한데, 보이는 빙산의 일각에 비해 바꿔야 하는 게 너무 많아 설득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커니가 제공하는 ‘블록체인 3.0에 특화된 서비스’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블록체인 3.0은 이전 산업 흐름과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나요?
시중에선 비트코인을 1.0, 이더리움을 2.0, 그 이후의 기술을 3.0으로 기술 플랫폼에 따라 블록체인을 구분하는데요. 컨설팅 관점, 산업적 변화 관점에서 저희가 블록체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좀 다릅니다. 블록체인 1.0에서 물류의 이력 추적같이 특정 산업 내에서의 작업 효율화·비용 절감을 위한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면, 블록체인 2.0은 지역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산업의 밸류체인(Value Chain) 차원에서 서비스를 확대하는 사례들로 볼 수 있습니다.
공공, 제조, 에너지, 소매 등의 영역에서 밸류체인을 확장해 계약을 관리하고 데이터를 공유하는 형태가 대표적입니다. 다만 앞서 말한 변화들이 실제로 산업 전반에 적용돼혁신을 일으켰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개발 시도나 파일럿 테스트 개념은 많았지만, 산업 전반을 변화시키지는 못했거든요.
블록체인 3.0에선 기존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와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이 생기면서 시장에 큰 변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체불가토큰(NFT)화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거나, 디파이를 통한 탈중앙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든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나 증권토큰발행(STO)와 같이 기존에 없던 서비스인데 블록체인 기술이 접목되면서 시장에서 새롭게 상용화된 서비스가 생기는 것이 3.0의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커니는 이런 블록체인 산업 변화에 초점을 맞춰 컨설팅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기업 입장에선 산업 진단과 서비스 기획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직접 개념증명(PoC)와 프로토타입을 빠르게 개발해서 변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 차별화된 서비스와 플랫폼이 의미를 가지려면 현실의 법과 제도라는 합법적 테두리 안에 들어와야 하고요. 커니는 기업의 사업진단과 플랫폼 기획, 프로토타입/PoC 개발, 관련 법·제도 자문을 포함한 종합적인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 종료된 한국은행 CBDC 컨설팅 과제의 총괄 PM을 담당하셨습니다. 한국은행 CBDC 컨설팅에서 핵심으로 삼았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화폐의 기본적인 흐름인 제조, 발행, 유통, 폐기, 환수에 CBDC가 적용됐을 때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영되는가에 대한 기술적 조언이 컨설팅의 핵심이었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신용카드나 카카오페이를 많이 쓰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CBDC를 통해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가 만들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던 것 같아요. 컨설팅 하반기에는 언론에서 제기했던 프라이버시 이슈를 고려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형태의 CBDC를 설계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최근 여러 발표에서 CBDC와 함께 전자지갑의 중요성도 강조하셨습니다. CBDC에 비해 전자지갑의 주목도는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는데요. CBDC 생태계에서 전자지갑은 어떤 역할을 맡게 되나요?
CBDC는 법화잖아요. 어디서든 사용이 가능한 현금과 동일한 지위를 누려야 하는데, 그러면 CBDC를 담을 수 있는 지갑이 당연히 필요합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기존의 지갑이 신용카드와 종이화폐 정도만 담을 수 있었다면 전자지갑은 담을 수 있는 자산의 형태가 늘어나는 거죠. 우리가 얘기하는 NFT나 암호화폐가 들어갈 수도 있고, 혹은 부동산 소유권이 들어갈 수 있고요. 기존 우리가 특정한 지불결제수단으로만 들고 다니던 것에서 개념이 굉장히 확장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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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DC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디지털화된 세상에선 여러 자산을 보관할 수 있는 안전하고 증빙된 곳이 필요한데, 소비자 입장에선 그게 전자지갑의 형태가 될 겁니다. 전자지갑을 통해 개인의 신원과 자격을 인증할 수도 있고, 자산을 담거나 거래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메타버스가 확대돼 온-오프라인 생태계 혹은 현실과 가상세계 간 크로스보더가 필요할 때 전자지갑은 중요한 길목이 됩니다. 이 때문에 전자지갑을 주도하는 플랫폼 회사는 변화하는 세상의 중심 축이 될겁니다. 고객과 생태계의 접점이고, 모든 형태의 데이터와 자산을 물리적으로 담을 수 있거든요. 최근에는 개인이자기 정보의 소유권을 가지고 언제든지 폐기와 이관이 가능하도록 바뀌고 있잖아요. 이런 변화와 맞물려 전자지갑도 단순히 자산만 담는 개념이 아닌, 개인과 관련된 모든 히스토리와 데이터를 담는 형태가 되면서 중요성이 커질 거예요.
저희가 한국은행과 컨설팅을 할 때도 강조했던 게, 전자지갑이 단순히 CBDC만 담는 게 아닌 다양한 자산을 담을 수 있는 표준화 그릇이라는 점입니다. 종이화폐 대체만을 위해 CBDC를 유통하려는게 아니에요. 금융의 혁신을 어떻게 일으킬 것인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이 아니면 CBDC를 발행할 이유가 없습니다.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의 효율화도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혁신이 발생하는 지점은 CBDC의 ‘활용’입니다. CBDC로 금융상품을 사거나 자산을 옮기는 관점에서 혁신이 생기는 거고, 이를 위해서도 전자지갑의 설계가 중요해지는 거죠.
CBDC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질문입니다. ‘CBDC는 암호화폐를 대체하나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른데, 일정 부분에서는 바뀔 수 있다고 봅니다. 사실 암호화폐라고 얘기하면 너무 큰 범위에요. 지금 법적으로도 많이 논의가 되고 있지만 이게 유틸리티인지, 페이먼트인지, 혹은 증권성을 가진 자산인지 분류하는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CBDC의 활용이 어느 쪽으로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CBDC가 송금과 지불·결제에 사용된다면 페이먼트로 쓰이던 암호화폐는 대체될 수도 있습니다. 신용카드나 현금이 있다고 해서 마일리지나 이용권이 없어지는 게 아니듯, 각 자산의 목적에 따라 유기적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가져올 혁신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와 플랫폼이 생겨난다, 이렇게 정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산업적으로 블록체인에 접근하는 방식은 옛날 방식입니다. 물류 산업 분야의 유통 이력 추적을 예로 들면, 초기 월마트가 돼지고기 유통을 추적하는데 IBM의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다고 세계적으로 떠들썩했지만, 정말 활성화나 상용화가 잘 됐다고 보기는 어렵거든요. 기존에 있는 문제는 지금의 기술로도 해결이 가능한 영역이 많이 있어요. 블록체인을 적용해서 단순하게 이력 추적을 하기보다, 기존에 있는 시스템보다 엄청 효율화되거나 혁신적인 수준의 비용 절감이 이뤄져야 생태계가 변화되거든요. 고객이 새로운 플랫폼으로 넘어갈 때는 최소 10배 이상의 효율이 나야 한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물류에서도 단순히 유통 추적을 넘어 블록체인 내에서의 계약 관리, 실제 실물의 이동, 데이터의 흐름, 결제와 정산을 다 해결하는 서비스 모델이 나와야 비로소 혁신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력 추적에서 정산과 계약이 같이 이뤄지는 형태로 발전하면 페이먼트 산업 영역으로도 확장되는, 이종산업 간 결합을 통해 혁신이 발생하게 되는거죠. 이게 저는 블록체인 3.0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변화가 일어나는 영역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블록체인 발전 방향을 어떻게 조명하십니까?
메타버스도 단순히 가상공간에서 아바타를 만들고 교류하는 플랫폼으로 생각했지만, 그 안에서 특정한 아이템을 매매하는 등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 룰 세팅을 누가 할 것인가 생각해 보면 답은 자연스럽게 블록체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메타버스 내에서 특정 아바타의 개인 신원을 증명하기 위해선 분산신원증명(DID) 기술이 적용되고, 메타버스 상에서 자신의 아바타와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NFT 개념이 사용되겠죠. 결제나 송금같이 재화를 주고받을 때는 기존 페이먼트의 역할을 CBDC나 토큰이 맡게 될 수도 있고요. 메타버스 내에서의 금융산업도 어떤 모습으로든 흘러갈 것이고, 그럼 자연스럽게 디파이도 자리잡을 겁니다. 기존 금융시장이 그대로 적용된다기보다 메타버스만의 새로운 서비스와 규칙이 생겨나야겠죠.
DID와 CBDC, 올해 광풍이 불었던 NFT까지 블록체인 3.0의 흐름에서새로운 기술 기반의 서비스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직은 블록체인 산업 내에서의 서비스로 통용되고 있지만 블록체인은 점차 큰 산업 생태계에 접목되는 기저기술이 될 겁니다. 메타버스 내에서의 블록체인 역할, 산업계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ESG 변화에서의 블록체인 역할 등 여러 산업에서 블록체인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본 인터뷰는 <BBR: Blockchain Business Review> 11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