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연금'으로 확장되는 암호화폐 투자…고객 문의 17% → 49% 껑충

미국에서 은퇴 자금을 암호화폐에 투자 노출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가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퇴직연금을 활용한 공격적 투자로 자산을 불리고자 하는 고객층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변동성이 큰 투자 자산이 '은퇴 자금'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21년 6월 25일(이하 현지시간) '은퇴를 위한 저축? 이제 비트코인 투자도 가능하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미국 금융 서비스 업체들이 높은 투자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방안으로 암호화폐를 포트폴리오에 추가하는 신규 상품 및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암호화폐 은퇴연금 출시 잇따라

'CryptoIRA', 'BitcoinIRA' 등의 이름으로 판매되는 암호화폐 투자 노출 상품들은 401(k)와 개인은퇴연금(Individual Retirement Account, IRA)에 묶인 22조 5000억 달러의 자금을 겨냥하고 있다.

401(k)는 기업이 직원 급여의 일부를 차감해 투자 계정이나 저축 계정에 적립하는 퇴직연금이다. 급여의 3%에서 40%까지 적립가능하며 세금 공제 혜택이 있다. 개인은퇴연금(Individual Retirement Account, IRA)은 정부의 세금 유예 혜택을 받아 수입 일부를 은퇴연금으로 저축할 수 있는 계좌다. 401(k)와 달리 개인이 직접 계좌를 개설해 관리할 수 있다.

이같은 은퇴 자금들은 보통 주식, 채권, 장기 펀드 등에 안정적으로 투자된다. 하지만 최근 암호화폐 같은 대안 투자를 통해 보다 높은 수익 기회를 찾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타이론 로스(Tyrone Ross) 온램프인베스트(Onramp Invest) 최고경영자(CEO)는 "디지털 자산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며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은퇴계좌에 비트코인을 포함시키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투자 문의 17% → 49%

재무설계협회(FPA) 및 기타 2개 기관이 500명 이상의 자산 관리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암호화폐 투자 문의를 받고 있다'는 응답자 비율은 2020년 17%에서 2021년 49%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1년 내 암호화폐 활용 증가를 예상하는 응답자 비율은 2020년 0%에서 2021년 26%로 증가했다. 고객에게 암호화폐 투자를 권한다는 응답자는 2019년과 2020년 1% 미만 수준에서 2021년 14%까지 늘었다.

2021년 6월 7일 중소기업 전문 퇴직연금 서비스업체 '포어스올(ForUsAll)'은 퇴직연금 포트폴리오의 최대 5%를 암호화폐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포어스올은 수백 여 개 기업의 7만 여 근로자를 지원하고 있다. 이용자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라이트코인 등 50여 종의 암호화폐에 투자할 수 있으며 코인베이스를 통해 자금이 관리된다.

규제기관·대형 기업들은 '조심'…대안 투자사는 '적극'

퇴직연금을 암호화폐에 투자 노출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우려도 있다.

비트코인은 4월 6만 5000달러 최고점을 기록한 이후 급락해 반토막이 난 상태다. 중국이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단속을 한층 강화하는 등 규제 전망도 불투명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암호화폐 같은 대안 자산을 허용하는 IRA 투자 관련 사기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이에 관련 대형 기업들은 은퇴 자금을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찰스슈왑(Charles Schwab)과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Fidelity Investments) 같은 대형 은행과 중개업체들은 IRA 투자를 주식, 채권, 펀드, 정기 예금으로 제한하고 암호화폐 매입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단, 암호화폐에 투자 노출하는 신탁에는 접근할 수 있다.

반면에 금, 부동산, 사모 등 대안 투자에 전문화된 IRA 제공업체들은 암호화폐 투자에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2021년 3월 이스라엘 연금기관 알츠슐러 샤함(Altshuler Shaham)은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트러스트(GBTC)에 1억 5000만 달러를 간접투자해 100% 수익을 거뒀다고 밝혔다. 기업은 2020년 12월 투자를 시작했으며 2021년 2월 3분의 1가량을 팔아 수익을 실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로보어드바이저 기업 베터먼트(Betterment)도 IRA 및 과세 계좌에 암호화폐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조 짐머(Joe Ziemer) 대변인은 "고객이 적절한 조언을 받으며 책임 있는 방식으로 투자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댄 이건(Dan Egan) 베터먼트 행동재무·투자 부대표는 "암호화폐 시장 가치가 글로벌 주식·채권 시장의 0.5%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포트폴리오의 1% 이상만 해도 공격적인 투자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IRA 수탁업체 킹덤트러스트(Kingdom Trust)는 자사 'ChoiceIRA'을 통해 암호화폐 20종에 대한 투자를 지원 중이다.

라이언 래드로프(Ryan Radloff) 킹덤트러스트 CEO는 "수탁 중인 고객 자산 170억 달러의 약 10%에 해당하는 20억 달러를 암호화폐로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암호화폐 할당률은 1년 전 2% 수준에서 크게 급증했다.

래드로프는 "고객들은 테슬라, 게임스톱,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을 거래하고 있다"면서 "부모 세대처럼 일반 펀드에 자금을 가만히 두는 것이 아니라 은퇴 계좌를 통한 공격적인 투자와 거래에서 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거래가 빈번한 고객들은 수익금을 비과세 방식으로 재투자할 수 있는 퇴직계좌에 암호화폐를 포함시키길 원한다"고 설명했다.

에드 슬롯(Ed Slott) IRA 전문가는 자산을 매입해 장기 보유하는 투자 성향일 경우에는 암호화폐를 과세 계좌에 넣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1년 이상 자산을 보유한다면 과세소득을 자본 손실로 상쇄하고 자산 인출 시 퇴직계좌보다 적은 비용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수료, 변동성 문제 vs 수익으로 상쇄 가능

퇴직연금을 암호화폐에 투자할 때는 수탁 및 거래 수수료 문제도 따른다. 피델리티 같은 IRA 수탁업체는 별도의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지만 대안 투자 전문 수탁업체들은 수탁 및 계좌 관리에 관한 연간 수수료 및 거래 시 수수료를 요구한다.

얼터너티브 IRS 서비스(Alternative IRA Services)의 BitcoinIRA 이용자는 연 240달러의 계좌 수수료를 납부해야 한다. 매도 시 1%, 매입 시 5.5%의 거래 수수료도 붙는다.

이에 대해 크리스 클라인(Chris Kline) 비트코인IRA 최고운영책임(CCO)은 수익을 통한 비용 상쇄를 주장했다. 그는 "BitcoinIRA은 현금과 암호화폐 보유 자산에 최대 6%의 이자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이를 통해 관련 수수료를 절감하거나 상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암호화폐 투자자는 개인에서 전문 투자자, 기관, 기업으로 점차 기반이 확장되고 있다. 대학 기부 재단들도 2019년 암호화폐 직접 투자를 시작했고 이제 은퇴자금까지 암호화폐 투자에 발을 들이고 있다. 다만 은퇴자금 투자는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만큼 상당한 주의가 요구된다.

투자 자문업체 에델먼파이낸셜엔진(Edelman Financial Engines)을 설립한 릭 에델먼(Ric Edelman)은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연방 또는 주 금융당국이 규제하는 IRA 수탁업체를 이용하고 신중히 투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IRA 전문가 에드 슬롯은 "은퇴했거나 은퇴가 가까운 투자자도 갑작스런 손실을 만회할 충분한 시간이 없을 수 있기 때문에 암호화폐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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