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지안카를로(Christopher Giancarlo) 전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이 주도하는 디지털 달러 프로젝트가 디지털 달러 관련 백서를 발간했다. 백서는 디지털 달러가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처럼 이중 레이어 구조로 운영돼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디지털 달러 프로젝트는 지난 29일(현지시간) 디지털 달러 백서를 발간하고 프로젝트 연구에 착수했다. 이번에 공개된 30페이지 분량의 백서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의 장점과 유통 방법 등을 설명하고, 미국 달러를 디지털화하기 위한 방안과 시범 운용을 위한 제안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디지털 달러 프로젝트가 내놓은 디지털 달러 모델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이중 레이어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상업은행들을 대상으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디지털 달러를 발행하면, 상업은행들이 국민에게 이를 유통하는 형식이다.
국민들은 디지털 지갑을 통해 디지털 달러를 관리할 수 있고, 상품 구매 등의 상거래 결제에도 이용할 수 있다. 은행은 기존 달러와 마찬가지로 국민들이 예금한 디지털 달러를 이용해 대출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이중 구조의 디지털 달러 모델은 기존 화폐 유통 구조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이점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기존 금융 환경에 미치는 파급력을 줄이겠다는 구상을 담고 있다. 기존 법정통화인 달러를 완전히 대체하는 개념이 아닌, 기존 달러와 공존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통한 혁신성과 효율성 등의 이점을 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아울러 백서는 토큰 기반의 디지털 달러 개념과 계좌 기반의 디지털 달러 개념을 비교했다. 이 가운데 토큰화된 디지털 달러가 보다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사태에서 빠르고 효율적인 국가보조금 지급에 토큰화된 디지털 달러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백서는 "토큰화는 새로운 레벨의 이동성, 효율성, 프로그램 가능성, 접근성을 제공할 수 있다"며 "토큰화된 디지털 달러는 기존 화폐 형식을 보완하는 동시에 기존 지급결제 및 금융 인프라를 현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디지털 달러 프로젝트는 백서가 다루고 있는 잠재적인 활용 사례와 파일럿 프로그램 테스트를 위한 시스템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활용 사례는 국내 결제를 포함해 국경간 결제, 정부 재난지원금 지급과 같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재단은 향후 테스트를 통해 디지털 달러가 통화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부터 기술 선정, 규제 준수에 이르는 다양한 부분을 평가할 예정이다.
이러한 내용을 만족하는 시스템 구축과 테스트를 위해서는 상당 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지안카를로 전 CFTC 위원장은 "디지털 달러의 발행 시점은 5~10년이 걸릴 수 있다"면서도 "이는 대단히 중요한 프로젝트로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디지털 달러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됐다. 정부 재난지원금의 효율적인 지급방안으로 디지털 달러가 주목받으며 관련 법안이 미국 하원에 제출되기도 했다. 다만 지안카를로 전 CFTC 위원장은 디지털 달러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지금 당장 발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실제 발행 전에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지난 3월 파이낸스매그네이츠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는 '디지털 달러'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줬지만, 지금은 디지털 달러를 도입하기 적합한 시기가 아니다"라며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디지털 달러 도입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안카를로 전 CFTC 위원장은 지난 1월 CBDC 개발을 위한 민간 비영리단체 '디지털달러 재단'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재단은 스웨덴 중앙은행의 e-크로나 프로젝트 협력사인 글로벌 컨설팅 기업 액센츄어(Accenture)의 지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