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리움(ETH) 가격이 24일(현지시간) 5% 하락하며 2,650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특히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비트(Bybit)가 최근 7억 달러(약 1조 80억 원) 상당의 ETH를 매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가격 반등은 나타나지 않았다.
바이비트는 지난 21일 발생한 해킹 사건으로 상당량의 ETH를 도난당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거래소가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대규모 매입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며 ETH 가격 반등을 예상했다. 하지만 바이비트의 매입이 공개된 이후에도 시장은 강세 신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ETH 선물 시장에서 레버리지 청산이 발생하며 가격 하락을 부추긴 것으로 분석된다.
바이비트 공동창립자 벤 저우(Ben Zhou)는 "해커가 스마트 계약을 조작해 자금을 유출시켰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 공격이 북한 연계 해킹 그룹 '라자루스(Lazarus)'의 소행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다만, 라자루스는 일반적으로 도난 자금을 서둘러 매각하지 않고, 여러 단계를 거쳐 세탁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바이비트 해킹과 ETH 시장 하락이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편, ETH 시장의 유동성 부족 역시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분석에 따르면, 주요 10개 거래소에서 ETH의 2%가량의 주문장 깊이는 약 5,200만 달러(약 748억 원) 수준으로, 7억 달러라는 거대한 매입 물량을 흡수하기에는 부족했다. 또한, 바이비트의 ETH 매입이 장외거래(OTC) 방식으로 진행된 가능성이 높아 시장에서 즉각적인 가격 반등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ETH 레버리지 청산도 가격 하락을 가속화했다. 24일 기준 ETH 선물 시장의 오픈이자(Open Interest)는 전날 8.82M ETH에서 8.52M ETH로 감소했다. 이는 일부 거래자들이 바이비트의 추가 매입을 기대했던 투자 전략을 포기하며 시장에서 이탈한 것으로 풀이된다. ETH 선물 시장에서 강제 청산 규모는 약 3,400만 달러(약 490억 원)로 크지는 않았지만, 가격 변동성과 맞물려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
또한, 바이비트 해킹 사건은 암호화폐 보안 시스템의 취약성을 다시금 부각시키며 투자 심리를 위축시켰다. 특히 이더리움 가상 머신(EVM) 기반의 멀티시그(wallet)의 취약성이 문제로 지적되며 보안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대형 거래소조차 보안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ETH 스테이킹 수익률도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ETH 네이티브 스테이킹 보상률은 2.4% 수준으로, 솔라나(SOL)의 4%에 비해 경쟁력이 낮다. 또한, 최근 ETH 공급 증가율이 0.6%를 기록하며 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검토 중인 ETH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 스테이킹 기능이 포함될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투자자들의 기대감도 한풀 꺾인 상황이다.
결국 ETH 가격 하락은 바이비트 해킹뿐만 아니라 레버리지 투자자의 매도세, 낮은 유동성, 멀티시그 보안 문제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맞물려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이 반등을 시도하려면 추가적인 자금 유입과 투자 심리 회복이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