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반등 없는 연말을 보내며 약세 장기화를 확정했던 암호화폐 시장이 새해 첫 2주 동안 두 자릿수 상승세를 연출했다. 물가 상승 둔화와 긴축 완화 기대감이 시장 분위기를 뒤집었다.
올 들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각각 28%, 32% 상승했다. 코인베이스, 라이엇 플랫폼, 마라톤디지털홀딩스 같은 암호화폐 관련 주는 더 크게 폭등했다. 나스닥, 금, 미국 국채는 각각 6%, 4%, 2% 올랐다.
비트코인은 경기침체 우려가 나온 이달 19일 전까지 14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2013년 11월 이후 최장 기록이다. 최근 일주일 거래량은 114% 증가하며 108억 달러를 기록했다.
상위 100위권 암호화폐도 대부분 20% 이상 급등하며 지난해 손실분을 조금이나마 만회했다. 시가총액은 FTX 파산 전 수준인 1조 달러에 근접했다.
예상치 못한 반등에 시장은 부정적인 정서를 어느 정도 덜어냈다. 하지만 상승 주기가 빠르게 돌아왔다는 낙관론과 약세장이라는 큰 틀을 벗어난 건 아니라는 신중론이 갈린다. 탄탄한 온체인 지표는 상승 방향을, 거시경제 지표는 여전히 침체 가능성을 가리키고 있다.
◇ 강력한 펀더멘털 가리키는 ‘온체인’ 지표
비트코인매거진은 최근 보고서에서 비트코인 뒷단에서 이뤄지는 '온체인' 상황을 통해 비트코인의 장기적 전망을 낙관한다고 밝혔다.
사진=비트코인 고점 대비 하락률 그래프 / 출처 비트코인매거진프로 보고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약세장에서 비트코인은 65%의 손실을 기록했지만 2011년(93.08%), 2015년(84.82%), 2018년(83.47%), 2020년(75.19%) 등 더 큰 폭락 이후 항상 전고점을 능가하는 회복력을 입증했다.
보고서는 "자산이 ▲가치저장 ▲교환 매개 ▲단위 척도 세 단계를 거쳐 화폐가 된다"면서 비트코인의 극심한 변동성을 "신생 자산이 '화폐'가 될 때 거치는 과정"으로 진단하기도 했다.
비트코인이 '가치저장' 단계에 와있으며, 전세계 591조400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 시장에서 역할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서 이전된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다. 비트코인은 전년 대비 102% 증가한 5억5600만 BTC, 약 15조 달러(한화 약 1경8562조원) 상당을 처리했다.
보고서는 "비트코인은 다른 대안 대비 유동성, 접근성, 이동·보관 용이성이 우수하며 손쉬운 감사(audit), 직접 보관, 검열 저항 등의 강점이 있는 최초의 디지털 네이티브 무기명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사진=비트코인 보유량별 고유 주소 수 그래프 / 출처 비트코인매거진프로 보고서
비트코인을 보유한 ‘고유 주소’의 증가 추세에서도 낙관적인 투자 관점을 확인했다.
지난해 약세장에서도 ▲0.01 BTC ▲0.1 BTC ▲1 BTC 이상을 보유한 ‘고유 주소’는 각각 936만개에서 1132만개, 330만개에서 418만개, 81만개에서 97만개로 꾸준히 증가했다.
단일 주체(개인이나 조직)가 여러 주소를 가질 수 있는 만큼, 블록체인 분석 기업 글래스노드는 단일 주체와 연결된 여러 주소를 분류·분석해 더 정확한 비트코인 보유자 통계를 내놨다.
글래스노드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비트코인 보유자 수는 지난해 3317만명에 달한다. 약 4년 동안 연평균 20% 이상 증가률을 기록했고, 2022년에도 17% 이상 증가 추세를 유지했다.
다수의 이용자를 대리하는 거래소가 단일 주체로 분류될 수 있는 만큼 실제 보유자 수는 더 많을 수 있다.
장기 보유자의 확신도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 현재 시세에서 매도할 가능성이 낮은 비트코인 장기 보유자(155일 이상) 그룹의 보유량은 1400만 BTC까지 늘어났다. 전체 유통량의 72.49%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2100만개'로 한정된 비트코인 공급량은 여전히 가치 상승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4년마다 블록 보상이 절반이 되는 '반감기'는 비트코인의 희소 가치를 부각시키며 매번 상승 주기를 시작하는 기점이 됐다. 2020년 5월 보상은 12.5 BTC에서 6.25 BTC로 감소했고, 내년 3~5월 사이 3.125 BTC 수준으로 더 줄어 공급량을 낮춘다.
신규 발행뿐 아니라 기존 비유동적 수량이 늘어난 것도 희소성을 강화한다. 비트코인 매매 활동에 따라 유동성을 정량화했을 때 비유동적인 주소가 보유한 공급량은 75%에 달한다. 매매가 많은 '고유동성 공급 주체'는 유통량의 25% 미만을 보유하고 있다.
◇ 시세 상승 가리키는 ‘온체인’ 지표
온체인 지표는 비트코인 시세가 회복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암호화폐 데이터 분석 플랫폼 크립토퀀트는 다수의 온체인 지표가 비트코인 강세 전환을 나타내고 있다고 진단했다.
먼저, 암호화폐 거래소간 유동량(flows between exchanges) 지표에서 현물 거래소에서 파생상품 거래소로 순유입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투자자들이 '리스크 온' 모드에 들어갔음을 의미하며 강세장 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시장가치와 실현가치를 비교해 고점·저점 여부를 확인하는 비트코인 MVRV 비율이 현재 1 이상(1.07)을 기록하며 365일 이동평균에 근접, 새로운 상승 추세 시작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비트코인 보유자의 평균 온체인 수익률 지표인 NUPL 역시 365일 이동평균에 근접하고 있으며 푸엘 멀티풀(Puell Multiple)과 크립토퀀트 자체 P&L 인덱스도 상승 전환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코인텔레그래프는 "지난 8년 동안 비트코인이 온체인 이동 시 평균 매입 가격을 반영하는 '실현 가격 지표' 아래로 내려간 건 단 세 번이고 해당 수준을 돌파할 때마다 하락 추세의 끝을 가리켰다"면서 "현재 비트코인 실현 가격은 1만9715달러로, 비트코인이 이를 웃도는 수준을 유지하면 추가 매입세를 촉발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사진=조정 SOPR 7일 이동 평균 그래프 / 출처 코인텔레그래프
신뢰할 만한 단기 추세 온체인 지표인 SOPR(Spend Output Profit Ratio)도 상승 방향을 가리켰다. 특정 주소에 토큰이 들어온 시점과 나간 시점 가격을 기초로 해서 비트코인 거래의 수익성을 측정하는 지표다. SOPR 7일 이동 평균선은 아직 손실 범위에 있지만 수익 전환점에 근접하고 있어 강세 반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온체인 분석가 찰스 에드워즈는 15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해시 리본 지표'가 '매수'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해시율 하락 추세가 끝나고 시세가 기업 생산 비용 이상으로 회복됐다는 것을 보여주고면서, 비트코인이 2만 달러 이상을 유지할 경우 채굴 업계의 처분이 중단되고 장기적인 강세 지지선을 구축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 문제는 ‘거시경제’
다만, 어떤 시장도 진공 상태에서 돌아갈 수 없다. 비트코인의 펀더멘털 측면이나 반복된 등락 주기와 상관 없이 시장은 강력한 거시경제 영향권 아래 머물고 있다.
올해 상승 분위기가 시작된 지점도 거시경제와 맞물려있다.
이달 7일 공개된 '12월 비농업 부문 고용'은 탄탄한 고용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물가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임금 상승률'은 둔화하는 최적의 고용 점수를 내놨다. 이어 13일 1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4개월 최소 상승폭인 6.5%를 기록하면서 암호화폐 시장은 상승폭을 확대했다.
연준이 금리인상을 결정할 때 확인하는 기초 자료들이 일제히 물가상승세 둔화를 가리키자 시장은 긴축 완화 기대를 높이며 상승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와치의 금리인상 전망은 '0.25%p'로 크게 기울었다.
하지만 암호화폐 시장과 주식 시장 반등에 연준 인사들이 연일 매파적 발언을 내놓으면서 시장 분위기를 진정시키고 있다.
18일 대표적인 연준 매파 인사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는 올해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 '0.50%p' 금리인상을 주장하면서 최종 금리 예상치를 5.25%~5.5%로 제시했다.
20일에는 레이얼 브레이너드 미 연준 부의장이 "당분간 통화 정책을 충분히 제한할 필요가 있다"면서 "높은 물가상승률을 연준 목표치인 2%로 낮추려면 시간과 결의가 필요하다"며 경로를 유지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임금상승률이 둔화했지만 "지금은 임금이 물가상승을 주도하는 것 같지 않다"고 덧붙였다.
12월 생산자물가지수(PPI)까지 시장 예상치를 큰 폭으로 하회했지만 이같은 연준의 강경 발언과 경기 침체 우려는 시장 상승세에 제동을 걸었다.
마이크 맥글론 블룸버그의 수석 상품 전략가는 당국이 공격적인 긴축을 펼치고 있는 상태에서 어떤 시장도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전히 연준이 시장 키를 쥐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2018년처럼 바닥을 다지는 시기일 수 있지만 당시 연준 등 통화 당국이 금리를 완화한 것과 달리, 지금은 모든 중앙은행이 긴축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도전적인 거시경제 상황과 금리 인상 압력이 있기 때문에 급등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유동성이 적은 상태에서 나스닥이 붕괴한다면 비트코인을 포함한 모든 것이 붕괴될 것"이라면서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달러화 가치는 7개월 만에 최저치로 하락하며 침체 긴장이 커진 가운데 시장은 새해 첫 기준금리가 결정되는 오는 31일, 내달 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기다리며, 암호화폐 상승이 단기 반등으로 끝날지, 상승장의 초입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