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더리움 등 '디지털자산'에 대한 투자자 보호를 위해 관련법 제정의 필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충분한 논의 없이 제정되는 법률의 부작용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과 전담 부서 설치를 공약한 바 있으며, 금융위원회 역시 지난 9월 6일 "디지털자산 중 증권형 토큰은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규율하고, 비증권형 디지털자산은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통해 규제할 것이다"고 밝혔다.
아울러 올해는 지난 5월 테라·루나 폭락 사태에 이어 해외 유명 가상자산 거래소 에프티엑스(FTX)가 파산하고 위메이드의 위믹스(WEMIX) 코인이 국내 5대 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되는 등 디지털자산 투자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코인 투자자 피해 사례가 폭증하며 법제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커졌다. 현재 국회에는 14건에 달하는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발의·계류돼 있다. 발의된 법안들을 토대로 거듭된 분석과 간담회를 거쳐 현재는 여당인 국민의힘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각기 내놓은 법안이 '디지털자산기본법'의 토대로 논의되고 있다.
사진 = 디지털자산 관련 법률안 발의 및 계류 현황 / 국회 정무위원회
국민의힘에서는 지난 10월 31일 윤창현 의원 등 11인이 '디지털자산 시장의 공정성 회복과 안심거래 환경 조성을 위한 법률안(이하 국힘안)'을 발의했으며,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7월 14일 민병덕 의원 등 11인이 '디지털자산거래법안(이하 민주당안)'을 발의해 심의를 받는 중이다.
디지털자산 관련 법안의 주요 요소는 시장 참여자 간 정보격차를 줄일 수 있는 공시제도, 시장의 투명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한 불공정거래 규제체계, 사업자에 대한 진입·행위규제 등이다.
양측 법안은 이용자 자산 보호를 위한 불공정거래 규제에서 공통된 의견을 나타낸다.
두 법안 모두 코인 거래소를 포함한 디지털자산금융사업자를 대상으로 미공개 중요 정보 이용 금지, 시세 조종 금지, 임의적 디지털자산 입출금 차단 금지 조항을 삽입해 소위 '코인 세력'의 시장질서교란을 예방하고 있다.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도 양측의 의견은 일치한다.
여야 법률안 모두 불공정거래 적발 시 5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물리고, 불법으로 얻은 이익의 1.5배가 5억원을 넘길 경우 부당이득의 1.5배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불공정거래를 적발한 규제·감독기관이 부과하는 최대 6개월의 사업자 영업정지 명령도 빼놓지 않았다.
사진 = 여아 법률안 불공정거래규제 비교표 / 국회 정무위원회
국민의힘 안은 디지털자산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를 통해 이용자 자산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국힘안 발의자들은 제안이유서에서 올해 상반기에 발생한 루나·테라 사태를 언급하며 "국제적 논의동향과 글로벌 기준 마련을 무작정 기다리기보다는 필요 최소한의 규제를 통한 이용자 보호 규율 체계를 우선 마련하고 추후 이를 보완해가는 점진적·단계적 입법 추진이 타당하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 안은 이용자 보호에 있어 특금법이 규율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는 형태로 이뤄져있다. 디지털자산에 대한 국힘안의 정의는 현재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금법)의 정의를 준용하고, 대체불가토큰(NFT)를 디지털자산에 포함했다. 특금법 상 디지털자산은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전자적으로 거래 또는 이전될 수 있는 전자적 증표'를 의미한다.
한편 민주당 안은 디지털자산시장 전반에 대한 규제 제정을 목표로 삼았다. 민주당안은 특금법 상의 디지털자산과 더불어 블록체인 기반 플레이투언(P2E) 게임화폐, 대체불가토큰(NFT) 등을 '디지털자산'에 포함했다. 민주당안은 디지털자산을 '네거티브(Negative) 규제' 방식으로 정의함으로써 국힘안에 비해 규제 대상의 범위를 넓혔다.
아울러 금융위원회 산하에 디지털자산 관련 금융사업을 관리하는 '디지털자산금융위원회'를 설립하고, 현재 주식시장의 공시가 집결되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과 같은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해 디지털자산 프로젝트별 백서, 사업가치, 신용 등을 평가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렇듯 여야 양쪽의 법안이 큰 차이가 없음에도 법안 처리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데는 정무적 이유가 자리하고 있다. 2023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고조되면서 디지털자산기본법의의 연내 처리가 요원해진 까닭이다.
국회 정무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지난달 24일 예산결산심사소위와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내년도 예산안을 단독 의결했다. 이에 국민의힘이 보이콧 선언을 하면서 지난달 29일 예정됐던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이하 소위)는 열리지 못했다. 소위가 연기되는 동안 금융위원회와 관련된 디지털자산 관련 법안 심의는 중단됐다.
이후 지난 13일과 22일 상정 안건이 정해지지 않아 두 차례 걸쳐 취소되며 지지부진하던 정무위는 지난 26일 소위를 열며 디지털자산 관련 법안을 의안에 상정했다. 그러나 업계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는 법안들의 내용이 너무 방대하다는 이유로 심사를 시작도 하지 않은 채 회의가 종료됐다.
사진 = 전문가들은 NFT에 대한 규제를 신중히 검토할 것을 조언한다. / 셔터스톡
전문가들은 국회의 논의가 진전된다 해도 현재 법률안에 따라 디지털자산을 정의한다면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NFT를 규제 범위에 포함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성준 동국대학교 블록체인연구센터장은 "현재 법률안에서 정의하는대로 NFT를 디지털자산에 포함하면 논란이 많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NFT가 디지털자산이라면 이를 거래하는 NFT 마켓플레이스도 디지털자산 거래소와 같은 규제를 받게 된다"며 "NFT 마켓플레이스에서 요건을 갖춰 사업자 인가를 받고 원화 마켓을 활성화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센터장은 "향후 제정되는 디지털자산 법안은 규제와 진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상근 국회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역시 NFT 법제화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민주당안 검토 보고서를 통해 "NFT는 개별 가치를 지닌 디지털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어, 예술품 등 디지털 콘텐츠의 자산화를 촉진하고 있고, 최근 해외를 중심으로 P2E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심사 과정에서 제정안과 같이 NFT와 P2E 게임화폐를 디지털자산의 범위에 포함할지에 대한 논의가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