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 세레브라스 시스템즈(Cerebras Systems)가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으로부터 4,500만 달러(약 648억 원) 규모의 차세대 AI 시스템 개발 계약을 수주했다. DARPA는 전 세계 최첨단 기술 연구를 이끄는 미국 방위 기술 개발 기관으로, 이번 계약은 고성능 AI 머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중대한 기술 협력으로 평가된다.
캘리포니아 서니베일에 본사를 둔 세레브라스는 인공지능 처리에 최적화된 반도체 ‘WSE-3’를 개발해온 기업이다. 이 칩은 약 4조 개의 트랜지스터로 구성된 90만 개의 코어를 통합한 웨이퍼 규모의 칩으로, 기존 그래픽카드 대비 탁월한 연산 효율성과 전력 절감 능력을 제공한다. 특히 44GB에 달하는 온보드 SRAM 메모리를 통해 외부 RAM과의 데이터 전송 없이도 대규모 AI 모델의 데이터를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어, 고성능 연산을 요구하는 분야에 강점을 보인다.
DARPA와의 이번 계약은 단순히 WSE-3 칩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캐나다 반도체 스타트업 라노버스(Ranovus)의 *공동 패키징 광학(co-packaged optics)* 기술을 결합해 AI 클러스터의 연결 및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목적이 있다. 이 기술은 전통적인 전기 신호 기반 연결 대신 광신호 전송을 통해 대량의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기존 네트워크 장비를 대체할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의 데이터센터에서는 플러그형 광 트랜시버를 이용해 AI 서버들을 광케이블로 연결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광신호와 전기신호 사이 변환 장치를 별도로 운영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세레브라스는 라노버스와 협력해 이러한 전환 장치를 AI 프로세서에 직접 통합하는 방식으로 시스템 효율성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세레브라스의 최고경영자 앤드루 펠드먼은 “이번 DARPA 프로젝트는 가장 혹독한 물리 환경의 실시간 고정밀 시뮬레이션과 초대형 AI 워크로드를 소화할 수 있는 플랫폼 개발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며 “이는 단순한 연산 능력 이상의 새로운 컴퓨팅 아키텍처로 진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DARPA와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레브라스는 동시에 무선 통신 시스템 테스트용 가상 환경을 구축하는 DRBE 프로그램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이를 통해 RF(무선 주파수) 기반의 ‘에뮬레이션 슈퍼컴퓨터’를 개발 중이다.
이와 별도로 세레브라스는 최근 북미와 프랑스를 포함한 6개 지역에 자사의 차세대 AI 가속 데이터센터를 짓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들 시설에는 WSE-3 기반의 CS-3 연산 시스템 수천 개가 탑재되며, 냉각 장치와 전원 장비 등 부대장비가 함께 구성되는 고집적 AI 인프라가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및 AI 산업에서는 GPU 중심의 데이터센터 구성을 벗어난 새로운 접근 방식이 대두되고 있다. 세레브라스의 이번 DARPA 계약은 이런 흐름 속에서 AI용 *올인원 웨이퍼 수준 칩*과 *광학 연결기술*의 결합이 기술적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AI 하드웨어 분야에서의 기술 주도권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가운데, 세레브라스와 같은 스타트업의 선도적 행보는 산업 전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