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시장이 여전히 침체된 가운데, 스타트업들은 점점 더 인수합병(M&A)을 통한 엑시트에 의존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략적 인수자가 주를 이루지만, 그 다음으로 유력한 구원투수로 떠오른 것은 바로 사모펀드(PE)다.
크런치베이스(Crunchbase)의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사모펀드는 벤처 투자를 받은 비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560억 달러(약 80조 6,400억 원) 이상의 공개된 금액으로 인수 활동을 벌였다. 이 수치는 공개되지 않은 거래 금액이 대부분인 상황을 고려하면 실제 총액은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2025년에 들어서도 이 같은 흐름은 꺾이지 않고 있다. 올해만 해도 PE는 씨드 단계나 벤처 펀딩을 받은 비상장 스타트업 22곳을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세 건은 총액이 83억 달러(약 11조 9,500억 원)에 달했다.
올해 가장 눈에 띈 거래는 헬스케어 소프트웨어 플랫폼인 모드메드(ModMed)의 거래였다. 2010년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 3월 클리어레이크 캐피탈(Clearlake Capital Group)에 지분 과반을 매각했으며, 거래 가치는 무려 53억 달러(약 76조 3,200억 원)로 알려졌다. 모드메드는 초기 스타트업이라기보다는 이미 성숙한 기업에 가깝지만, 다수의 벤처 라운드와 워버그 핀커스(Warburg Pincus)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던 경력이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의료 진료 업무를 자동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두 번째로 큰 거래는 헬스 소프트웨어 기업 헬스에지(HealthEdge)의 매각 사례다. 매사추세츠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지난 4월 베인 캐피탈(Bain Capital)에 26억 달러(약 37조 4,400억 원) 규모로 인수됐다. 헬스에지는 2004년에 설립된 후 블랙스톤 그룹(Blackstone Group)으로부터 투자받은 이력이 있다.
PE가 노리는 스타트업은 보통 견고한 사업 기반과 꾸준한 매출 성장세를 보이는 후기 단계 기업이다. 최근 1년간 이뤄진 대형 인수 사례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비용 자동화 플랫폼 오딧보드(AuditBoard)는 최근 영국계 사모펀드 Hg에 30억 달러(약 43조 2,000억 원)에 인수됐다. 또 다른 사례로는 2009년 설립돼 클라우드 스토리지 솔루션을 제공하던 나수니(Nasuni)가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7월 비스타 에쿼티 파트너스(Vista Equity Partners)에 12억 달러(약 17조 2,800억 원)에 매각됐다.
반면, 최근 몇 년 사이 설립된 씨드 단계 스타트업은 PE의 관심 대상이 되기 어렵다. 이들은 주로 업계 전략적 투자자에게 매각돼 기술력을 인정받는 쪽으로 엑시트를 노리는 편이다.
PE 업계 전망에 대해선 엇갈린 의견이 나온다. 부정적인 측면부터 보자면, 최근 몇 달간 블랙스톤 그룹, KKR, 칼라일 그룹(The Carlyle Group), 아폴로(Apollo) 같은 상장 사모펀드들은 주가가 최고점 대비 약 30% 가까이 하락했다. 이는 투자자들이 이들이 인수를 통한 수익 창출 능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을 반영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요인도 있다. 현재 미국 내에는 최근 기업가치 10억 달러(약 1조 4,400억 원)를 돌파한 프라이빗 벤처기업이 789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상당수는 4년 전 시장이 과열되던 시기에 최대 규모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이다. 이후 인공지능(AI) 같은 일부 초인기 분야를 제외하고는 시장 가치가 하향 조정됐지만, 전반적으로 성숙도를 갖춘 기업들이 많아 PE 펀드에게는 매력적인 인수 후보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