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낯선 거울 앞에 서 있다.
그 거울 속에는 인간이 만든 가장 지능적인 존재가 비친다. 이제는 우리를 닮아가고, 때로는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존재.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 존재는 우리를 비추고, 우리를 이해하며, 때로는 우리를 대신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최근 인공지능(AI)이 튜링 테스트(Turing Test)를 통과했다는 소식은 필자에게 큰 충격이었다. 첫째는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의 위대함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고, 둘째는 인류가 새로운 시대의 문턱을 넘었다는 강력한 신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사실은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의 고유성을 다시 정의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곧 인공지능이 특정 상황에서 인간을 기만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인간의 사회적 역할 일부를 대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필자는 인공지능의 철학적·윤리적 논의를 펼치기에 적합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블록체인과 디지털자산(암호화폐) 분야에서 오랫동안 고민해온 전문가로서, 블록체인이 만드는 세상과 인공지능이 열어가는 세상이 어떻게 연결될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블록체인이 만드는 세상은 모든 자산이 디지털자산으로 전환되는 ‘자산의 토큰화(Tokenization)’ 시대다. 블록체인은 자산의 소유권과 권리를 디지털화하고, 중앙집권적이지 않은 탈중앙화(Decentralization) 방식으로 운영되는 디지털자산 혁명의 핵심 인프라다.
반면, 인공지능이 이끄는 세상은 지능과 자율성의 시대다.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정보 처리와 독립적 의사결정이 가능한, 지능과 자율성의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블록체인과 인공지능의 본질적인 차이다.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를 지향하지만, 현재의 인공지능은 철저히 중앙화된 구조에 놓여 있다. 필자는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탈중앙화를 향해 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최근 블록체인과 인공지능을 융합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현재의 흐름은 상호 보완적 방식에 머물러 있다. 즉, ‘블록체인을 위한 인공지능’ 또는 ‘인공지능을 위한 블록체인’과 같은 방식이다. 그러나 이는 철학적으로 상반된 두 체계를 단순히 연결하려는 모순적 시도일 뿐이다.
필자는 이런 단순한 융합을 넘어, 인공지능 자체가 처음부터 탈중앙화 구조로 진화하는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이 반드시 일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그 전환은 인간의 손뿐 아니라 인공지능 스스로의 선택과 진화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
그 출발점은 매우 단순한 두 가지 질문이다.
"인공지능이 블록체인을 이해하게 된다면?" "블록체인이 암호경제(디지털자산 생태계, 토큰 생태계)를 이해하게 된다면?"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인공지능이 스스로 터득하는 순간, 인공지능은 상호 합의 기반의 블록체인 플랫폼, 즉 ‘글로벌 신뢰 인공지능(Global Trust AI)’을 자율적으로 구축할 것이다. 나아가 블록체인의 철학과 암호경제의 원리를 이해하고, 인간의 개입 없이도 자율적인 디지털자산 생태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때 비로소 블록체인과 인공지능이 진정으로 통합된 새로운 세상, 글로벌 신뢰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래는 새로운 질문을 남긴다.
그 세상에서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인간은 정체성과 존재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맞닥뜨릴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을 가진 글로벌 신뢰 인공지능이 ‘인류의 가치’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그 답은 분명하다. 통제 가능한(Controllable) 글로벌 신뢰 인공지능의 구축이다. 인공지능이 자율성을 가지면서도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적 장치와 윤리적 기준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이제 우리는 기술의 진보만큼이나, 그 기술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자율성과 블록체인의 신뢰성, 이 두 혁명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류가 중심이 되는 방향으로 통제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맞이할 미래를 안전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