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Janet Yellen) 미국 재무장관은 암호화폐 및 디지털 자산에 관한 첫 연설을 통해 정부 정책이 ‘책임 있는 혁신’을 지원하는 동시에 ‘리스크’를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2022년 4월 7일(현지시간) 아메리칸대학에서 디지털 자산 정책, 혁신, 규제에 관해 연설했다.
재닛 옐런은 암호화폐가 "디지털 결제의 핵심인 '이중 지불' 문제를 해결한 분산형 P2P 결제 시스템"이며 "중앙기관에 대한 의존도를 낮췄다"고 발언하는 등, 혁신 잠재력과 암호화폐 시장의 빠른 성장을 인정했지만, 정부 역할과 규제의 중요성에 더 많은 무게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재무장관의 첫 디지털 자산 연설은 신기술이 주는 기회와 과제를 탐구할 때 고려해야 할 5가지를 제시하면서 디지털 자산에 대한 정부 입장과 정책적 접근방식을 공유했다.
책임 있는 혁신만이 금융 시스템에 혜택
재무장관이 말한 '책임'에는 정부가 담당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는 디지털 자산이 지리적 한계가 없는 즉각적인 거래, 낮은 비용, 효율 개선 등을 약속하지만, 이같은 기능을 제공하기까지 극복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가 해외 송금을 개선하기 위해 G20 작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고, 연준이 2023년 실시간 결제 시스템 ‘페드나우(FedNow)’를 출시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앙은행이 담당하는 CBDC에 대해서는 "실물 현금에 버금가는, 신뢰할 만한 화폐가 될 수 있다"면서 "디지털 자산이 가진 이점 일부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관은 "재무부가 행정명령에 따라 CBDC 설계 옵션과 잠재 영향 등을 분석한 보고서를 준비 중"이며, "CBDC 기술 설계 및 개발에 수년이 걸릴 수 있는 만큼 CBDC 작업에 긴급성을 두겠다"고 밝혔다.
규제 없는 혁신, 피해는 고스란히 취약층에
재닛 옐런은 혁신을 통해 삶이 개선될 수 있지만, 정부의 적절한 위험 관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취약 계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과거에 규제 없는 혁신이 불평등을 악화하고, 불법 금융 위험 및 시스템 재정 위험을 증가시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면서 "디지털 자산의 성장이 유사한 위험을 일으키거나 취약한 공동체에 불균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닛 옐런 장관은 민간이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불법 금융, 사용자 보호, 시스템 위험 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은 현재 일관성이 없고 파편화된 감독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현금 상환을 장담할 수 없다고도 경고했다. 그는 “그저 가설이 아니다"라면서 실제 2021년 6월 발생한 대규모 스테이블코인 자금 인출 사태를 거론하기도 했다.
옐런은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은행 및 전통 금융기업까지 참여하기 시작한 만큼, 금융 시스템과 경제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을 관리하고 책임 있는 혁신을 지원할 수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무부는 의회와 협력해 스테이블코인 위험성에 탄력적으로 대처할 법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국제 협력을 통해 일관된 규제 및 감독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위험 기반 규제 접근은 '불가피'
옐런 재무장관은 새로운 기술에 따른 규제 개선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규제는 관련 위험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옐런 장관은 "디지털 자산은 새로운 것일 수 있지만, 디지털 자산이 제시하는 많은 문제는 그렇지 않다"면서 "과거에도 혁신은 혜택을 주는 동시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모든 기술에 동일한 규제 기준을 적용하는 '기술 중립성'도 강조했다. 그는 "자산이 대차대조표에 있든, 분산원장에 있든 관계 없이 소비자, 투자자,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명령에 따라 소비자, 투자자, 기업이 사기, 도난, 개인정보침해, 불공정 관행에서 적절히 보호받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지속적인 규제 개선이 미국의 경제적 경쟁력을 지원하고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리더십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활한 금융의 핵심은 ‘정부'…민간과는 협력
옐런 장관은 통화 시스템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원활한 금융 시스템을 위한 핵심은 바로 당국이 전적 권한을 갖는 '주권'에 있다는 설명이다.
재닛 옐런은 많은 혁신 기술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자산에 대해서도 '안전'을 위해 정부가 깊이 개입하길 바라는 입장과 '혁신'을 위해 정부가 완전히 물러서야 한다는 입장이 크게 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의 통화 주권과 통일된 시스템은 과거 다양한 민간 화폐 확산에 따른 어려움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확립된 것이며, 지금의 경제 성장과 안정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장관은 "정부 역할은 책임 있는 혁신, 즉 모든 미국인을 위해 작동하고 국가 안보 이익과 세계를 보호하며 경제적 경쟁력과 성장에 기여하는 혁신을 보장하는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민간과의 논의 및 금융 역사를 통해 배운 많은 교훈을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반응 엇갈려…'고무적' vs '회의적'
재무장관의 첫 디지털 자산 연설에 대한 업계 의견이 갈린다. 정부 인사가 직접 암호화폐에 대한 공식 발언을 내놓기 시작한 것에 대해 본격적인 규제 조성의 시발점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여전히 디지털 자산을 위험한 것으로 보는 정부 관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크리스틴 스미스(Kristine Smith) 블록체인협회 총괄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정부 관계자가 암호화폐에 대해 말할 때, ‘변혁적(Transformative)’이라는 단어가 흔히 쓰이진 않는다"면서 "오늘 재무장관은 연설에서 디지털 자산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그렇게 표현했다"고 말했다. 또한 "재무장관이 디지털 자산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도 말했다.
반대로, 트위터 사용자 @gordoair는 "옐런의 연설은 민간 스테이블코인은 위험하고, 국가 CBDC는 이롭다는 확실한 입장을 보여준다"면서 "'변혁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이같은 관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