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수장이 몸집이 커진 암호화폐 산업이 더 이상 '공공 정책 프레임워크'의 외부에 존재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규제 안으로 들어오라는 당국의 요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암호화폐 거래소는 존폐 위기에 놓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개리 겐슬러(Gary Gensler) SEC 위원장은 2021년 9월 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기술 중립론자'임을 밝히면서, 투자자 보호, 불법 활동 방지, 금융 안정성 유지와 같은 공공 정책 의무에 있어서 암호화폐가 다른 자산과 다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SEC 위원장은 "전 세계적으로 암호화폐 시장 가치는 약 2조 달러 수준이다. 이 정도의 규모와 특성을 가진 시장이 앞으로 5년에서 10년 후에도 타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공공 정책 프레임워크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역사가 말해준다. 시장은 규제 밖에서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금융은 결국 신뢰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겐슬러 위원장은 거래 플랫폼을 SEC에 등록해야 한다는 자신의 제안에 대한 업계 반응에 실망감을 나타냈다. 그는 암호화폐 상당수가 증권이기 때문에 거래 플랫폼의 SEC 등록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SEC 위원장은 암호화폐 업체들이 당국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국과) 소통하면 더 나을 수 있는 플랫폼들이 많이 운영되고 있다"면서 "(업계가) 허가를 구하기보다는 용서를 간청하는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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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거래소·디파이 주시
겐슬러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투기성이 높은 자산과 관련한 활동 95% 이상이 거래소에서 이뤄지고 있고 투자자 보호는 매우 허술하다는 점을 짚었다.
미국에서 암호화폐 거래소는 대형 비즈니스다. 나스닥 상장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는 2021년 2분기에 16억 달러의 수익을 보고했다. 하지만 어떤 금융 당국이 거래소를 감독해야 하는지는 불명확하다. 겐슬러는 SEC가 더욱 확실한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의회에 요청한 상태다.
SEC 위원장은 "암호화폐와 탈중앙화 금융(DeFi, 디파이) 플랫폼이 규제기관에 도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플랫폼들은 쉽게 법을 적용할 수 있는 전통적인 중개업체 없이 운영되고 있고 투자자들이 서로 직접 거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위원장은 탈중앙화돼 있다고 간주되는 플랫폼에 대해서도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디파이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일찍이 생겨난 P2P 대출 사업의 변형"이라면서 "P2P 대출 사이에 한 기업이 있었던 것처럼 디파이 플랫폼도 거버넌스 메커니즘, 수수료 모델, 보상 시스템 등 상당한 중앙화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SEC 위원장은 "단지 소프트웨어를 웹에 올려놨다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한 말이지만 뉴욕 증시만큼 중앙화된 것은 아니다"라며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흥미로운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겐슬러 위원장은 2021년 8월 19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도 "디파이는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유럽의회서도 "암호화폐 규제 필요해" 증언
SEC 위원장은 2021년 9월 1일 유럽의회 경제통화위원회에 참석해 전 세계 경계를 허물고 유럽과 미국 시장을 연결하는 금융 기술에 대해 발언하는 가운데 암호화폐를 언급했다.
개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2조 1000억 달러 규모의 암호화폐는 정말 글로벌한 자산이다. 국경이나 경계가 없으며 일주일에 7일, 하루 24시간 운영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불행히도 관련 일부 애플리케이션에서 사기, 스캠, 남용 등이 만연하다"며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빌리 켈러허(Billy Kelleher) 유럽의회 의원이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규제 기관이 암호화폐 거래소에 적용할 수 있는 신기술이 있는지" 질문하자, 위원장은 "자금세탁방지 및 투자자보호를 보장하기 위한 기술들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플랫폼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입법 기관과 규제 기관이 하는 모든 일들의 집합체가 투자자를 보호하는 신기술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개리 겐슬러는 암호화폐 시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SEC 수장일 뿐 아니라 암호화폐에 대한 의해가 높은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발언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미국 규제 당국이 산업 특성을 반영한 규제 방안을 제시할 것인지, 암호화폐 산업이 경쟁력을 잃지 않고 규제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