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차세대 금융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 '탈중앙화 금융(Defi, 디파이)'도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게리 갠슬러(Gary Gensler) SEC 위원장은 2021년 8월 1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를 통해 "현재까지는 미국에서 디파이가 전혀 규제되지 않고 있지만 디파이는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발언했다.
겐슬러 위원장은 "SEC는 현행 증권법 규정에 따라 디파이 사업을 규제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 "탈중앙 특성 규제 못해" vs SEC "중앙화된 부분 있다"
디파이는 사전 설정한 조건에 따라 자동으로 계약 내용을 실행하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운영되는 금융 시스템이다. 디파이 개발자는 계약 실행을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프로젝트에서 물러난다. 규칙을 정하거나 수수료를 떼가는 중개자, 중앙기관이 없다.
디파이 개발자들은 운영 주체가 없다는 탈중앙화 특성이 SEC의 규제 필요성을 무효화한다고 주장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같은 일부 암호화폐도 충분히 탈중앙화돼 있다는 것이 인정돼 SEC 규제를 피했다.
하지만 겐슬러는 디파이로 알려진 일부 탈중앙화 금융 프로젝트가 SEC의 감독 대상인 P2P 대출 플랫폼과 비슷한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규제 개입을 촉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SEC 위원장은 "프로젝트 참여자에게 디지털 토큰이나 이와 유사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는 아무리 탈중앙화돼 있다고 하더라도 규제를 받아야 하는 활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디파이 프로젝트는 어떤 측면에서는 분산돼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고도로 중앙화돼 있어 탈중앙화라는 용어를 쓰기에 적절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갠슬러는 "이들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처럼 소프트웨어를 작성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지배 권한을 가지고 수수료를 받는 핵심 그룹까지 두고 있다. 더 나아가, 프로모터와 스폰서를 위한 인센티브 구조도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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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슬러 "디파이, 우선 규제 대상"
겐슬러가 디파이 규제 도입의 필요성을 피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5월 26일 겐슬러 위원장은 "디파이는 미국 투자자에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으며 SEC에도 투자자 보호에 대한 과제를 주고 있다"며 규제기관이 디파이에 주목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8월 4일에는 "디파이 업체 역시 특정 이자 수익률을 광고하고 있다면 규제 적용 대상일 수 있다"고 발언했다.
강력한 규제가 암호화폐가 도약할 수 있는 원동력이자 투자자를 위한 안전장치라고 믿는 SEC 위원장은 이처럼 여러 차례 디파이 산업에 대한 규제 의사를 밝히면서 의회에 추가 권한을 위한 법률 개정까지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입법 우선순위는 암호화폐 거래, 대출, 디파이 플랫폼"이라면서 "규제 당국은 관련 규정을 만들고 보호 장치를 둘 수 있는 추가 권한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 발언은 '현행 증권법'으로도 디파이 규제가 가능하다는 주장으로, SEC가 디파이 부문에 본격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실제로 지난 7월 디파이 업계에 대한 미국 내 최초의 규제 조치가 있었다. 뉴저지 주 당국 등은 150억 달러(약 17조 2740억 원)의 자산을 운영하는 디파이 대출 서비스 업체 블록파이(BlockFi)에 증권법 위반 혐의를 제기하고 사업 중단 명령을 내렸다.
디파이 시장 확대 파죽지세…기관도 관심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제로금리 시대가 열리면서 이자는 커녕 인플레이션 상승을 통한 자산 손실 우려가 컸다. 디파이는 새로운 수익 창출 기회와 시장 활력을 제공하며 차세대 금융 모델로서 가능성을 보여줬고 금융 기관과 기관 투자자의 관심이 쏠렸다.
대형 투자 은행 골드만삭스는 디파이 투자 노출 기회를 만들기 위해 '골드만삭스 혁신 디파이·블록체인 지수 펀드'를 준비 중이다.
결제 대기업 페이팔(PayPal)도 스마트 컨트랙트와 디파이에 관심을 내비쳤다. 댄 슐먼(Dan Schulman) 페이팔 CEO는 2021년 2분기 결산 발표 자리에서 "더 효율적이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스마트 컨트랙트나 디파이 활용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억 달러 상당의 자산을 운용 중인 암호화폐 인덱스 펀드 운용사 비트와이즈애셋매니지먼트(Bitwise Asset Management)는 신규 디파이 투자 상품 2종을 출시했다. 세계 최대 탈중앙화 거래소(DEX) 유니스왑과 세계 최대 탈중앙화 대출 프로토콜 에이브를 추종한다.
암호화폐 투자운용사 갤럭시 디지털은 공인투자자(연소득 20만달러 이상 미국 거주자)를 대상으로 블룸버그 갤럭시 디파이 인덱스를 추종하는 갤럭시 디파이 인덱스 펀드(Galaxy DeFi Index Fund)를 출시했다.